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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Jul 29. 2023

삶의 목표와 생존 본능

어떻게 해야 좋은 삶의 목표를 만들었다고 느낄 수 있을까?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삶의 목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삶의 목표가 특정 생존 본능과 감정에 의해 생겼다는 가설을 세웠다.

해당 가설을 지지해 보고자 생존 본능이 어떻게 우리의 복잡하고도 다양한 생각과 행동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살펴봤다.

또 그러한 증거를 제시하는 다양한 연구를 참고할 수 있도록 과학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뤄봤다.

이제는 구체적으로 삶의 목표를 만들게 하는 주된 감정이나 본능이 무엇이며 그것을 해소하고자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다뤄볼 것이다.

즉 잘 살고 있다고 느끼기 위한,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만들어볼 것이다.

그전에 구체적인 목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선 삶의 목표와 관련 있는 감정, 생존 본능을 특정 지어 볼 것이다.

이전에 우리가 삶의 목표를 추구했던 과정을 분석해 보면 어떤 감정과 생존 본능이 삶의 목표를 만들도록 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존 본능을 구체적으로 특정 짓기보다는 주로 그것이 전달되거나 인식되는 방식인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에 대해서 다뤄볼 것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우선 모든 삶의 목표에는 빠짐없이 좋은 느낌을 추구하거나 나쁜 느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경향이 반영된다.

이러한 좋은 느낌은 보통 보상에 관한 정보를, 나쁜 느낌은 보통 위험에 관한 정보를 반영하며 우리를 생존과 번영을 위한 삶의 목표로 이끈다.

따라서 특정 생존 자원을 향한 다양한 생존 본능 하나하나를 모두 살피기보다 이 두 감정에 대한 대응책을 만드는 게 더 포괄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다.

또 직접 볼 수 없는 생존 본능을 특정 짓는 것은 추론의 영역이기에 특정 생존 본능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너무 많이 하면 기껏 만든 삶의 목표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생존 본능이라는 개념보다는 직접 경험하는 감정 혹은 보상과 위험 그 자체를 더 집중해서 다룰 필요가 있다.

의식 밖의 생존 본능이 감정과 생각으로 의식되고 그것이 의식을 자극해 특정 삶의 목표를 만든다. 

의식이 인지하는 감정과 생각의 작동 방식을 파악하고자 추가적으로 생존 본능을 공부하곤 있지만 의식은 생존 본능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즉 우리는 많은 증거를 통해 생존 본능의 존재와 그 강력한 영향력을 파악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의 정확한 실체를 완벽히 파악한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지며 흐릿한 실체는 점점 뚜렷해지겠지만, 삶의 목표에 관한 긴박한 갈증을 겪는 우리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 우리가 파악한 것을 통해 조심스러운 결론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목표를 만들도록 하는 의식되는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조절하는데 필요한 수준 그 이상으로 생존 본능에 대한 가설을 만드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직접 생존 본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필요할 때만 최소한으로 하고 의식되는 감정과 연관된 행동, 반응을 위주로 다룰 것이다.

추가적으로 이전의 삶의 목표가 실패한 원인도 살펴보며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감정, 생존 본능도 특정하거나 이전의 실패를 극복할 방법을 고민해 볼 것이다.     


두 번째, 그렇게 알게 된 정보를 정리해 삶의 목표를 구체화할 것이다.

이전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주로 대응해야 하는 감정, 혹은 우리가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생존 본능을 중심으로 삶의 목표를 세 가지 측면으로 세우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삶의 목표를 불안, 행복, 인간관계 세 가지 측면에서 구상해 볼 것이며 그 필요성에 대한 얘기를 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전의 삶의 목표를 좌절시킨 통제되지 않는 감정과 환경을 어느 정도 극복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제 뇌가 하는 생존과 번영을 향한 잔소리가 행복 혹은 불안의 형태로 전달되는 것을 안다.

그리고 삶 전체에 대한 끝없는 잔소리가 삶에 대한 고민의 시작임을 알기에 그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삶에 대한 고민을 해소할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전에 행복에 대한 글에서도 다뤘지만 감정은 통제되는 대상이 아니다.

또 현실의 다양한 변수가 우리가 기껏 찾은 방법을 방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들 때문에 이전에도 실패를 겪었다. 

잘 살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실패에 대한 태도와 단기 목표에 대해 다뤄볼 것이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문득 느껴지는 너무나 불쾌한 감각은 내 삶이 이대로 괜찮은지 진단하도록 만든다.

혹은 커다란 실패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이 이러한 고민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불쾌한 감각은 한 번에 해소되지 않고 평생에 걸쳐 이어진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내 삶의 행보가 잘못되었으며 새롭게 추구할 목표가 필요하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불쾌한 감각이 지속되는 것이 이해되기도 한다.

생존 본능 입장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살아남고 또 기왕이면 잘 살기를 원하기에 당연히 잔소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자식이 있다면 우리는 그의 삶이 계속해서 행복하길 원하기에 시기마다 잔소리를 반복하고 싶을 것이다.

뇌 속에 생존 본능 혹은 우리 의식 밖 여러 요소가 지속적으로 잔소리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감정을 때마다 해소해 줘야 잘 산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감정이 직관과 본능의 영역이기에 결핍이나 불안이 합리적이지 않은 잔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때문에 굳이 감정에 이끌려 다니기보다는 무시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어느 정도는 맞다.

실제로 몇몇 감정은 안락한 현대 환경에 비해 너무 과할 수 있다.

