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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Jul 17. 2023

삶의 목표와 현대에서 살아남기

주관 없이 불안에 잡아 먹히기

요즘은 내 직업도 내가 속할 사회도 모두 자유롭게 선택가능하다.

그렇게 선택한 삶에 책임만 진다면 말이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고자 우리는 우리의 선택의 기준을 나만의 가치관으로 설정한다.

이 자유의 시대에서 나만의 가치관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태양과 같은 불확실한 미래를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마주하게 된다.

불안이라는 눈부심이 우리를 눈멀게 할 것이다.

눈부시면 금방 눈을 감고 싶듯이 우리는 이 끔찍한 불안에 어떻게든 빠르게 대처하고 싶어 한다.

생리학자 월터 캐넌의 유명한 이론인 투쟁-도피 반응은 우리가 불안(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설명해 준다. 

동물들은 불안과 위협 등 큰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과 마주하면 싸우거나 도망가는 반응을 즉시 보인다.

불쾌함을 견디지 못하고 빠른 대처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기준 없이 불안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즉각적인 행동을 하다 보면 멍청하게 싸우거나 무기력하게 도망가게 된다.

특히나 각종 위험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현명한 기준이 될 수 있는 신념의 부재는 불안으로 인한 두 가지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첫 번째로 멍청하게 싸우는 경우다.

자신의 주관 없이 불안에 맞서고자 무작정 주변을 모방하거나 주변의 조언을 따라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주변에 이용당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주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자유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대처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불안에 맞설 방법을 찾고자 즉각적으로 주변을 참고하거나 모방하는데, 이러한 우리의 습성을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현대에서 불안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자신만의 기준 없이 남들처럼만 살거나 노력한다는 사람들은 이용당할 가능성이 크다.

타인의 말만 믿고 노력을 하고 돈을 투자를 하다 보면 결국 그것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이득이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생기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많은 경우 불안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두 가지 절차를 거친다.

우선 전략을 세운다.

예를 들어 돈이 부족하다는 불안에 투자를 할지, 이직을 할지, 승진을 위한 노력을 할지를 고민하며 불안에 맞설 전략을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그다음 절차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과 돈을 투자한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의 수많은 변수 때문에 좋은 전략 만들기는 쉽지 않다.

특히 빠르게 전략을 구성해서 빠르게 불안을 제거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진득하게 더 좋은 전략을 고민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빠른 불안 해소와 좋은 전략 구축, 두 가지 상반된 생각 속에서 우리는 가끔 아주 전통적인 방법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냥 주변을 둘러보거나 주변의 얘기를 듣고 선택하는 것이다.

남이 어떻게 사는지, 혹은 남이 어떻게 살라고 하는지를 참고해서 빠르게 결단을 내리면 마음의 부담을 빠르게 덜 수 있다. 

사실 그 옛날에는 이렇게 모방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상황이 너무 크게 차이나 모방이 정답이 아닌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미 영리한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불안에 맞설 전략을 세우고 거기에 맹목적으로 노력하고 돈을 지불할 것을 알고 있다.

그 영리한 이들은 자신에게 노력과 돈을 투자하면 당신의 불안이 해소될 것이라고 유혹한다.

우리는 때론 긴 시간 정보를 처리해 자신만의 답을 찾기보단 위와 같은 말에 혹해 노력과 돈을 투자한다.


이렇게 잘못 설정된 방향으로 노력과 돈이 투자된다.

구체적인 예시를 다루기 전에 불안에 대응하는 방법은 다양할 텐데 왜 하필 많은 이들이 불안을 해소하고자 맹목적으로 노력하고 돈을 투자하는 지를 먼저 알아보자.

불안 해소가 노력과 시간의 투자와 상관이 있음을 세 가지 측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불안이 돈을 쓰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소비와 불안(혹은 부정적인 감정) 상태의 인과관계에 관한 데이터를 모은 연구는 많다.

많은 연구들의 결론은 심리적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과소비한다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심리 상태가 유지될 때, 문제해결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우선 자신의 고통을 다른 곳에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생긴다고 해석했다(Cryder, C. E. 2008). 

두 번째, 우리는 자신의 노력 혹은 소비가 마땅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공정한 세상 가설과 인지부조화 이론의 노력 정당화 가설에 의하면 사람은 들어간 노력과 고생이 많을수록 결과를 더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Lerner, M. J., & Miller, D. T. 1978).

해당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과 돈을 쓰고, 이후 결과를 해석하거나 예측할 때 자신이 아무것도 안 했을 때보다는 나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마케팅의 영향으로 돈, 노력의 투자가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서비스와 상품은 그 소비를 장려하고자 돈과 노력의 투자가 우리 불안을 모두 해소시켜 주고 원하는 미래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해준다고 광고한다.

실제로 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고객의 불안이나 불만을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기능을 해내는 것도 많다.

