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작은 심장을 위해
In the future, everyone will be world-famous fo r 15 minutes.
미래에는 누구나 15분쯤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다
앤디 워홀
누구나 스피커가 되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의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온통 뷰티 유튜버들로 가득했다. 그들 중 몇몇은 "귀티 나는 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며 조명과 말투, 표정, 피부 표현들을 조절해 조회수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막 상경한 나는 낯선 환경에 방어기제가 발동해 집 근처에서도 늘 화장을 하고 다녔다. 집 근처 10분 거리의 편의점에 갈 때조차 간단한 화장을 했고, 집 근처 편의점 점주님은 나에게 "마스카라 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고, 그렇게 바짝 올린 마스카라는 내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나는 서울의 한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을 했었다. 그 곳에는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대 피아노과를 졸업 하고, 학원에서 강사로 가끔 일을 하던 30대 초반의 피 아노 선생님이 있었다.
"그 까페, 야간 알바 하면 최저시급은 받아요? 피아노가 그렇게 좋은가. 난 그렇게까지 열정은 없는데… 저기 뒤 에 보니까, 건물 벽에 고깃집 시급 만원 주는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 붙어있던 데 거기 전화해봐요. 아, 난 절대 못해."
그녀는 학원 원장의 딸로, 모친은 늘 가문의 영광을 상 징하는 그녀의 학교가 적힌 과잠바를 늘 입고다녔다.
땡그란 눈과 통통한 볼, 풍성한 머리숱, 그리고 아무렇 지 않게 들고다니는 명품백까지. 아마도 뷰티 유튜버들 이 말하던 '추구미'의 정석은 그녀가 아니였을까.
비슷한 일례로, 모 음악과 교수님 역시 "그렇게 연습 을 소홀히 하면 그 손으로 악기는 못만지고 저기 서초 갈비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처럼, 가위로 고기 자를 때 쓰게 될 거다"라며, 게으른 학생들에게 습관처럼 말하 곤 하셨다. 물론 그분에게는 악의가 없었다. 학생을 향한 진심어린 사랑의 문장을 우스갯소리로 던졌을 뿐이다. 듣는 사람 입장은 상당히 괴로운 말이지만, 예술계에는 그런 괴짜들 투성이이고, 나 역시 그 세계의 일부였다.
한동안 나는 절대 고깃집에서 만큼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되는 것은 더더욱 견 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거운 것을 들다가 손목이 망가 진다거나 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신은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9년 뒤,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가위로 삼겹살을 자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던 고기를 매일 최상급으로 맛보면서, 먹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 덕에 악성 빈혈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또, 손님들과 나눈 대화 덕분에 불어 실력까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귀티나는 피아노 선생님'과 같은 또래가 되어, 그녀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결국 해내고야 만 것이다.
몰리에르의 고전 희곡 『시골뜨기 귀족(Le Bourgeois Gentilhomme, 1670)』 속 주르댕은 교양을 열망하는 인물이다. 그는 음악, 무용, 철학, 검술 등, 당시 귀족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모든 소양을 익히고자 했다. 세상이 변하고 혈통이 아닌 자본이 권력을 좌우하게 되면서, 그는 단지 부유하다는 사실만으로는 자신을 귀족이라 납득할 수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고급 문화를 늦은 나이에 배우려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모습은, 결국 주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오늘날 '갓생'을 위한 명상 콘텐츠, 저속 노화를 위한 사찰 음식처럼 교양과 수련마저도 하나의 자기계발 패키지로 유통되고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때로 위대한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조차 '소비'이며, 사유를 하는 것 역시 결국 '생산'의 일부가 아닐까- 이런 물질적인 사고관에 스스로를 가두게 될 때가 있다.
양질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끌어내기 위해 무의식을 조절하고, 삶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마인드 셋팅'을 실 천한다. 이는 어쩌면, 현대인이 만들어낸 가장 정교한 자기 동기화 장치일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가 그리스어를 찬양한다고 해서 내가 그리 스어의 우수함에을 탁월하게 인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수레바퀴 아래서" 의 주인공 한스를 통해 신학의 우 수성과 라틴어의 위대함을 찬사한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그 것들 에 능통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제2장 즈음, 독일 시골의 낭만적인 풍경이 짙게 밴 문장들을 마주할 때, 번역본 너머로 전해지는 작가의 애정이 내게도 와 닿는 까닭은 내가 상상력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실제로 독일의 정경을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해인 수녀의 시를 진심으로 사랑한 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우주를 작은 점들 로 응집시켜 찍어낸 듯한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백석 의 시는 인적이 드문 숲속 같다. 드물어 여름철에도 모 기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고요한 연못을 품은 이름 모를 산골. 그 곳의 가마솥에 밥이 익고, 장작 타는 냄새 가 나고, 해가 아직 높이 뜨지 않은 안 개낀 아침같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이런 여유를 부리 는 시간이 부끄럽지 않은 때이길 바란다. 이로써 나는, ' 아름다움'에 진정한 기쁨-정확히는 쾌락-을 느낄 수 있 는 이유를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아, 나는 존재가치가 있는 사람이구나.
나의 삶은 소설 속의 주인공과는 많이도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아득히 깊은 곳에 움트고 싶어하는
내 작은 심장을 위해,
손가락 사이사이 챕터별로 나눠 낀 책장들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싹에 볕을 쬐고, 숨결을 불고, 비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