하지만 감각 기관에서 전달되는 정보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판단따른 감정을 발생시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주기까지의 과정이 원시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감정을 발생시킬지 정하는데 필요한 정보에 대한 무의식적인 판단에는 우리가 살면서 경험한 내용이 반영되기도 한다.

즉 우리가 경험한 내용이 무의식적으로 감정에 반영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코로나 19 이전 마스크를 쓴 얼굴은 보통 전염되는 병을 연상시키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코로나 19 이후에는 사람들이 의료용 마스크를 쓴 얼굴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Hies, O., & Lewis, M. B. 2022).

코로나 19 이전에는 마스크 착용자에게 질병이 연상되고 때문에 기피하고 싶다는 감정이 들었지만 코로나 19 이후 마스크 착용자에게 타인을 배려하거나 질병 예방에 노력하는 사람이 연상되어 긍정적인 감정이 들게끔 바뀌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학습하는 환경의 변화가 감정이 작동하는 방식에 반영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감정이나 직관을 원시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취급하는 것 또한 완전히 옳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또 보다 직접적으로 감정을 해소해야 할 이유가 있다.

감정은 신체의 활성화와도 연관이 있고 때문에 해소되지 않으면 신체 균형이 깨지며 다양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몸은 상황에 맞게 신체 활동을 조절한다.

비교적 안전한 상황에서는 부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에너지 사용을 줄이거나 소화, 배설 담당 기관이 활성화된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에너지를 사용해 위험에 맞설 준비를 하게 되고 반대로 소화나 배설 등의 활동은 억제된다.

이러한 교감 신경 활성화는 보통 편도체와 전전두엽에서 판단하게 된다.

편도체는 빠르게 위협을 감지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하며 전전두엽은 그 위협의 정도를 판단한다.

둘의 협업으로 최종 판단이 나오는데, 과한 불안은 전전두엽의 활성화를 저하시키거나 혹은 편도체의 목소리를 증폭시킨다.

따라서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면 위협을 과대평가할 수 있고 결국 교감 신경이 과하게 활성화될 수 있다.

긴장된 상태의 신체는 에너지를 과하게 소모할 수 있고 또 소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감정을 해소해 주는 것은 단순히 원시적인 마음을 달래주는 일이 아니다.

감정의 해소는 신체가 상황에 맞춰 올바르게 활성화 되게 만들어주고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짓궂은 감정은 통제되지 않으며 때로는 우리를 곤란하게도 만든다.

때로는 천방지축 어린애 같은 감정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게 답인 것만 같다.

하지만 감정을 해소하는 일은 현재 환경에서 더 좋은 선택을 하는 일일수도 있으며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일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는 감정을 해소해 주면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그 감정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감정을 해소하되 현명하게 해소해야 한다.

특히 이전에 현대인에게 삶의 목표가 필요한 이유에서도 다뤘듯이 감정을 해소하고자 즉각적인 행동을 하게 되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마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관 없이 불안을 해소하려다가 보면 타인에게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다.

나만의 기준을 세우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내 감정의 출처를 파악하는 등 감정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의 출처를 생존 본능에서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주관적인 감정과 마음을 정확히 추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과학이라는 최선의 지식 체계를 근거로 삼아 내 감정을 파악하고 그것을 조절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나의 주관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현명하게 감정을 해소하고자 한다. 

계속해서 우리를 생존과 번영으로 이끌어 가고자 다양한 감정이 반복될 것이다. 

그 감정들을 현명하게 해소하거나 예방할 방법을 만든다면 앞으로 마주할 다양한 감정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계속해서 마주할 감정 중에서도 더 높은 빈도수를 갖거나 특히나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있을 것이다.

미리 그것을 찾아내고 그 대응 방법을 고민해 본다면 이후 삶에서 생기는 감정이나 생존 본능으로 인한 문제를 더 알맞고 빠르게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목표를 찾고자 고민했던 과거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삶의 목표를 만드는 생각과 행동에 주로 간섭한 감정과 생존 본능을 알아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삶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문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다양한 감정, 생존 본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공, 평범한 삶, 행복, 철학, 진리 등을 삶의 목표로 갖도록 이끈 감정, 생존 본능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당연히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이 관여했을 것이다.

성공, 행복, 진리 등을 이루면 행복할 것만 같은 느낌과 반대로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불행해질 것만 같은 불안이 우리를 해당 목표로 이끌었을 것이다.

행복과 불안이 어떻게 우리를 삶의 목표로 이끄는지, 또 그 과정 끝에 왜 실패했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루며 행복과 불안을 이해해 볼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삶의 목표를 만들거나 추구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생존 본능을 두 가지만 더 다루고자 한다.

모든 생존 본능이 결국 감정으로 인식되고 우리 행동에 영향을 끼치기에 다른 대부분의 생존 본능에 대한 설명은 감정에 대한 설명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굳이 에너지 절약 본능과 사회적인 본능을 따로 다루는 이유는 그 둘이 특히나 성공부터 진리까지의 목표를 추구하는데 더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특히 두 가지 생존 본능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는데 큰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측되기에 그 둘에 대해 알면 삶의 목표를 만들면서 유의해야 할 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 평범한 삶, 행복, 철학, 진리를 삶의 목표로 갖게 했던 불안과 행복이란 감정과 에너지 절약 본능, 사회적인 본능에 대해서 알아보자.     



-뇌가 의식에게 걸어오는 말, 행복 추구와 불안 해소(안정감 추구) 

살아남기 위해서 특정 행동을 하라는 신호는 보통 좋은 느낌(감정)과 나쁜 느낌(감정)으로서 우리에게 인지된다.

