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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Aug 13. 2022

시어머니의 깜짝 선물에 며느리의 반응


'고졸에 백수 며느리'라는 시누의 망언과 시부모님의 호통에 연을 끊고 지낸 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시누의 사과 전화와 시부모님과의 극적인 화해를 끝으로 우리는 다시 화목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은 나와 남편, 그리고 시부모님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서로에게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는 첫 번째 계기가 되었고 나는 이를 '며느리 1차 해방운동'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저항을 시작으로 나는 '30년간 친정을 10번도 채 가지 못한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 다시 다짐하며 이왕 안 예쁜 *며느라기 된 김에 순응이 아닌 항거(?)를 하기로 결심했다.




웹툰 <며느라기> 中




 


엄마의 시집살이를 보고 자란 어린 시절 내 눈에도 엄마의 희생을 고마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마워했겠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순간의 며느리로서의 엄마 모습은, 너무도 당연하게 온갖 일은 다하고 온 가족 밥상 다 차려준 후 작은 밥상 끄트머리에 앉아 밥 먹는 중간에도 이것저것 심부름하느라 바쁜 모습뿐이었다.


너무나 소소한 것들이라 고맙다는 말도 생략하는 시댁 식구들에게 항상 웃어 보였고, 


"외할머니 보러 안가?"라고 묻는 순수한 내 질문에 쓴웃음을 지으며 "다음에.."라고 했다.


할머니는 "전은 네가 지지는 게 맛있더라~", "이건 무거우니까 (아범 말고) 네가 들어라~"를 시전 하시며


하루 종일 일하느라 앉을 틈도 없는 며느리에게 더 못 시켜서 안달이셨다. 엄마는 고모와 고모부가 오면 당연하게도 그들의 밥상과 술상까지 차리느라 친정에 갈 생각은 못하고, 고상하게 앉아 가족애를 다지는 시댁 식구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언제나 새벽이 되어서야 우리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며 집에 가자고 하셨다.


(아빠는 거의 매번 술 먹고 다음날 택시를 타고 혼자 돌아오셨으니 며느라기 주인공 남편보다 더 '나쁜 남편'이었다)




웹툰 <며느라기> 中




아버지와 남편 모두 장손이라 흔히 말하는 큰 집인 우리 시댁에는 명절마다 온 식구들이 모였다.


그 온 식구라 함은 시아버지의 형제들과 결혼하지 않은 그들의 자식들로, 다 모이면 성인만 15명 정도 되니 집이 꽉 찰 정도였다. 시어머니는 15인분의 음식과 제사음식 그리고 친척들이 집에 갈 때 빈손으로 가지 않도록 어마어마하게 많은 음식을 준비하셨다.


처음에는 각자 집에서 조금씩 음식을 해오던 친척들은 어느 날부터는 과일 한 상자를 들고 들어오며

"준비하느라 고생했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식사 중에는 "어머 이거 맛있다~^^* 언니 이거 넉넉히 했어? 우리 딸 공부하느라 못 왔는데 이거 좋아할 것 같은데~"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댔다.




그렇게 첫 명절 행사를 치른 후 내게 남은 건 시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나는 겨우 명절 전날 와서 거의 완성해놓은 음식을 거들기만 하니 며칠을 혼자 고생하셨을 텐데..'

'나는 젊기라도 하지,
우리 어머니는 허리도 아프신데...'







본인 며느리를 들이고도 시누들에게 무보수 봉사 중인 시어머니를 보고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그리고 신혼 초 시부모님이 보니기엔 '파격적인(?) 며느리의 말과 행동에 적잖이 충격을 받으셨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늦은 깨달음을 얻었다.


첫 명절을 지내고 집에 가는 길, 남편에게 왜 어머니 아버님은 굳이 저렇게 두 분이서 고생하시는지 물었다. 남편과 시누는 매번 명절마다 그런 친척들이 얄미워 다음부터는 각자 가족들끼리 보내자고 부모님을 설득했지만 두 분은 완강하시다고... 본인도 자식으로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시부모님의 그러한 사서 고생하시는 행동의 이유인즉슨.

두 분 모두 보수적인 경상도 집안의 장남, 장녀로 태어나 강한 책임감을 장착(?) 하신 분들이고.


