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민 Jul 28. 2023

심리학을 공부할 때 조심할 점

연구 결과 vs 실제 세상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에서 전해져 오는 이 말처럼,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 나라는 인간을 파악하는데 가장 좋은 도구는 과학이다.

그 옛날, 우리가 인간을 파악하기 위해 썼던 주관적인 지식 체계는 무의식적인 생각과 감정의 출처를 정확하게 추적하지 못하고 주관적인 해석만 내놓았다.

때문에 그 해석이 주관적인 의견을 낸 사람의 입장에서는 올바르다고 해도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뇌의 활성을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발전한 지금은 신의 계시나 영혼의 울림 같은 것은 없고 의식할 수 없는 뇌의 활성화만이 우리 행동을 조종하던 원인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뇌는 어떤 의도를 갖고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모든 생각과 행동에 자동적으로 영향을 줄 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아마 다른 생명체처럼 생존과 번식의 본능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결국 인간(의식)은 뇌(의식의 안과 밖 여러 요소)에게, 뇌는 생존과 번식의 본능에게 강렬한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현재까지는 이러한 이론이 인간을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해 낸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결과를 종합하는 법을 다뤘다.

그리고 생존 본능을 이해하고자 생활 방식과 신념, 미래, 문화에서 생존 본능의 영향력을 찾아봤다.

마지막으로는 과학 연구를 활용할 때 주의할 점을 다루고자 한다.


과학은 우리가 의식할 수도 없이 은근히 뇌에게 조종당하는 존재라는 슬픈 사실을 알려준다.

정말 그렇다면 뇌가 알아서 살아줄 텐데 우리가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의식과 삶의 목표'라는 이전 글에서 다뤘었다.

평소에는 보통 정보를 전달받기만 하는 의식은 가끔 그 정보를 가공해 나 자신과 환경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만들고 그 내용을 공유한다. 

이와 같이 의식은 본능적인 의식 밖 요소의 조언자로서 분명한 역할을 한다. 

심지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의 삶에서는 그 역할의 필요성이 점차 늘어갈 것이기에 우리는 지금까지와 같이 열심히 생각하고 판단하면 된다. 

그렇지만 과학이 해주는 냉소적인 얘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부모의 사회적인 위치와 재력으로 자식의 미래를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던가, 결혼할 상대는 결국 결혼 적령기에 만난 짝이 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던가 하는 심리학 연구 결과들은 미래가 특정 변수에 의해 결정 돼버린다는 차가운 얘기를 해준다.

부모가 가난하다면 어차피 그 자식의 신세가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노력할 필요조차 없는 것일까?

결혼 적령기 때 만날 사람과 진정한 사랑의 결실인 결혼을 할 확률이 높다면 이전에 하는 연애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주관적인 지식 체계에서 벗어나 과학을 믿고자 연구 결과를 참고하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차가운 결론을 마주하면서 이와 같은 고민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차가운 결론을 마주한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다른 지식을 찾기보단 결국 다시 과학을 선택한다.

아마 그들은 오히려 과학을 통해 세상의 냉정함을 더 잘 알게 되었다며 상처받은 마음을 더 차갑게 식힐지도 모른다.

그만큼 현대에서 다른 지식 체계와 달리 비교적 명확하고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과학을 대체할 지식 체계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긴 시간 명백한 근거가 없는 정보를 확신 없이 활용해 온 이들에게 경험적인 근거를 제시해 확신할 수 있는 지식을 주는 과학은 매우 매력적이다.

때문에 이들은 과학을 맹신하게 되고 이를 의심해 보거나 비판적으로 수용해 볼 생각을 잘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고 비판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면, 이전과 같이 근거가 빈약한 지식 체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따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 역시도 이러한 실수를 했었다.

그래서 처음 과학을 마주하며 아직 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을 못 하는 이들에게 두 가지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선 과학이 어떤 학문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며 과학이란 태생적으로 비판적인 의견 나눔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아갈 것이다.