때로는 한 명의 소비자로서 혹은 한 명의 생산자로서 우리는 소비가 더 나은 심리상태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굳게 믿고 실천한다.

현대 소비 사회의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행위와 불만과 불안을 해소하는 행위가 같다고 여긴다.


돈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돈과 노력을 투자했을 때 문제가 정말 해결되는지, 애초에 돈과 노력을 쓸 방향이 잘못되진 않았는지를 고려해야지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불안은 긴 고민 없는 빠른 결단과 행동만을 강요한다.

이런 인간 행동의 경향성은 자본주의 시장이 꿰뚫고 있다.

많은 서비스 산업은 고객의 어려움과 그에 동반하는 불안을 해소해 주는 산업으로 취급받는다.

자녀 교육에 대한 불안을 해소시켜 주는 사교육 서비스, 노화와 비만을 걱정하는 고객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PT서비스, 각종 정신적인 불안에 도움이 되는 심리상담 서비스 등 많은 서비스가 돈을 평안함으로 치환시켜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서비스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고민과 노력 없이 그저 돈만 지불했다고 남이 알아서 자신의 불안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불안과 그 원인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것은 저런 서비스를 이용함과 동시에 자신도 더욱 노력하는 것이다.

성적에 대한 부담을 해결하고 성정이 오르기 위해서는 사교육을 받고 교육자의 노하우를 습득하되 결국 숙제와 같은 자기 주도적 학습을 병행해야 하며,  PT 또한 PT를 받지 않는 시간에 식단을 조절하고 추가적인 운동을 해야 효과적이며, 심리상담 서비스도 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내담자가 인지행동치료를 일상생활에서 적극 활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쓴 돈에 비해 노력을 안 하거나 노력 방법에 관한 고민이 없어 기대한 결과를 보지 못한다.


사실 이 정도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실수이다.

그러나 소수의 누군가는 보다 심각한 피해를 입기도 한다.

신념 없이 주변이 제시하는 길을 따르다가, 그 길에서 멀어지게 되면 불안은 더욱 커지고 결국 더 조급한 선택을 하게 된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누구나 남들처럼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이러한 욕구를 반영한 삶의 목표가 바로 남들만큼은 살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어렵지 않아 보이는 목표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순간에 그들은 큰 불안에 휩싸여 쉽게 무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의 자산 가격 상승, 비트 코인, 새로운 고소득 직업 등장과 같은 급격한 시대의 변화는 지금까지 사회의 주류를 따라서 정석적으로 열심히 살고 있던 사람에게까지 경제적으로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을 줬다.

그저 이전 세대와 같이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서울에 집을 사는 평범한 꿈도 못 이루고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준 것이다.

이러한 불안 때문에 최근 많은 이들이 금융투자를 시작했다.

그중의 일부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큰 보상과 더 큰 위험이 동반되는 투자 방법을 찾기 시작했으며 그러다가 금융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의하면 2019년도에 비해 2021년도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 건수가 70%나 많아졌으며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투자 피해 관련 상담건수는 2018년도에 비해 2022년에 약 2배 증가했다.     

투자 권유에 혹해 손실을 보는 예시가 비약적이라면 다른 예시가 있다.

얼마 전까지 흔했던 열정페이도 기준 없는 이의 불안을 이용한 경우가 될 수 있다.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불안감, 사회적 경험이 적어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은 사회 초년생이 흔히 가질 수 있는 불안감이다.

이런 불안감을 건드려 낮거나 없는 임금으로 사회 초년생을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뚜렷한 목표와 자기만의 신념을 가졌기에 의도적으로 이를 감수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많은 이들이 좁아진 취업 문턱 때문에 불안에 떨며 자신의 값진 노력을 이용당했다. 

경험이 없다고 젊은이들을 당연히 싸게 이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사회일까?

배운 게 없냐고 신입사원을 무시하고 무경력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것이 정말 장기적으로 옳은 일인가?

우리 사회가 그 정도로 가난해졌거나 특정 자리에만 사람이 몰리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불안을 이용당하는 것은 사회 초년생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많은 프리랜서 영업직이 여전히 100% 인센티브 임금제이다.

물론 안정적이지 않으나 보상이 클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긴 하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100% 인센티브가 더 큰 만족과 이익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영업에 대한 노하우나 자신감이 없는 많은 이들이 오직 어떻게든 이 사회에서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는 불안과 압박 때문에 이런 직업에 쉽게 접근하고 헌신하기도 한다.     


남에게 이용당하는 이가 바보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을 만큼 자유 시대는 살기 어렵다.

아무 준비도 없이 세상에 던져놓고 그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원하는 데로 자유롭게 살라고 말해주는 시대이다.

마음대로 살 수 있지만 그 마음대로가 뭔지 몰라서 불안에 떨던 우리는 본능적으로 남이 어떻게 사는지 참고한다.

