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가 누구인지 알고있지
한울은
공중에 떠도는 흰구름을 사랑한다 골짜구니로 숨어 흐르는 개울물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아늑하고 고요한 시골 거리에서 쟁글쟁글 햇볕만 바 래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이러한 시인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데
이러한 시인이 누구인 것을 세상은 몰라도 좋으나
그러나
그 이름이 강소천인 것을 송아지와 꿀벌은 알을 것이다.
-1941년 1월 발표한 백석의 "호박꽃 초롱" 서시 일부
발췌
"돌고 돌아~" 라는 말을 좋아한다. 춤을 추며 그려지는 동그란 원은 공허를 순정으로 채운다.
나는 새들에게 언제나 "마리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조류들은 지성체다. 머리가 나빠보인다면, 그 것은 아마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지 않은 정보들을 삭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느다란 두 다리로 땅을 디딘 후, 가뿐히 도움닫기를 하려면 머리 속 무거운 사념은 버려야만 한다.
새들은 기억해야만 할 것들만 저장한다. 그들은 다정 한 사람에게 결국 돌아온다. 땅을 콩콩 밟으며 걷는 새 에게, 놀라지말고 먼저 가라고 한 템포 쉬어 천천히 걸 어간다. 그러면 새는, 기어코 날 기억해낸다. 정처없이 걷다 보면, 어떤 길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산책길 내내 아는척 해준다. 내가 그 동네를 떠나 이사를 갈 때까지 말이다.
디즈니 만화 영화 속 캐릭터들이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때 새들이 다가와 말을 건네는 장면은, 그저 상상에 그치지 않는다. 피아노 연습을 하면 항상 찾아와 박자에 맞춰 노래를 하는 새 역시 정해져 있다. 설마, 박자에 맞춰 노래를 하는건가? 의심이 들어 프레이징을 끊고, 한동안 연습을 멈춰보았다. 새도 노래하지 않는다. 이번엔 프레이징 사이에 숨을 두지 않고, 기계적인 연주한다. 그러자 새가 창문으로 날아들어 항의한다.
새들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면,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에겐 나름의 영역이 정해져 있는 걸까? 누군가의 끼니를 아무렇게나 받아먹는 건, 어쩌면 그들만의 구역 안에서 상도덕을 어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그들끼리의 재판장에서 심판을 받는 것일지도. 그들에게도 엄연한 질서와 윤리의식이 있는 것이다.
온갖 냄새와 소리가 뒤엉킨 파리. 하지만 도시의 소음을 뚫을 듯한 최신 음원의 멜로디는, 이상하리만치 자취를 감춘다. 대신, 강아지 짖는 소리, 아이가 뛰어놀고 울음 터뜨리는 소리, 여러 악기 소리, 그리고 소와레(soirée)를 즐기는 이들의 웃음소리와 수다로 거리는 복닥거린다. 창문을 열어두고 피아노 연습을 해도, 그 누구도 항의하지 않는다.
*소와레(soirée)는 프랑스어로 저녁 시간에 열리는 사적인 모임이나 파티를 의미하며, 음악 감상, 식사, 대화 등을 함께 나누는 문화적인 사교 행사입니다.
창문까지 찾아와 지저귀는 내 친구 새들의 이름은 모두 ‘마리아’. 종에 상관없이, 그냥 모두 마리아다. 돌고 돌아 결국 정착하게 되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처럼. 철새처럼 떠돌다가도 결국 돌아오게 되는, 나의 고정된 취향이다.
한울은
이러한 시인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데
이러한 시인이 누구인 것을 세상은 몰라도 좋으나
그러나
그 이름이 사온인 것을,
나의 친구 마리아는 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