연구 평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인, 떤 연구 설계가 되어야 믿을만한 연구가 될 수 있는지는 이 글에서 다루진 않을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연구가 되기 위해서 연구 설계 단계에서 고려되어야 할 모든 것들을 이 짧은 글 안에서 다루기는 쉽지 않기에 올바른 연구 설계 방법에 관해서는 추가적으로 찾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연구 결과가 왜 실제 삶을 완벽히 예측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연구 결과를 맹신해 자신의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하고 도전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알게 되었으면 한다.

과학은 과연 우리 삶을 모두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우선 과학의 정의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과학이 어떤 완벽하고 절대적인 사실이 아님을 얘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왜 과학이 마치 진리인 것 마냥 맹신까지 하게 되는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과학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라서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과학이란 특정 현상이나 사물의 법칙 등을 관찰 가능한 방법으로 찾아내는 것이다.

이 정의가 어렵다면 그 정반대의 지식체계를 생각해 보면 된다.

어떤 현상에 대해서 비과학적인 해석을 한다는 것은 관찰 불가능한 근거를 사용하고 매번 중구난방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에서는 번개가 치는 이유가 구름 안에 있는 양전하, 음전하의 균형을 맞추고자 한 쪽이 방출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지식은 비슷한 조건을 조성했을 때 반복 관찰이 가능해서 증명이 가능하다.

반대로 번개가 치는 이유가 하늘에서 신이 노하셨기 때문이라는 비과학적인 지식은 신과 번개 사이의 규칙을 증명할 수 없다.

또한 비슷한 조건에서 반복 관찰이 불가능하기에 번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며 다음 번개를 예측할 수도 없다.

이렇듯 과학은 구전 지식이나 깨달음, 신화 등과는 달리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반복적인 관측을 하고 그것을 통해 그 현상을 이루는 요소 사이의 규칙을 찾아내는 학문이다.

과학 지식을 전달받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손으로 똑같은 규칙만 만들면 그 현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지식이다.


하지만 특정 현상이나 물질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많은 요소 하나하나를 모두 정확히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물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수많은 요소가 영향을 준 다양한 물의 모습 각각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이다.

경도에 따른 물의 분류, 물의 분자 결합, 물의 상태 변화, 수력 발전, 미래 물 자원의 고갈 문제, 폭우로 인한 문제 대비 방법 등등을 모두 알아야 물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매우 많은데 한 명의 과학자가, 하나의 과학팀이 그 모든 변수를 고려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것을 밝혀내서 특정 현상이나 물질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그래서 과학적인 지식은 완전무결한 지식이라기보다는 많은 과학자들이 쌓아 왔고 앞으로도 쌓아갈 최신의 지식에 더 가깝다.

많은 동료가 달라붙어 비판적으로 검토해 그 지식을 추가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거나 기존의 내용이 수정될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실제로 과학적인 지식이 쌓여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내용을 공유한다.

동료들끼리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그 내용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다.

또한 공유된 연구를 활용해 후속 연구를 하는 일을 반복하며 현상이나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지식을 점점 쌓아간다.

이처럼 과학은 애초에 많은 이들이 지식 형성에 참여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공유된 이들에게 비판적인 피드백을 기대한다.

때문에 당연히 시간이 지나 혁신적인 내용이 추가되고 기존의 내용이 완전히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즉 과학은 최신화를 전제로 하는 집단지식이고 때문에 어떤 조건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실인 진리와는 거리가 있다.


과학을 활용하고자 하는 우리 역시 이를 이해하고 과학적인 지식을 접할 때는 비판적으로 접근할 있어야 한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간에 관한 과학을 활용하려는 우리는 특히나 이를 유념해야 한다.

인간은 다른 현상이나 물질에 비해 영향받는 요소가 매우 많고 심지어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요소가 매우 많다.

따라서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쌓아 나가야 할 지식의 양이 끝없이 많고 아직 나아갈 길이 많이 남았다.

늘 그 내용이 최신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또 연구 내용을 내 삶에 접목하는 것 자체가 기존의 연구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심리학 연구를 활용할 때,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루고 넘어가고자 한다.