예를 들어 같은 사회 소속임을 증명해 살아남으라는 신호는 타인과 너무 다르게 살 때 느껴지는 불안감과 타인과 비슷하게 살 때 느껴지는 안정감 혹은 소속감의 형태로 전달되어 결국 우리가 다른 이와 비슷하게 살도록 유도한다.

생존 지침서의 내용 자체는 다양하지만 그 대부분이 쾌와 불쾌의 형태로 의식에게 전달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보통 쾌를 더 느끼기 위해서 혹은 불쾌를 해소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결국 행복(쾌)과 불안(불쾌함)은 인간 모든(의식적인) 행동의 길잡이이다.

하지만 뇌가 상황을 판단하고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거나 수용하며 그 느낌을 우리가 인지하기까지의 과정은 모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아주 조그마한 크기의 사건의 결과인 감정을 이해하고자 다양한 상상을 했다.

감정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상상하거나 똑같은 감정이라도 감정이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르다고 여겼다.

누군가는 그러한 상상 끝에 삶의 지향점을 의식적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재밌게도 그렇게 감정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철학이나 삶의 목표는 다시 한번 인간 행동의 길잡이가 되었다.

그렇게 암묵적인 인간 행동의 길잡이는 명시적인 인간 행동의 길잡이가 되었다.

과거 현자들의 통찰이 보이지 않는 뇌 속 일을 추측할 정도로 대단했던 것일까? 

이렇게 결국 우리가 추구했던 삶의 목표는 대부분이 궁극적으로 쾌를 좇거나 불쾌를 해소하고자 한다.

물론 명시적인 길잡이의 한계는 있었다.

감정의 출처에 대한 명확하지 않은 추측으로 인해 몇몇 삶의 목표는 감정의 해소보다도 감정을 해소하게 하는 수단에 더 집중하는 내용이 되었다.     


우리는 긴 기간 성공, 봉사, 사랑, 진리, 신, 인간관계 등을 삶의 목표로서 추구해 왔다.

다양한 삶의 목표를 보다 단순히 보면 결국에는 원하는 목표를 이뤄 행복해지고 싶고 또 평안해지고 싶어서 그러한 목표를 추구해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감정의 해소보다 성공, 봉사, 사랑과 같은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 더 몰두하게 되었다.

무엇이 우리는 그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혹시 우리가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감정 때문이 아니라 특정 가치를 추구하기 위함일까?

감정 해소보다 특정 가치를 더 중요하게 취급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 세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첫 번째, 쾌와 불쾌는 삶 전체에 걸쳐서 반복되기에 완벽히 해소되는 대상이 아니다.

앞서서 얘기했듯 쾌와 불쾌는 우리 삶 전체에 걸쳐서 반복된다.

하지만 쾌를 요구하는 결핍이나 불쾌 그 자체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때문에 우리는 가끔 그들에게서 완전히 해방되기를 꿈꾼다.

그러한 바람을 특정 삶의 목표에 담게 되고 이 때문에 삶의 목표가 반복되는 감정을 해소하는 일이 아닌 감정을 완전히 정복해 줄 특별한 가치가 되었을 수 있다.

결국 이루기 어렵고 때문에 대단한 가치는 지속되는 감정을 완벽히 해소해 줄 존재로 여겨졌다.

이와 같이 특정 행위나 가치를 더 특별히 여기게 되는 이유는 행위마다 그 결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주관적인 크기나 빈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감정 해소보다 그 수단인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두 번째 이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혼자 맛있는 것을 먹으며 느껴지는 행복과 내가 속한 무리를 위해 큰일을 해내면서 느껴지는 행복은 확실히 다르다.

두 행위에서 느껴지는 행복의 주관적인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명확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빈도의 비교는 보다 객관적으로 할 수 있다.

혼자 음식을 먹으며 느껴지는 만족감은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 다시 배가 고파지는 시기까지만 이어진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사회 기여를 통한 행복은 다른 사회 구성원이 그 기여를 거론하며 칭찬해 줄 때마다 재점화된다.

따라서 보통 사회적인 기여가 개인적인 만족보다 더 많은 양의 행복을 주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쾌를 추구하거나 불쾌를 해소하는 행위에 차등을 주게 된다.

그 결과, 가치에 차등이 생겼고 최상위 가치는 거의 영구적으로 감정을 해소해 주는 대상처럼 여겨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생존 본능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반복되는 쾌와 불쾌에 매번 새로운 대응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일 수도 있다.

때문에 에너지 절약 본능은 하나의 답을 찾길 원했을 수도 있다.

특히 사회적인 본능이 동시에 작용할 때 하나의 답을 추구하는 경향은 더 심해진다.

선택이 필요한 상황에서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동시에 같은 무리에게 잘 보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큰 고민 없이 무리의 대세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긴 기간 동안 현자나 주변 어른들이 추구해 오던 성공, 행복, 진리 중에서 하나를 삶의 목표로서 추구해 왔다.

그것이 실제로 오랫동안 유효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삶과 감정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기보단 살아남기 위해서 덜 고민하고 그저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게 더 중요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생존을 걱정하지 않고 사회에서 특정 삶의 방식을 강요받지도 않는다.

