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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향뮤직, 그리고 클래식 FM 104메가 헤르츠

서울

by 사온


나의 청소년기는 TV 미디어보다는 온라인 매체와의 소통에 익숙했다. 보수적인 어머니의 절약 정신과 교육철학으로 인하여 유선티비 없이 오로지 지상파 3사와 지역 채널만 시청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TV 뉴스보다는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셨다.


투니버스나 엠넷과 같은 트렌디한 케이블 채널을 볼 수 있었던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렇지만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친오빠는 온라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에 아주 빠르고 영리하게 적응했다. 그 덕에 나는 TV에서 볼 수 없는 만화 전 회차를 온라인으로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P2P 사이트의 대표였던 당나귀"로 다운을 받아 처음으로 시청한 만화는 "이누야샤". 투니버스에서는 한국 성우의 더빙된 버전이 송출되었으나, 나는 일본판에 자막이 깔린 버젼을 시청할 수 밖에 없었다. 다운을 받아서 볼 수 있는 컨텐츠로는 사실상 또래 친구들의 트렌드를 따라가기에 벅찼다. 회차가 빗겨나가는 일도 비일비재 했으며, 이미 어떤 스토리가 나올지 이미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녁시간에 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시청하려고 하면, 때마다 리모콘 권한이 아버지에게 있었기 때문에 바둑 채널이나 여행 채널로 일찍이 타협을 했다.


그래서였는지, 이런 특별한 배경 덕에 피해갈 수 없는 중2병을 그 누구보다 크게 맞이했다. 빅뱅과 소녀시대보다는 요조, 검정치마 등의 인디밴드를 좋아했다. 대중 음악보다 익숙한 클래식 음악을 사랑했다. 만화 역시 "아즈망가 대왕"이라던가, " 다다다"와 같은 일본 만화보다는 tv만 켜면 볼 수 있는 "스펀지 송"* "딜버트" 와 같은 EBS의 서권의 만화가 익숙했다. 자 연스럽게 가쉽, 스킨스 등의 서구권의 시리즈물을 연달아 시청했다. 나에게 있어서 아이돌은 미국 가수 에이브릴라빈이 였는데, 그녀의 앨범을 사고, 영어로 팬레터를 써서 미국으로 보냈다. 그 덕인지 영어 성적은 특별한 노력 없이 늘 상위권에 머물렀다.


* 스펀지 송은 흔히 스펀지 밥으로 알려져 있지만, EBS에서는 스펀지 송으로 번역 더빙되어 송출되었다.


클래식 음악 연주자 취향은 그 쯔음, 그러니까 중2병이 찾아올 시기에 뚜렷해졌다. 그 때에는 많은 연주자들이 알려지지 않 아 한국 음악인인 손열음이나 임동혁을 제외한 다른 음악가들은 다소 생소했다. 하지만 내 귀는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확고 한 취향을 장착했던 것인지, 마음에 드는 연주를 찾기 위해 유튜브"가 아닌, "판도라 tv"를 통해 다양한 연주 영상을 접했다 . (어머니는 태교를 위해 클래식 음악을 늘 들으셨는데, 출산 이후 잠투정이 심한 내게 늘 클래식 음악을 틀어줬다고 하셨다. 그래야 그나마 잠에 들었다고 하신다.)


많은 연주자를 알지 못해서 그 당시 가장 좋아했던 피아노 연주자는 키신", 단 한 사람이였다. 그 외에는 주로 라디오를 통 해 음악 정보를 입수했다. 라디오를 켜고, FM 104 mhz에 맞춰 저녁마다 틀어놓고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하거나, 진행자가 제목을 이야기 해주면 재빨리 그 제목을 적어 p2p 싸이트에서 mp3 음원을 찾아 다운로드했다. 그 다음, 가장 아꼈던 빨간 전자사전 아이리버 딕플"에 음원들을 담아 공부를 할 때 즐겨 들었다. 그 시절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던 여배우 김태희의 전자사전 광고 덕에, 그 감성에 취해 도서관을 좋아하게된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mp3 파일 보다는 음반을 구매하길 바라는 인디 가수들의 바람에 동화되어, 중학교 3학년 때는 부모님의 허락 하에 서울에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2008년, 시골의 중학교에 재학중이던 나는 처음으로 홀로 서울로 향했다. 서울행 버스를 타고, 강변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탔다.지하철 개찰구가 익숙하지 않아, 잘 사용하지 못하자 뒷사람이 투덜대며 개찰기를 손으 로 민다음 재빨리 내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개찰기는 윙윙 소리를 내며 바람을 일으켰고, 체크무늬 교복 에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은 나를 서울의 지하 전동차에 실었다. 신촌에 도착하자 마자, 역을 놓칠세라 얼른 내렸고, 그 길로 <향음악사> 이라는 유명한 음반가게를 방문했다.


당시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뮤지션의 친필 싸인이나 편지가 담긴 앨범을 한정판매 하기도 했었다. 온라인 주문도 쉬웠음에 도 굳이 찾아간 이유는 서울에 거주 중인 멋진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누리는 문화에 로망이 있어서였다. 그 곳에서 나는 <네스티요나>의 앨범과 <키신>의 피아노 클래식 앨범을 샀다. 그리고 홍대로 향했다. 당시 내가 방문하고 싶었던 홍대 인디 공 연장은 19세 이하의 청소년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나이를 속일 수도 있었겠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 탓에 주변에 어슬렁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시절의 서울은 나에게 아찔하고 매력적인 곳이였다. "엠넷"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못지않게 매력적인 성인 남녀들이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 거리에서는 유행했던 박정현, 박효신 등의 가수가 부르는 소울 알앤비가 길거리에서 흘러나왔고, 지금과는 묘하게 다른 디자인으로 꾸려진 거리의 간판들이 꼬마전구와 함께 반짝반짝 빛났다. 서울까지 올라가서 한 것이라고는 음반 판매점에서 CD를 산 것이 전부였지만, 난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5년 후, 2012년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아르바이트와 학교 생활을 하면서 음반사를 내 발로 찾아갈 일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4년 후, 2016년 향뮤직은 문을 닫게 되었다.


해당 글을 쓴 시점은 몇년 전이기 때문에, 향뮤직이 사라졌다는 제목을 유지합니다. 현재 음반 판매점인 향뮤직은 다 시 부활하여 운영 중입니다.



서울은 작지 않습니다.
제게는 파리나 런던, 베를린보다 서울에서의 삶이 훨씬 혹독하고, 치열했어요.
그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는 여전히 제게는 두렵고 낯니다 그런 서울이, 제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번에 제 일러스트들이 서울 압구정 <빈칸>에서 전시됩니다.
수많은 독창적인 작가님들과 함께 모여 단체전을 할 수 있게된 것이 기쁩니다.

2025년 5월 10일 - 5월 31일
오전 11시 - 오후 7시
빈칸 압구정 (서울 강남구 언주로 165길 13 1층, 지하 1층)

제 그림들은 일러스트 계정 <쿠쿠네네>
coucounene.kores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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