대부분 연구는 특정 변수가 특정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실험을 한다.

따라서 실험할 때, 그 변수 외의 것이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통제한다.

돌멩이보다 생명체를 실험할 때, 더욱 많은 변수를 통제해야 하고 다른 생명체보다 지능이 높은 인간을 실험할 때, 보다 더 많은 변수를 신경 써야 한다.

때문에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연구 데이터를 얻어내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심지어 같은 피험자로부터 같은 날 얻은 두 가지 데이터도 차이가 매우 클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두 차례의 실험으로 실험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 두 번째 실험 전에 제공한 생수? 두 번째 실험이 오후에 진행되어서? 등등 결과에 영향을 줄 만한 것이 매우 많다.

또 많은 것을 통제해서 안정된 데이터를 얻어냈다고 해도 이를 또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인간은 너무나 다양하고 변덕스러운데 몇몇 인물을 통해 얻어낸 연구 결과를 가지고 전체 인간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심지어 결과를 얻어내고자 많은 것을 통제한 실험실의 환경과 일상에서의 환경은 분명 다르고 그 차이는 인간의 다양성과 상호작용하며 더 커질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많은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근본적인 한계를 완벽하게 해결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들은 변수의 통제와 일반화 사이의 딜레마를 겪는다.

실험실에서 최대한 많은 변수를 통제해서 얻어낸 결과를 다양한 변수가 넘쳐나는 일상생활에서의 타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반대로 다양한 변수가 있는 일상생활에서 얻어낸 결과를 해석할 때, 해당 결과가 순수하게 특정 변수만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이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심리학은 분명 다양한 미신에 비할 바가 아닌,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인간에 관한 가장 질 좋은 지식이지만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과학적인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아가며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에 대해서 다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과학은 다른 지식 체계에 비해서 가장 설득력 있다.

연구 결과를 분명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할 필요성은 있지만 연구자도 아닌 일반인이 굳이 그래야 할까?

과학에서 특정 변수가 내 인생의 특정 부분을 이미 결정지어 버렸다고 설명한다면 이를 활용해 그 부분은 빠르게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댓값이 알려주는 미래 중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앞으로 살 날이 많은데도 많은 것을 시도조차 않고 포기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고민이 생길 수도 있다.

짧게 두 가지 근거를 통해서 이런 고민이 자연스러우며 또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는 것이 분명 가치 있음을 얘기하고자 한다.

과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란 얘기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특정 연구 결과를 보고 자신의 인생을 결론 지어버리지 말란 얘기였다.

결론 지어버리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둘 때, 삶은 분명 그 영향을 받아 다른 결과를 향해 조금씩은 움직인다.


첫 번째로 예상치 못한 변수의 출현 때문에 삶이 꼭 연구 결과와 같이 흘러가지는 않는다.

앞서서 심리학 연구의 한계를 언급하면서 변수 통제를 심하게 한 경우 일반화가 어렵다는 얘기를 했었다.

실험실에서 얻어진 연구 결과는 분명 값지지만 내 삶에 적용시켜 보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물론 정교하게 만들어진 연구 결과를 완전히 피해 갈 확률이 아주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자신의 상황 속 다양한 변수가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의 영향력이 누적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연구 결과가 삶의 일부는 성공적으로 설명하지만 나머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따라서 연구 결과를 최대한 현명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당 연구 결과의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연구에서는 다루지 않은 변수가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지 확인해 보고 연구 내용 중에서 자신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부분과 적용되지 않는 점을 구분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차이 때문에 어떠한 결과가 새롭게 나올 수 있는지 고민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을 해도 미래에 발생할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모두 고려할 수는 없기에 성급하게 결론짓지 말고 어느 정도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내용을 다뤘던 이전 글에서도 역시 인간의 미래를 올바르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변수를 모두 고려해야 하며 더 나아가 계속해서 최신 정보를 반영해 예측을 최신화해내가야 한다고 했었다.

