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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Jul 16. 2023

진리가 아닌 삶의 목표를 찾아서

삶의 목표가 더 필요한 이유

잘 살아보고 싶었고 때문에 삶의 이정표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지 알기가 너무 어려웠다.

돈, 성공, 행복 등 다양한 가치를 좇아 보았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 속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게끔 만들어 줄 옳은 선택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 하나 예측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도 만약 변하지 않는 진실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을 기준으로 늘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인 진리를 좇아온 긴 과정 속에서 결국 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리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그럴듯한 무언가 이다.

정신 활동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착각이었을 것이다.

정신활동을 하는 의식은 툭하면 착각을 하는 존재였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해내는 정신활동은 분명 대단하지만 의식은 때론 의식할 수 없는 수많은 행동과 생각을 자신이 통제한다고 착각하며 진실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절대적인 진실인 진리를 좇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그렇다면 삶의 목표를 좇아 노력했던 긴 세월이 모두 무의미한 것일까?

사실 삶의 의미나 목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모두가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생각만 옳다.

진리가 없어도 삶의 목표는 여전히 필요하고 또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에 진리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도 분명 필요했다.

성공에서 시작해서 평범한 삶, 행복, 철학, 진리까지 추구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어떤 필요가 있어서 삶의 목표를 만드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에너지 절약, 감정 해소 등 다양한 이점이 있는데 특히 삶의 목표는 그 자체로 우리가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삶에 목표는 삶의 어려움에 맞서는 힘이다.

살다 보면 내가 믿는 바는 환경과 타인에게 늘 부정당할 위험에 놓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수많은 변수 때문에 실패를 겪게 된다.

이럴 때 삶의 의미까지 부정당하고 무너진다면 나는 무엇에 의지해 이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갈까?

실패와 좌절, 각종 어려움을 겪으며 꾸역꾸역 사는 나란 존재에게는 삶의 의미라는 위로가 필요하다.

마음대로 되는 게 많지 않은 삶이지만 그래도 나는 무언가 좋은 것을 좇고 있다는 증명이 필요하다. (사실 무언가를 계속 추구하다 보면 어지간하면 성공의 경험이 생기며 자신을 긍정할 기회가 생긴다.)

그래서 여전히 삶의 목표와 의미는 필요하다.

내가 써온 시간과 내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 그 태생이 불완전하더라도 목표와 의미는 필요하다.

그것만이 내 삶 그리고 내 존재와 끊임없이 부딪히는 이 세상 속에서 나를 지켜줄 무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는 마음대로 안 되는 삶을 버티기 위해 각자만의 의미와 목표가 필요한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필요성이 더 커졌다.

자유가 오히려 삶에 대한 불안을 더 키우기 때문이다.

산업화된 현대 도시는 그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삶을 꾸릴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롭다.

직업도 속할 사회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사실 굉장히 어색한 것이다.

우리가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100년 전에는 대부분이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아야 했다.

50년 전에는 한국에 그렇게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회사에서 정해진 일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모바일, 개인 미디어 채널에서 자신의 자아를 진솔하게 보여주며 돈을 벌 수 있게 된 지는 아직 20년이 되지 않았다.

물론 완벽하게 원하는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지금도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정말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회가 생기고 있다.

우리가 속할 사회를 고를 수 있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아주 긴 기간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지역 사회에 속했고 그 지역 사회에 기여하며 살았다.

얼마 전까지도 대부분이 한 회사를 은퇴할 때까지 다니며 긴 시간 하나의 집단에 속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왔던 삶의 형태가 아주 빠르게 바뀌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이전에는 없었던 인간관계와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또 돈과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여 사회에 속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현대인은 이웃과 무리의 도움을 받는 일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이는 인간에겐 매우 어색한 일이다.


즉 우리는 유례없는 자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좋게 생각하면 이 자유는 우리에게 우주와 같은 무한한 가능성을 선물해 준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는 광활한 우주에 표류해 있다.

우리는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우주에서 홀로 생존해야 한다.

이러한 자유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과거에는 남이 정해준 직업이기에, 남이 정해준 사회이기에 우리에게 길을 제시한 누군가는 우리와 책임을 나눠야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유로워졌기에 이제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끝없이 펼쳐진 자유와 가능성이란 우주는 예측 불가능한 깜깜한 미래와 같다.

이런 세상 속에서 나란 존재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내 선택에 정당성을 더 부여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불안한 세상 속 결국 믿고 의지할 것은 역시나 나 자신이다.

더 구체적으로 나 자신을 나타내는 나의 신념과 삶의 목표가 현대 사회의 유일한 이정표가 된다.

직업과 사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서 그것을 온전히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면, 결국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서 선택과 책임의 주체자인 자신에게 눈을 돌린다.

이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이다.

자신의 노력과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대다수는 자신을 성찰하며 다음 선택을 고민한다.

한편 주변의 도움으로 큰 걱정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온 소수 역시 이러한 고민을 해야 한다.

정말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는 세상이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던 소수도 세상의 변화에 맞춰서 계속 도전과 선택을 해야 한다.

그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직관적으로 의지할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책임질 나란 존재가 어떤 선택을 하면 만족해할지 그 어느 시대보다 깊게 고민한다.

고민 끝에 결국 삶의 목표와 신념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

신념과 삶의 목표를 성취하는 그 순간,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대단한 만족감이 예측되기 때문이다.

또 신념과 삶의 목표를 기준으로 선택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납득이 될 것이다.

실패라는 최악에 근접한 결과 속에서도 신념과 삶의 목표의 실현은 우리 마음속에 용서와 위로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로운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목표이다.


삶의 목표와 신념의 형성은 사회적으로도 요구된다.

조직은 더 효율적인 채용 및 교육을 하기 위해 채용 단계에서 개인의 신념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신념의 방향이 조직이나 직무에 맞을 경우에는 사회생활의 동기가 되어 조직에 충성하거나 직무에 충실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이직 확률이 낮아지고 조직 입장에선 재교육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사실 이미 신념이 형성된 개인이 정말 회사에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는지를 증명하는 확실한 자료가 있진 않다.

반대로 꺼리는 회사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관성적으로 자기소개서, 면접에서는 개인의 신념이 회사의 비전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개인의 신념과 직업 생활 충실함이 상관있다는 통념이 우리에게 여전히 존재하고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또 사회화된 시민을 만들어내는 교육과정에서는 학생의 진로를 위한 측면에서 삶의 목표나 신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진로와 삶의 목표는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며 자신의 신념을 형성할 시기에 대부분이 동시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기 때문에 신념과 직업 가치관이 서로 영향을 주며 유사하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최근 진로 교육에서 직업을 자신의 신념이나 삶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이에 영향을 받은 학생들 역시 신념과 직업에 관한 개념을 이런 방식으로 형성하는 것 일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자신의 요구와 사회적인 요구로 자신만의 삶의 목표를 찾는다.

그것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현대와 그것이 주는 불안에게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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