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여행
소백을 넘어 다시 충청으로 왔다. 영혼의 분여처럼 십여 년 전 가족여행으로 해미읍성에 온 적이 있다. 보릿자루처럼 하는 수 없이 따라온 여행이라서 그런가 그저 그런 여행이었다. 그저 그런 여행이 되지 않기 위해선 때를 바꾸고 마침을 만들어야 한다. 그에 따라, 밤이 좋을 수도 낮이 좋을 수도 있고, 안이 좋을 수도 밖이 좋을 수도 있고, 여행의 세계가 열리고 닫힌다. 가족여행은 읍성이 열린 낮에 안이었지만, 이번 여행은 읍성이 닫힌 밤의 밖이었다.
20241106.
해미에 온 날도 일이 늦게 끝났다. 마곡사 근처에서 일이 일찍 끝나면 그곳에 들리려 했는데, 다른 한 곳을 마무리해야 해서 어둠과 추위를 동시에 맞이한 해미로 와야 했다. 해미와는 밀당 같은 인연이 있었다. 삼길포항을 가기 전 읍성 근처에 숙소를 잡으려 했고, 얼마 전 읍성 근처에서 점심을 먹을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지나는 시선으로 읍성을 그리워했다. 인연을 운명으로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리움과 갈망으로 이루어진 의지가 인연을 만들어간다. 다만 그 '때'가 있을 뿐이니 어쩔 수 없이 운명과 의지가 서로 만나야 내가 그곳에 있게 되는 것이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밖으로 나왔다. 유명한 곱창 맛집이란 곳에서 밥을 먹었지만, 여행이 시작되면, 영주의 사과나 구미의 대추처럼 새로운 여행의 밥이 필요하다. 그 시간에도 입맛을 달래주는 가게가 열었다. 다이어트 목록에서 항상 면제되는 호두과자였다. 호두과자는 보약처럼 힘이 나게 한다.
이곳은 원래 해미였던 것이 아니라 1407년(태종 7년)에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해 해미海美가 되었다. 해미읍성은 여느 읍성보다 보존이 잘 되고 정성 들인 덕에 예쁘게 복원이 잘된 곳이다. 1800미터의 타원형 성벽에는 정문인 남문 진남문, 동문 잠양루, 서문 지성루, 비밀문인 암문 형태의 문루가 없는 북문이 있다. 진남문과 지성루 사이에는 두 개의 치雉가 있는데, 치는 성벽에서 돌출되어 적군을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방어시설이다. 경복궁에도 없는 해자가 북쪽에 있는데, 원래 성 전체에 싸고돌며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이 아름다운 성에서 매년 축제가 열리지만,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조선 말 고종의 아비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권력을 위해 자행한 병인박해(1866 ~ 1871년)로, 천주교 순교자 8천여 명 중 1천여 명 이상이 끌려와 해미읍성에서 죽임을 당했다. 순교자의 머리를 철사로 매달아 고문을 가한 회화나무가 아직 살아남아 그때의 비극을 증언하듯 서있다. 이후 한국에서 최초로 천주교국제성제가 되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도 방문해 추도하고 기념했다. 그나마 나은 기억이라면, 조선의 수호신인 이순신 장군이 초급군관 시절 10개월 정도 근무했으며, 읍성 앞에서 군민들이 3.1운동 만세를 외쳤다.
멀리서 밤을 쫓듯 개가 짖을 뿐 새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은 밤, 차가운 산책마저 마음을 샤워하듯 상쾌하기까지 했다. 성벽을 따라 깔아놓은 잔디는 융단처럼 푹신했다. 북쪽에는 명암의 조화로 비친 소나무는 해자에서 나와 용이 되어 승천하는 듯했다. 그 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성벽이 용이 되어 해자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빛과 성이 만든 어둠의 조화였다.
성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이곳이 집도 아닌데도 먼 길에서 돌아온 듯했다. 문득 구미가 생각났다. 소백산맥이 갈라놓은 두 곳은 지역도, 형제 같은 '미' 자 돌림의 한자도, 각각의 곳에 있었던 시간마저 달랐지만, 그 사이에 망각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처음엔 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두 날의 두 곳에 징검다리를 연결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미적이다 당황하고, 당황하다 엉뚱한 선택을 유인해, 함정에 빠뜨리고 옴짝달싹 못하게 해, 인생을 망가뜨릴 것 같은 작은 짐승이 윗니를 드러내는 불안이었다. 대답을 하지 못했던 물음 때문이었다.
구미에서 하영은 재미난 일이 없냐고 물었다. 봄이 저물던 날부터 재미 한 톨 찾을 수 없었다. 이토록 재미없는 날이 있었을까. 의미도 필요도 사라져 자신도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져 살아지는 것이지만 살아지게 하는 동아줄 하나 없이 눈을 감으며 칠흑으로 하염없이 추락했고, 강이 길을 멈추게 하면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고, 산이 길을 막으면 그대로 두 팔을 벌려 허공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해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듯 성을 한 바퀴 돌고서야 나의 재미를 알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욕망을 얻기 위한 답은 언제나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에게 재미를 주었던 것도 재미를 앗아갔던 것도 이야기,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만들지 않아 재미가 없었다. 그러니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지겨워지던 일이 끝나가고 있었고, 일과 후 여행도 곧 끝날 것이다. 여행의 끝,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줄 알았지만,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24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