변수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연구 결과를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게 도울 것이며 또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도 특정 지식에 매몰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연구 결과를 아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 그 미래에 다시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금융 상품의 가격을 예측하고 그 결괏값을 공유하게 되면 사람들이 그 예측을 보고 매도 매수를 하게 되어 가격이 변하게 되고 가격이 최초 예측값과 달라진다.

우리 역시 특정 변수가 인생에서 특정 결과를 이끌어낼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아낸다면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그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 모두 당뇨병인 경우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결과를 보고 어려서부터 잘 관리한 결과 그것이 더 큰 영향력을 주게 되어 당뇨에 걸리지 않게 될 수 있다.

연구 결과를 알고 다른 행동을 했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이처럼 연구 결과를 알고 대응하고자 행동하는 것 자체가 분명 또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키우는 일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 때문에 연구 결과가 우리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미래를 예측해 내는 방식에는 분명 한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적어도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냉소적인 연구 결과를 보고 미리 좌절하고 포기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심리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자신의 마음을 맞춰보라는 말이다.

세상에! 생김새와 나눈 몇 마디로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유추할 수 있을까?

심지어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마음을 완전히 유추하기란 어렵다.

심리학에서는 수많은 사람을 분석해서 나온 평균적인 경향을 배우지 내 눈앞에 있는 단 한 명의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뚫어보는 방법은 배우지도 않고 더 나아가 그런 방법은 없다고 배운다.

떨어진 점들의 평균을 계산한 선, 즉 추세를 안다고 해도 수많은 점들 중 하나를 직접 만나는 것은 분명 다른 경험이듯이 말이다.

통계 결과 값이 아주 높은 확률로 앞에 있는 사람의 성향을 말해줘도 실제로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직접 부딪혀 보기 전까지 모른다.

90%가 외향적인 한 섬에서 내가 우연히 만난 사람이 내향적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나가냐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매번의 선택이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이고 수많은 가능성이 얽힐 텐데 실험실에서 그러한 변화까지 모두 예측해내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바라던 목표를 이룰 확률이 낮다고 해도 당신이 계속 그 일에 매달려 있을 때, 특정 변수가 실험실의 예상을 넘어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실패가 당신에게 어떤 교훈을 줄 것이며 또 그 후 어떻게 될 것인지를 모두 예측할 수 있는 연구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앞으로 당신이 쌓아가야 할 당신만의 지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연구 결과가 미래를 냉정하게 예측해도 그 결과와 다른 미래를 그려보고 연구 결과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물론 현실성에 대한 고려와 연구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는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과학을 공부해 좋은 기준을 가지고 삶의 목표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기준에 매몰되어 가능성까지 무시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연구와는 분명 차이가 있는 길고 다양하고 풍부한 삶에서의 목표를 고민하고 있다. 

때문에 연구가 알려준 기댓값에 너무 갇혀만 있을 필요는 없다.     

적어도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달은 것 마냥 회의적인 생각을 하고 무기력하게 되어 무언가 시도해 보지 않는 것은 매우 아까운 일이며 또 이는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기에 하는 행동이다.

또한 그와 같은 행동은 앞서서 얘기한 것과 같이 하나의 결과에 매몰되지 말고 다양한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과학 연구 활용법에도 어긋나는 행동이다.     

그동안의 인간에 관한 과학과 생존과 진화의 개념에 대한 얘기를 마치고 다음에는 드디어 이를 활용해 나만의 삶의 목표를 만들어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많은 삶의 목표를 부정하며 결국에는 진리와 같은 삶의 목표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여전히 삶의 목표는 필요했다.

삶의 목표로서 추구했던 우상을 잃고 그때 경험한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이라는 동물이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의 영향으로 삶의 목표를 만들었다는 전제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을 하기 위해서 우선 인간에 대한 과학과 생존 본능에 대해 얘기했다.

이제 이를 활용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삶이 목표를 만들어 나갈지 얘기해 보자.    

                    


참조


김민식. (2016). 딱딱한 심리학. 현암사.


Rob J Hyndman, George Athanasopoulos. (2018). forecasting: Principles and Practice. Otexts.

이전 16화 미래, AI, 능력주의, 생존 본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