남겨진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누군가를 상실한다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을 일이다. 내가 겪은 첫 상실은 참 다사다난 했던 것 같다. 당시 난 너무나 미숙했고, 돌아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 마음에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똑똑하고 성숙한 이별이 있나?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성장했나? 그것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상대에게 이런 글을 보내고 싶어졌다.
오늘 나는 당신의 생각이 문득 났다. 지난 2년간 생각이 나더라도 잠시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오늘은 별안간 내게 쏟아져 내려버렸다.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그 쏟아져 내리는 기억의 파노라마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었단 점이었을까. 시간은 정말 약이었구나.
누군가를 상실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제 드디어 그 자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채울 수 있다는 설렘도 공존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아직 당신의 상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를 제자리걸음 하게 하는 것만 같다.
추억이 깃든 모든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찢어 태워버렸기 때문일까. 가끔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흐릿해져서 사무치도록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때의 내 모습을, 내가 사랑했던 시간들을 꺼내서 기억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이젠 내게 없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이 띠 안에 가둬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이 제자리걸음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것도 같다.
그 이유는 아마 이제 더 이상 당신이란 사람 그 자체를 보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이별을 겪어본 수많은 선배들이 말하길 그 시절의 어린 내가, 풋풋했던 우리의 모습이 그리운 거니까. 딱히 당신을 떠올리며 슬프지 않고, 그저 당신의 행복을 멀리서 나마 기원해본다.
이별했던 상대가 떠올랐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은 아마 우리 각자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자산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 상실이 진정한 자산이 될지, 나를 짓누르는 부채가 될지는 내 마음 안에 달린 문제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제야 제대로 이별을 '소화'했다.
아마도 우리 삶 속에서 성숙한 이별도, 멋들어진 이별도 없지 않을까.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든 '상실'을 피할 수는 없다. 즉 이별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건, 모든 이별이 소화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소화가 끝나고 상실감이 지나간 그 자리에는 또 다른 만남에 대한 설렘이 자리 잡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 또한 다짐해본다. 이별에 겁먹지 말고 당당한 다음 만남을 기대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