깊은 고민 없이 타인이 사는 모양만을 쫓아가다 보면 잘못된 방향으로 돈과 노력을 흩뿌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한 돈과 노력을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분명 있다.

그저 타인과 같은 삶을 살고 싶었던 많은 이들이 꼬임에 넘어간다.

한편 자유의 시대에서 이것이 자연스러운 생태계라고 우기는 하이에나들도 있다.

때문에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사기의 주모자가 되기도 한다.

똑똑한 하이에나들은 자신들이 자유와 책임에 관한 법을 어긴 것은 아니라며 세상을 비웃는다.

구조적으로 책임자가 모호해지게 만들고 그 틈 사이로 책임 없는 자유만을 누린다.

윤리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영업과 마케팅이 이루어진다.

과연 소비의 책임을 모두 소비자에게만 넘겨도 되는 것일까?

자유라는 이유로 방법과 과정이 무시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누구나 사기의 주모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세상에 대한 공부와 자신만의 가치관 없이는 쉽게도 이 소용돌이에 휩쓸릴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불안을 해소하고자 일단 타인의 삶을 모방하고 일단 노력과 돈을 쏟아붓는 행위는 너무 위험하다.  

현대 사회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만의 삶의 목표, 가치관이 필요하다.     




나만의 가치관이 없어서 타인에게 끌려 다닐 수도 있지만 그 무엇도 안 하고 도망 다니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삶의 목표를 부정하고 염세주의자가 될 수 있다.

염세주의자의 이성적인 결론은 얼핏 합리적이다.

그들에 의하면 진리란 없고 인간이란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에 결국 무조건 추구해야 할 무언가는 없다.

그 논리를 따라서 삶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절대적인 의미 또한 없으니 행동하지 않는 자신의 삶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갖더라도 현실을 담담하게 살아가면 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삶의 목표 부재로 인한 무기력증을 겪을 수 있다.

삶의 의미의 부재는 곧 불확실한 미래에 무엇을 해도 대항할 수 없다는 우울함으로 발전할 수 있다.

혹은 의미 없는 삶을 지속해야 할 필요성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삶에서의 미아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방향을 못 찾는 날이 지속되고 무기력함이 쌓이다 보면 살아갈 힘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무기력함 속에서도 생물의 기본적인 욕망은 찾아오고 그들조차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

배가 고프고, 사람이 고프고, 더 편한 휴식이 고프고, 인정이 고프다.

회의론과 그로 인한 무기력함의 슬픈 점은 그들의 합리적인 생각과 다르게 그들의 생물 본능적인 욕구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미 없는 삶을 혐오하는 의식, 무기력함이 한편이 되고 살고자 많은 것을 요구하는 뇌, 신체가 다른 한편이 되어서 두 집단 간에 싸움이 일어난다. 

이처럼 무기력한 회의론자들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결핍되는 순간에 극복하기 어려운 모순을 겪어야 한다.


이런 모순을 겪는 이유는 그들이 삶의 목표를 오해하고 포기했기 때문이다.

삶의 목표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는 이성적인 진리보다는 각종 생물학적 욕구에 더 가깝다.

애초에 삶의 목표는 진리가 되고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내장된 각종 생물학적 욕구를 불확실한 미래에서도 최대한 잘 추구해 보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진리는 그 와중에 최대한 좋은 삶의 목표를 만들고자 상상해 본 것이다.

가장 완성도가 높은 진리가 곧 허상이었으나 여전히 삶의 목표는 다양한 용도가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딛고 일어나 자신이 살아갈 방향을 정하는데 필요하다.

매일 해가 뜨면 자신의 목표에 맞춰 무엇을 할지 정하는데 필요하다.

의사결정에서의 에너지 절약에 필요하고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데 있어서 필요하다.

자기 자신이 삶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데 필요하다.

즉 잘 먹고 잘 만나고 잘 쉬고 잘 인정받아서 잘 살기 위해 필요하다.

이러한 기본을 잊고서 진리가 없다는 절망에서 만들어진 무기력함은 가끔 우리의 생존활동을 방해한다.

완벽하게 살 수 없다고 해서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삶의 목표는 분명 가장 완전한 ‘진리’라는 것에 도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하다.

삶의 목표 없이는 온전히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현대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다.

때로는 남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고 때로는 방향을 잃고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잡아줄 삶의 목표가 필요하다.

삶의 목표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삶의 목표에 대한 접근이 잘못된 것이다. 

무언가 가장 우월한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그렇다면 삶의 목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참조

Cannon, W. B. (1932). The wisdom of the body.


Cryder, C. E., Lerner, J. S., Gross, J. J., & Dahl, R. E. (2008). Misery Is Not Miserly: Sad and Self-Focused Individuals Spend More.


Lerner, M. J., & Miller, D. T. (1978). Just world research and the attribution process: Looking back and ahead. 


주택도시보증공사. (2023). 보증사고현황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1372 소비자 상담. http://data.kca.go.kr/info/html/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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