때문에 생존 그 이상을 고민하고 나만의 삶을 고민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삶의 목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관성적으로 과거부터 이어진 답이 나오지 않는 잘못된 길을 답습하다 보면 실패를 겪고 삶에서의 길을 잃거나 자신감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반복되며 슬프게도 풍요로운 현대에 사는 현대인이 더 거친 환경에서 살던 과거 사람들보다 불행해지기도 한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진정한 답을 찾아볼 시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삶의 목표에 대한 오해가 다양한 이유로 생겼고 쌓였지만 삶의 목표는 결국 쾌를 좇고 불쾌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결국 쾌를 좇고 불쾌를 해소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우리 삶의 형태가 된다.

우리 삶을 이끄는 쾌와 불쾌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들에 대한 대응책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두 감정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이해해 보자.   

  

-1. 불안, 생존과 번영의 지속을 위한 불쾌한 경고

불쾌는 우리가 그 감정을 해소하고자 즉각적인 행동을 하게끔 만든다.

불쾌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보통 삶의 목표를 만들게끔 하는 불쾌는 불안감이다.

불안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잠재된 위험에 대한 공포이다.

생존 본능은 지속되는 삶 속에서 생존과 번영이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부지런히 준비하길 원한다.

미래에도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불안이라는 불쾌한 경고를 준다.

때문에 삶의 목표를 만들게 하는 불쾌감 중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불안감이라고 볼 수 있다.

잘 살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이러한 불안을 지속적으로 해소해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안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삶에 대한 지속적인 불안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에서도 우리가 늘 생존하고 번영하는 것을 목표로 생겨난다.

따라서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것을 확보하거나 혹은 그것을 확보하고자 노력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은 생존과 번영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바로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기도 한다.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길은 길고도 험악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우리가 그 길을 잘 걷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계속해서 찾아온다. 

그 길을 잘 걷고 있는지 판단하는 척도는 내가 상황을 얼마나 통제하고 있느냐 이다.

상황을 통제한다는 것은 상황이 내가 예측한 바와 같이 돌아가거나 혹은 그것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즉 불안은 실제 결과가 예측한 바와 같다는 것이 확인되거나 혹은 나의 예측이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이 강할 때 해소된다.

일반적으로 실제 결과와 예측이 일치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점점 예측 실현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며 불안이 해소되는 시점이 앞당겨질 것이다.     


불안의 해소에 상황이 통제될 것이라는 믿음이 관여한다는 것은 우리가 미신을 믿는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흔한 불안 대처 양상인, 미신을 믿는 모습을 살펴보면 우리가 통제되지 않는 환경과 그것이 주는 불안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와 미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미신은 과학적인 근거, 즉 다양한 변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나 반복적으로 관찰된 근거가 없이 만들어진 믿음이다.

예를 들어 우연히 서 있던 곳 바로 옆에 번개가 내리친 것을 보고 번개가 날 피해 간 이유는 그날 가지고 있던 행운의 부적 때문이라고 믿는 것은 미신이다.

실제 번개와 부적은 인과관계가 희미하기에 다른 날에 부적을 가지고 나간다고 번개를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미신을 만들면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자신이 어떻게든 개입해 냈고 그 결과 자신이 환경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 생생한 굉음과 번쩍임의 공포를 이겨내며 다시 밖에 나가 생계를 위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그 번개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렇게 미신은 비합리적이지만 우리가 불안을 이겨내고 오뚝이처럼 일어나는데 기여한다.

존재하지 않는 진리라는 삶의 목표도 이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미신일 가능성이 높다.

미래라는 아주 큰 불확실성을 진리를 찾아서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부적으로 번개를 통제한다는 미신과 비슷하다.

이처럼 우리는 불안을 해소하고자 통제에 대한 믿음을 형성해 왔으며 삶 전체에 대한 장기적인 불안 역시도 이러한 방식으로 대처하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믿음은 미신과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과학적이지 않은 근거는 너무 똑똑한 현대인에게 쉽게 마음에 안정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변수 간의 관계를 고민하지 않고 반복된 측정을 하지 않으며 만든 예측은 실제로 예측력이 매우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는 더 과학적인 믿음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삶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존재하며 때문에 과학적인 방법을 써도 완벽한 통제가 어렵다.

즉 우리 믿음은 미신과 다를 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면서 불안을 해소할 믿음을 형성할 방법이 있을까?

불안을 해소하고자 생존 재화, 통제, 예측, 믿음의 필요성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삶의 변수는 불안을 해소할 통제와 예측 성공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때문에 믿음을 형성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 불안 해소 측면의 삶의 목표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불안 해소의 삶의 목표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루겠다.     


-2. 행복, 다양한 모습을 가진 까다로운 쾌

기분 좋은 느낌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큰 보상이다.

우리는 그 보상을 더 많이 누리고자 쾌를 준 대상을 더 추구하거나 쾌를 준 행동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어떤 대상을 마주하거나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쾌를 느끼게 되는 것일까?

아마 생존과 번영에 도움을 주거나 혹은 줬던 대상, 행동일 것이다.

적자생존 가설이 다시 한번 이를 설명한다.

생존과 번영을 주는 대상에 알맞게 기분 좋음을 느끼고 그것을 더 많이 추구한 개체만이 생존하고 번식하며 지금까지 그러한 경향을 남겼을 것이다.

때문에 쾌는 우리 삶의 길잡이라고도 볼 수 있다.

쾌는 길잡이로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추구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자동적으로 알려준다.

과거에 다양한 철학이나 삶의 목표가 결국 궁극적으로 행복을 목표로 했다는 것 역시 쾌가 우리 삶의 길잡이라는 것을 지지한다.

그것이 곧 생존과 번영을 위한 일이기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쾌를 좇아 살아간다.     


