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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Sep 28. 2021

집에도 못 가겠고 회사도 못 가겠다


그날 이후,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어찌 시보기간이 끝이 나고 나는 정식 공무원이 되었다.

보통 시보기간이 끝나면 동기들끼리 없는 주머니를 털어 답례떡을 돌리는데, 나는 같은 층에 근무하던 동기들과 함께 준비했다. 아래 문구가 프린트된 쪽지를 선배님들 이름과 함께 집어넣은 시루떡이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분명 감사한 일도 많았고 열심히 '잘'하고 싶은 마음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출근 후, 자리에 앉아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드는 때가 점점 많아졌다. 가끔은 너무 숨쉬기 힘들 때가 있어 병원에 가곤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얘기만 듣고 나올 뿐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약간의 우울감이 세팅된 채로 살긴 했지만, 내 삶에 열심이었고 잘 살아내겠다는 마음이 컸다.  '열정적이다'는 말을 듣던 나였기에 나 스스로도 지금의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내 자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만큼 움츠러든 채로,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내는 거야?


명랑 쾌활까지는 아니더라도 웃음이 많았던 나는 건조한 회색 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신경정신과를 가 볼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주변에 다니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내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며 애먼 병원들만 이따금 찾아다녔다.





그날은 아침부터 눈물 나게 회사가 가기 싫었다.


일이 힘든 것보다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이제 술자리에 불려 다니지도 않고, 쌍욕을 하는 선배도 없는데 자꾸만 숨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결국 아프다는 핑계로 하루 휴가를 냈다. 그렇게 휴가를 내고 방에 누워있으니 정말 몸이 아픈 기분이 들었다.


'안 되겠다, 오늘은 한의원에 한 번 가보자'



[나] 선생님, 숨이 잘 안 쉬어지고 폐가 쪼그라든 것 같아요
[한의사] 흠... 맥이 좀 약하고 불안정하긴 한데 특별한 이상은 없는대요



그날도 그렇게 아무 소득 없이 병원비만 쓰고 나왔다.



지--잉- 지--잉-

엄마 전화였다. 휴가 썼다고 하면 걱정할 것 같아 전화를 받지 않자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많이 바빠~? 엄마가 사무실로 떡케이크 보냈는데, 받았어?"


???

헐?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엄마~웬 떡케이크?
[엄마] 응~너 시보기간도 끝났는데 엄마가 멀리 있어서... 사무실 사람들이랑 같이 나눠먹으라고ㅎㅎ 배달완료 문자는 받았는데 연락이 없길래~
[나] ...응 근데 나 오늘 잠깐 들를 데가 있어서 휴가라 사무실 아닌데..
[엄마] 아 그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나] 응. 사무실에 연락해볼게.. 동기들이랑 답례떡 돌려서 이런 거 따로 안 해도 되는데..
[엄마] 그래도, 우리 딸 기도 살고 예쁨 많이 받으면 좋잖아 ㅎㅎ


'고마워'라고 말하고 죄지은 사람처럼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선배에게 연락하니 엄마가 보낸 꽃 앙금이 가득한 떡케이크 사진을 보내줬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뭔지 모를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집에도 못 가겠고 회사에도 못 가겠다



빵 빠-앙- 빠----앙

"야!! 너 미쳤어?"


멍하니 서있다 빨간불에 도로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클락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죄송합니다' 외치며 도망치듯 관사로 향했다.



'엄마 딸 잘 못하고 있는데 어떡하지?'

'누가 나 좀 숨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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