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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Oct 02. 2021

24살 꽃보다 히키코모리



※ 히키코모리 :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



우연히 상사가 나를 '정신병자'라고 지칭하는 말을 들었다.

화가 나기보다는 창피했고 그저 숨고 싶었다. 도망치듯 휴직계를 내고 본가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집에는 갈 수 없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고 싶었다.

결국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동네로 원룸을 구했다. 20년 넘게 살았던 나도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본가와 멀고 외진 동네였다.



'여기라면 우연히라도 가족들과 마주칠 일은 없겠지?'라는 마음으로 방을 잡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들과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안정감이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방 안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틀어박혀 있는 날이 많았다. 가끔씩 먹을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갈 때는 범죄자처럼 모자를 푹-눌러쓰고 땅만 보고 걸어 다녔다. 모든 끼니는 편의점 음식으로 해결하고, 청소는 일절 하지 않아 방은 엉망진창 쓰레기집이 되어있었다.


한 달에 1-2번은 꼬박꼬박 집에 내려가던 내가 어설픈 핑계를 대며 코빼기도 안 비치고 연락도 잘 안 하니, 이상한 촉을 감지한 엄마가 사무실로 전화해 나를 찾으면서 나의 '은둔 생활'은 끝이 났다.


휴직을 했다는 말에 손을 덜덜 떨었다는 엄마는 나에게 인연을 끊자고 했다. 그저 회사 다니기 싫어서 부모님 몰래 휴직을 했다고 생각한 엄마를 설득할 마음도 자신도 없었다.



결국 집으로 들어가진 못하고 집 앞에서 이상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피폐한 내 생활이 걱정된다는 언니가 집 근처 원룸으로 거처를 옮겨주었고,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반찬도 얻어먹으며 집에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곳에서 얼마간을 더 지냈다.






최근 유튜브에서 '클린 어벤저스'라는 채널을 본 적이 있다. 채널에서는 사연을 보낸 집에 가서 청소를 해주는 '헬프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집에 온갖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어 사람이 사는 곳이 맞나 의심이 드는 집들이 나온다.


'우울증 초기 증상이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먹고 주변정리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마음이 힘없이 가라앉아 잔뜩 웅크리둣, 몸 또한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상태가 된다는 것.


혼자 틀어박혀 지내던 나의 24살이 그랬다. '클린 어벤저스'를 보다가 생각했다.

'만약 엄마에게 들키지 않았다면, 나도 여기 나오는 사람들처럼 혼자 벗어나기 힘들지 않았을까?'



"네가 게으르고 나약해서 그래",
"다들 힘들어. 너만 힘든 거 아니니까 유난 떨지 마"




스스로도 나를 비난했고, 최근까지도 나는 그 시절의 내가 못마땅하고 후회스럽기만 했다.

'받아들인다'라는 운명론적인 말을 싫어하던 나는, 시간이 흐르고 다시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부딪치며 깨달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무례할 수 있고, 쓰레기를 집어던질 수도 있고, 나 스스로 오물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다.

다이아몬드에 티끌이 묻는다 하여 그 가치가 사라지진 않는다.


세상은 무균실이 아니고 나도 완전무결할 수 없다.

언제든지 오물이 튈 수도,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행인1 이 쓰레기를 집어던질 수도 있다.


나는 그저 과거의 나를 통해 파악한 데이터로 '장애물 달리기' 능력치를 레벨업하며, 단단하게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성장하면 되는 것이다.





인생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저 수동적이고 패배주의적인 단어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단단하게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첫걸음임을 깨닫고 조금은 몸에 힘을 빼고 살기로 했다.


남들이 던진 쓰레기 같은 말과 행동에 나약하게 스스로 숨어버린 그때의 내 모습도 나였고, 과거를 후회하며 최근까지도 자기 비하하는 내 모습도 나였다.



CCTV를 돌려보듯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니, '나는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한 것'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다치지 않고 나를 지키기 위해 공격보다는 방어하는 방법을 선택했을지도... 가족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따로 방을 구해서 생활하는 게 그때의 나에게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한결 나았다.


 






지금도 꽃 같은 시절을 히키코모리로 지내며 흘려보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때의 나를 부정하고 자기 비하에 빠져있지만은 않다. 나에게는 그런 여린 면도 있고, 회피하려는 성향도 있음을 받아들이고 선택의 순간이 오면 한 발짝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가끔 아니 자주 게으르고, 나약하고, 회피형 인간의 면모를 보이며 나 스스로도 내가 싫을 때가 있(많)지만, 조금은 힘을 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해나가는 어른이가 되려고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나'는 그저 '나'일뿐이고
나는 내 삶이 가장 애틋하고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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