그렇다면 무작정 길잡이를 따라 행복과 쾌를 위한 행동을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쾌 추구는 매우 어렵다.

쾌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은 매우 다양하고 또 같은 행위라도 상황에 따라서 느껴지는 쾌의 크기도 매번 다르다.

쾌를 추구했다가 중독과 같은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도 하다.

특정 생존 자원을 얻어 쾌를 느끼기 위해서는 경쟁과 같은 방해요소가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쾌를 추구하는 일은 매우 까다롭다.

이 때문에 과거 선인들은 쾌를 주는 행위에 순위를 매기거나 아예 특정 쾌 추구 행위를 악으로 규정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그러한 과학적이지 않은 가치판단을 무작정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과거 사람들이 만든 행복의 위계를 통해 행복이 그만큼 까다로운 존재라는 것은 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어렵긴 해도 쾌에 대한 생존 본능의 요구는 분명 해소해줘야 한다.

지난 긴 기간 쾌를 추구하는 일은 곧 생존과 번영을 위하는 일이었고 때문에 이는 벗어나기 어려운 경향이다.

또 쾌를 추구하는 일은 실제로 생존과 번영에 기여하기도 한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쾌, 행복은 인생의 길잡이지만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서 따라가야 한다.

쾌를 주는 대상을 내 상황에 맞게 탈 없이 추구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반영해 본능의 행복에 대한 요구를 상황에 따라 알맞게 해소하는 것이 행복 추구의 삶의 목표가 될 것이다.     


생존과 번영을 위한 다양한 요구를 전달하는 방식인 쾌와 불쾌는 우리 삶을 이끌어준다.

이를 삶 전체에 걸쳐서 더 현명하게 해소해 나가는 것이 잘 산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미래의 생존과 번영을 경고하는 불안 해소를 위해서는 생존과 번영을 위한 준비가 되어야 하며 그 과정이 내 예측과 같이 돌아간다는 확인 혹은 믿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삶이 내 예측과 같이 돌아갈 리가 없다는 이성적인 생각과 부딪힌다.

이러한 부딪힘을 해소하고 불안을 해소할 방법을 찾는 것이 불안을 해소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한편 행복은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것이 마치 보상처럼 느껴지게 만들며 우리가 그것을 더 추구하도록 만든다. 

행복을 따라가는 것은 실제 생존과 번영에 도움이 되며 오래된 경향을 따르며 기분이 좋아지는 빈도가 높아지면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어려우며 때로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며 내 상황에 알맞게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다양한 생존 본능을 대변하는 두 가지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다루기 전에 두 가지 생존 본능을 더 다루고자 한다.

과거에 추구했던 삶의 목표 역시 쾌와 불쾌, 두 가지 감정을 해소하고자 하는 목표로 만들어졌지만 실패했다.

물론 그 이유는 앞서서 얘기한 것과 같이 두 감정을 해소하는 일이 논리적으로 어려움이 있거나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실패를 돌아보면 보면 에너지 절약 본능과 사회적인 경향 또한 섣부른 오답이 나오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삶의 목표를 찾는 과정을 방해했던 에너지 절약 본능과 사회적인 경향을 이해하면 실패 원인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실패에 벗어날 방법을 찾고자 삶의 목표에 영향을 준 에너지 절약 본능과 사회적인 경향에 대해 알아보자.     


- 에너지 절약 본능

긴박한 생존의 상황에서는 좋은 답을 위한 고민도 필요하지만 답이 나오는 시간과 노력도 고려되어야 한다.

아주 긴 시간 고민해서 최선의 답이 나온다고 해도 그 시간 동안 환경이 변해서 그 답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거나 고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다음 행동을 못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써서 정확성을 높이는 방법과 에너지와 시간을 아끼며 적시성을 높이는 방법, 그 사이 어딘가 적당한 방법으로 의사결정을 해왔다.

이런 에너지 절약 본능은 삶의 목표를 찾는 과정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우선, 이러한 에너지 절약 본능은 지속되는 불안과 행복에 대한 요구를 영원히 해결할 단 한 가지 답이 있다는 생각이 만들어지는데 기여했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싶은 마음과 세상이 통제될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이 작용하며 우리는 가장 우월한 하나의 삶의 목표를 추구하면 미래에 마주할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길게 얘기해 왔듯, 삶의 문제는 다양하고 감정이 느껴지는 이유 역시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때문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답은 이성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에너지 절약 욕구는 우리가 삶의 목표를 찾고자 고민하는 긴 과정이 도중에 끝나도록 만든다.

어떠한 미래가 와도 가장 가치 있을 삶의 목표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미래에 나타날법한 다양한 변수들을 모두 고려해 가며 우월한 삶의 목표를 찾는 것은 힘들고도 긴 여정이며 사실상 답이 없는 일이다.

다른 방식인 생존과 번영의 관점에서의 삶의 목표를 찾는 과정 역시 쉽지 않다.

사람에 관한 다양한 공부를 길게 해야 하며 감정을 해소해야 할 이유와 방법을 이성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런 고민을 하다가 포기하고 눈앞에 있는 다른 단기 문제에 집중한다.

대부분이 사춘기, 입시 혹은 취업 준비 시기에만 이런 고민을 하다가 답을 찾기 전에 고민을 그만둔다.

일부는 다른 사람들이 제시한 인생의 답을 그대로 따른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현대의 삶에 안 맞을지도 모를 과거 현자의 삶의 목표를 그대로 가져와서 자신의 목표로 삼는다.

타인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반영하고 삶에 대한 답을 아주 끈질기게 찾아가며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에너지 절약은 이렇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보다 편한 만능 답을 만들도록 이끌거나 혹은 성급한 결론을 만들도록 이끌었다.

진정으로 삶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고 싶다면 이 강력한 에너지 절약 본능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에너지 절약 본능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만능 답을 만들거나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특히나 성급한 결론의 종류 중 하나인 타인의 의견에 대한 모방을 경계하고자 답을 만들고자 활용하는 정보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다양한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왔기에 어느 정도 그러한 노력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글의 내용 역시도 비판적으로 수용하시길 바란다.

또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면서 오직 하나의 방법만을 사용하는 경향도 피하면 좋다.

삶의 목표 역시 이 때문에 단기 목표의 형태가 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물론 이렇게 되면 에너지를 과하게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충분한 휴식, 다양한 외부 저장 매체 사용, 스트레스 해소를 통한 교감신경의 과한 활성화 방지 등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 절약을 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병행하면 좋을 것이다.     


- 사회적인 본능

오랜 기간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고자 무리를 이루고 살아온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혔다.

이러한 본능은 유전되어 과거에 비해서는 독립적인 현대인도 늘 무리 속 타인을 신경 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자신만의 삶의 목표를 만드는 순간조차도 타인을 의식하는 일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만큼 타인 혹은 무리의 존재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준다.

특히 우리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그들과 비슷해지기를 원하거나 그들보다 우월해지기를 원한다. 

우선 우리는 사회의 다른 이들과 같아지길 바라며 타인을 모방하는데 이 때문에 우리는 가끔 타인이 제시한 삶의 목표까지도 모방한다.

같은 삶의 방식, 같은 삶의 목표는 즉 내가 당신과 같은 사회에 속함을 뜻한다.

소속은 생존과 직결되는데, 오직 쪽수만이 자연에서의 생존 비결인 사회적 동물에게 무리에서 버려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타인이 어떤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지 의식하고 그것을 모방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이러한 본능은 삶에 대한 고민 끝에 타인이 제시한 삶을 살게 되거나 혹은 그저 타인의 삶을 모방해서 살고 싶다는 답이 나오는데 영향을 준다.

한편 우리는 타인보다 우월해지고 싶어 하기도 한다.

무리에서 우월하거나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으면 생존과 번영의 확률이 더욱 올라간다.

때문에 우리는 타인보다 우월해지는 것을 삶의 목표로 갖거나 혹은 내 삶이 상대적으로 더욱 특별해질 방법을 고민한다.     


사회적인 본능이 삶의 목표를 만드는 과정에 끼치는 영향은 에너지 절약 본능보다 복잡하다.

평균 추구와 특별함 추구, 두 가지 경향은 각각 장단이 있다.

평균에 대한 추구는 다른 이가 제시한 삶의 목표를 섣불리 수용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데 기여한다.

특별함에 대한 추구는 자신만의 삶의 목표를 찾는 길고 험난한 길의 원동력이 되지만 현대 사회에서 자신이 속할 공동체를 찾아내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 어떤 경향을 얼마만큼 추구해야 할까?

당연히 개인차와 상황에 따른 차이가 있기에 완벽한 정답은 없다.

다만 이러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타인의 의견을 쉽게 모방하거나 특정한 우월함을 갖고자 과하게 매몰되는 일을 견제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답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성공, 평범한 삶, 행복, 진리 등 이전에 추구했던 삶의 목표도 앞으로 새롭게 추구할 삶의 목표와 마찬가지로 행복과 불안이라는 두 가지 감정과 에너지 절약과 사회적인 경향이라는 두 가지 본능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각 감정과 생존 본능은 생존, 번영과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오히려 삶의 목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했었다.

때문에 각 감정과 생존 본능, 그리고 실패의 과정을 돌아보며 이전의 실패를 해소하고자 더욱 고민해야 할 부분을 찾아봤다.

이어서는 고민한 내용을 정리하며 삶의 목표를 더 구체화하고자 한다.     




- 삶의 목표의 세 가지 측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은 더 멋진 삶을 제시하는 게 아니다.

이러한 질문은 현재, 미래 삶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느낌에서 나온다.

따라서 삶에 대한 질문은 정답을 찾고자 나온 질문이라기보다는 불안과 갈망에 대한 표출에 가깝다.

불안과 갈망(행복 추구)이 없다면 하루 종일 침대 위에 누워 나무늘보처럼 살아간다고 해도 삶에 대한 의문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그런 느낌을 만들어내는 감정과 본능을 해소해야 삶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다.

결국 삶의 목표의 핵심은 불안을 해소하거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불안은 미래의 생존과 번영에 대한 걱정이기에 미래가 예측한 바와 같이 통제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삶 전체를 향한 장기적이고 또 빈번한 불안에 매번 미래가 통제될 것이라는 설득을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너무 똑똑한 우리는 삶을 매번 성공적으로 통제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안다.

불안 해소의 삶의 목표에서는 이를 극복할 방법을 주로 고민해 볼 것이다.

그렇게 불안을 해소할 방법과 논리가 생기면 우리 삶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불안에 알맞게 대응하며 살아갈 방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생존과 번영을 주는 대상에 반응하며 그것을 좇으라는 신호이다.

성공적으로 생존과 번영의 수단을 획득해 행복을 느끼면 내 삶이 번영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몇몇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어려우며 중독과 같은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행복 추구의 삶의 목표에서는 더 현명하게 행복을 추구할 방법을 주로 고민해 볼 것이다.

행복을 현명하게 추구하고자 고려해야 할 바를 안다면 삶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갈망에 알맞게 대응하며 더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면서 주로 추구해야 할 대상을 한 가지만 더 정하고자 한다.

바로 타인과의 교류 혹은 인간관계이다.

사회적인 본능에서 다뤘듯 타인의 존재는 생존과 번영에 있어서 필수적이고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존재에 너무나도 큰 영향을 받는다.

불쾌와 쾌라는 감정 역시 타인의 존재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타인과의 교류가 부족할 때 외로움이라는 강력한 불쾌를 겪는다.

또 반대로 신뢰하는 타인과 교류하며 크나큰 쾌를 경험한다.

이렇게 너무나 중요하고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히 추구할 인간관계를 굳이 삶의 목표로서 따로 설정한 이유는 현대에서 인간관계의 필요성이 점점 과소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산업화 도시에서의 개인화된 삶은 몇 백만 년을 뭉쳐 살았던 동물에게 매우 낯설다.

공동체가 해체되며 너무나 당연했던 타인과의 교류는 점점 어색하고 새로운 것이 되고 있다.

인간관계의 삶의 목표에서는 인간관계의 필요성과 교류를 위해 준비해야 될 것에 대해 다뤄볼 것이다.

앞으로는 삶에 대한 의문을 극복하고 잘 살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 필요한 불안해소, 행복추구, 인간관계 세 가지 삶의 목표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 실패 수용, 단기 목표 

이전의 삶의 목표는 실패했다.

삶의 목표가 왜 생기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에 삶에 대한 의문이 더 나은 답으로만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때문에 실패했다.

이를 극복하고자 생존과 번영의 입장에서 삶의 목표에 접근했으며 삶의 목표가 만들어지고 해소되는데 감정과 본능이 관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살아가면서 겪을 예상치 못한 일들과 그에 반응해서 나타나는 다양한 감정을 해소하면서 잘 살아간다고 느끼고자 삶의 목표를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눴다. 

앞으로 우리는 불안해소, 행복추구, 인간관계 세 가지 삶의 목표를 만들고 추구하며 잘 산다는 느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전과 다르게 새로운 삶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전 목표를 추구하면서 생긴 두 가지 관성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불확실성과 실패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이전의 삶의 목표는 기나긴 길의 끝에 성취해 낸다면 우리 삶을 구원할 무언가였고 때문에 삶의 목표와 관련된 실패는 우리 삶 전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우리는 무언가 대단한 것을 성취하며 감정을 영원히 통제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감정을 반복적으로 해소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계속되는 반복 속에서 당연히 때로는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겪는 실패는 이전의 실패와 그 비중이 다르다. 

우리는 이를 의식하면서 삶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겪는 실패에 대한 태도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과 실패를 심각하지 않은 존재로 여기고 반복하게 될 여러 시도를 더욱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야 한다.

이는 더욱 합리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삶에 있는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기에 우리는 당연히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하기도 하고 실패를 마주하기도 한다.

때문에 언젠가는 나타날 실패에 매번 자신을 깎아가며 삶의 목표를 수정한 일은 낭비에 가까울 수 있다.

반대로 행동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없을 것이던 삶에서 무언가 시도하며 다양한 자국을 남긴다는 것은 분명 큰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 과정들은 분명 기억과 의식에 남아 어떤 식으로든 발현이 된다.

실패가 주는 좌절감에만 빠져 있으면 시도의 가치를 외면하게 되거나 그 과정이 주는 교훈을 놓칠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는 실패에 대한 감정적 소모를 줄일 필요가 있다. 

잘 살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내 마음에 주는 영향을 의식적으로 줄여줘야 한다.

실패가 주는 기분 나쁜 좌절을 줄이면 시도와 과정의 감사함을 느낄 수 있고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바가 더 잘 보인다.     


또 삶의 목표가 성취 끝에 무언가를 완전히 해소하는 개념이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더 꼼꼼한 계산 끝에 만든 대단한 장기 목표가 우리 삶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때문에 엄청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 뒤, 자신 있게 계획을 따랐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러한 목표와 계획은 너무나도 쉽게 파괴될 수 있다.

원대한 목표는 장기적으로 그것을 향한 중간 목표가 계획과 같이 차곡차곡 이뤄졌을 때,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계획을 실행하다 보면 단기 계획보다는 더 많은 변수와 예측하지 못한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결국 장기 계획 속에서 성실한 노력과 중간 목표 성취가 잘 이뤄지지 않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는 높고 대단한 건물을 쌓아 올리면서 그것이 더 어렵고 위험한 일이 될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거창한 삶의 목표를 향한 삶을 쌓아 올리면서는 목표와 계획을 구상하는데 매몰된 노력에 눈이 가려져 위험과 실패 가능성을 외면한다.


비합리적인 자신감이 매번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실패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성취라는 목표에서 벗어나 반복되는 감정을 상황마다 알맞게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감정의 발생 혹은 예측부터 해소까지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가 추구할 목표는 단기 목표, 계획이 된다.


이렇게 단기 목표를 세우고 추구하는 일은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첫 번째, 다양한 감정과 생존 본능에 대응하는데 더 알맞은 방법이다.

불안이나 행복을 주는 대상은 매우 다양하다.

때문에 시기나 상황에 따라서 불안해소나 행복추구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이 달라져야만 한다.

우리는 이전에 이를 무시하고 단 하나의 삶의 목표를 추구하며 결국 실패했다.

성공만 하면 모든 불안이 해소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상상했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

인정을 받고 싶은 시기, 인간관계의 확장이 필요한 시기, 연애를 하고 싶은 시기가 있고 그때마다 불안과 결핍을 해소하고자 추구해야 할 목표가 다르다.

삶의 목표를 단기 목표의 형식으로 추구하며 매번 상황에 대한 판단을 새롭게 반영하면 우리의 다양한 감정과 생존 본능을 만족시키는데 더 용이할 것이다.

두 번째, 감정과 상황의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고 또 발전이 가능하다.

목표를 이루고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감정과 환경은 제멋대로일 것이다.

감정과 환경은 통제되지 않고 의도치 않게 해소되거나 혹은 다른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장기적이고 촘촘한 목표와 계획은 이러한 변동성에 취약하다.

조그마한 변화에도 수정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아질 수 있다.

단기적인 목표와 계획의 경우 환경과 감정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할 때 수정해야 할 부분이 적다. 

게다가 변화를 반영하며 더 좋은 단기 계획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목표가 없는 동안에 느껴지는 커다란 불안과 결핍을 상대적으로 적게 느낄 수 있다.

목표를 만들고 계획을 세우면 세상이 우리 마음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한 자신감 덕분에 우리는 온갖 불확실성이 넘쳐나는 세상에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다.

목표와 계획을 따라 삶을 채워가는 것에 집중하며 불확실성의 공포를 해소할 수 있다.

반대로 얘기하면 목표의 부재 상태는 불확실성과 그것이 주는 공포를 그대로 마주하는 상태이다.

장기 목표를 추구하게 되면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만드는데 상대적으로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고 때문에 목표의 부재 시기가 상대적으로 더 길다.

만약 실패라도 한다면, 다시 불안 속에서 그 긴 목표 탐색 과정을 겪어야 한다. 

따라서 단기 목표를 추구할 때 보다 불확실성이 주는 감정적 압박을 더 많이 받는다.

그것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이며 또한 준비하고 있는 목표와 계획의 내용도 그 감정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차근차근 단기 목표를 밟아 나가는 방식은 이러한 장기 목표의 한계를 극복하기에 알맞다.

짧은 기간과 그에 맞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고민이 들어간다.

실패 이후 타격도 적고 금방 새롭게 짧고 현실적인 목표를 만들 수 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장기적으로 추구할 목표를 긴 시간 고민하며 삶에 대한 불안의 파도를 정면으로 얻어맞는 일을 굳이 자처할 필요는 없다.     


삶의 목표를 실천하고자 단기적인 계획을 반복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감정이나 현 상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불안해소, 행복추구, 인간관계 중에서 실천할 목표를 선택한다.

한 번에 다수의 계획을 병행할 수도 있다.

선택한 목표를 이루고자 지금 가장 하고 싶고 또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고민하며 단기 계획을 구체화한다.

구체화한 단기 계획을 실행하며 느낀 점이나 새롭게 생긴 동기나 흥미를 메모해 둔다.

지금의 단기 목표 추구가 끝나면 이전에 한 메모와 현재 상황을 고려해 새로운 단기 계획을 만들고 실행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장기적인 노력이 들어가야만 이룰 수 있는 큰 목표를 추구하지 말라는 주장은 아니다.

단기 목표를 추구하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점점 더 큰 성취에 다가갈 수 있다.

다만 우리는 특정 큰 성취가 우리 감정을 기대만큼 해소해주지 않을 것을 안다.

때문에 커다란 성취가 주는 환상에 눈이 멀어 그 성취로 향하는 모든 길이 예상과 같이 통제될 것이라는 착각을 피하고자 한다.

이전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삶의 목표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은 더욱 열어놓고 현재나 가까운 미래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음에서 올라오는 공포와 불안 그리고 무기력함에 맞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갔으면 그것만으로 가치 있는 삶이다. 

더 우월하고 진리인 삶의 목표가 있지 않고 또 열심히 만든 삶의 목표란 것도 어느 순간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거창하고 추상적인 가치를 찾고 평생 추구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내 상태에서 이룰 수 있고 가치 있는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면 된다. 

너무 장기간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하다 보면 대응할 환경이 변하거나 애초에 자신의 생각이 변할 수도 있다. 

차라리 단기간에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단기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삶을 쌓아가면 된다. 

아등바등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성공과 실패가 있는 삶이 우리의 불완전하고 유동적인 정신에게도 알맞은 삶이 아닐까? 

진리라는 정해진 정답이 없으니 목표를 이것저것 만들고 이뤄 나가는, 모험의 과정이 가득 찬  삶을 사는 것은 어떨까?

죽기 전까지 무언가 하나를 추구하며 그것의 가치가 옳았는지 아닌지 아주 길게 고민하기보단 죽기 전 내가 했던 수많은 모험의 조각들을 음미하느라 어떻게 막이 내렸는지도 모르는 끝은 어떨까?          




생존 본능이 만들어내는 삶의 목표를 다루기 앞서 세 가지 얘기를 했다. 

삶의 목표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생존 본능과 그를 반영해 삶의 목표를 다각화해야 할 필요성을 알아보았다.

또 그렇게 만든 삶의 목표를 더욱 알맞게 추구하고자 필요한 실패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단기 목표 추구에 대해 다뤄봤다.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생존 본능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나만의 목표들을 추구하는 것과 그 과정들을 긍정할 수 있는 논리와 마음가짐이다.

다음부터는 불안해소, 행복추구, 인간관계 세 가지 삶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우선 불안 해소의 삶의 목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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