삼촌, 숙모들 자식이 결혼해서 그들의 사위, 며느리가 생기면 오라고 해도 안 올 텐데, 우리가 고생하더라도 명절이라도 이렇게 얼굴 봐야지 라는 마음이시라고.





드라마 <며느라기> 中



그리고 다음 명절이 돌아왔다.

음식은 두 분이 거의 다 준비하셨고 사실 나와 남편은 육체적으로 힘들게 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친척들이 오기 전 시어머니가 나를 급히 부르셨다.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달린 꽃무늬 앞치마와 덧신을 건네주시며..


 눈치 없는 나는


[나] "오 예쁘네요~^^ 근데 어머니 저 집에서도 앞치마 잘 안 해요. 옷도 편한 거라~ 어머니 하세요~"
[시어머니] "아니.. 친척들 오면 며느리가 앞치마를 하고 있어야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 그리고 어른들 앞에서 발 보이는 거 아니니 덧신은 꼭 신어라"



뭐지?


싶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니 깨끗한 앞치마를 유니폼처럼 걸치고 덧신을 신었다.

그리고 시끌시끌한 소리와 함께 친척들이 하나둘 도착했고 나의 앞치마가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받았다.




웹툰 <며느라기> 中

웹툰 '며느라기'에서 주인공인 민사린이 시어머니에게 깜짝 선물을 받았는데 그게 앞치마였던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때 '착한 며느라기'인 주인공은 분명 선물인데... 뭔지 모르게 기분이 상하고 찝찝한 마음과 미묘한 불쾌감을 느낀다.


옛날 어른들은 딸을 시집보낼 때 아래와 같이 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


지금보다 더 눈치가 없던 당시의 나는 '우리 어머니... 취향이 참 소녀 같으시네'라고 생각했는데, 후에 인기가 많은 웹툰이라 드라마로까지 방영된 며느라기에서 앞치마 에피소드를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이른 아침 모인 친척들과 제사를 지내고 시댁에 있는 상이란 상은 다 꺼내 10명이 넘는 성인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역시나 여자 쪽 상에서는 숙모들이 "언니 이거 맛있네~"하면 어머님이 "이따 갈 때 좀 싸줄게"라는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 숙모 한 분이 본인 아들의 빈 그릇을 보며 얘기했다.


[숙모] 어머 벌써 다 먹었어? 좀 더 먹어~
[사촌] 그럴까?



나를 쳐다봄..

'응? 왜 나를 쳐다보지?'



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내 몸은 보고 자란 게 있어서인지 반사적으로 일어나 국을 퍼서 공손히 전했고, 그렇게 몇 번을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심부름을 하며 묘한 기분으로 밥을 먹었다.


... 특히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단골 소재였는데, 그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고부 갈등'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올가미>나 <사랑과 전쟁>에 나오는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순간 타이밍을 놓치면 다시 그 일을 끄집어내 따지기 어려운 미묘하고 사소한 사연들이었다.

by. 며느라기 작가 수신지


집에 온 손님을 대접하는 주인이라면 기분 좋게 챙겼을 텐데, 이 애매한 관계에서 은근히 하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내가 느낀 묘한 감정은 나중에 수신지 작가의 글의 보니 요즘 며느리들의 흔해빠진 고민이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과일과 커피타임.

집에 가려면 3시간, 집에 가서 짐 정리하고 다시 친정까지 가려면 적어도 1시간.


먼길을 가야 하는데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이니 결국 나는 남편에게 눈치를 줬고,

"아~저희는 이제 가봐야겠네요^^ 차도 막히고 갈길이 멀어서요"라고 말하며 함께 일어섰다.


그렇게 어색하게 웃으며 짐을 챙기러 방에 가는 나를 시어머니가 따로 안방으로 부르셨다.



[시어머니] 친척 어른들이 아직 계시는데 네가 먼저 자리 뜨는 건 예의가 아니다!
[나]?? 어머니, 저도 친정 가야죠 ^^
[시어머니] 어차피 친정은 가까우니 평소에도 자주 가지 않니? 그리고 오늘 저녁 먹는 거 아니니?
[나] 그렇긴 한데 더 늦게 나가면 차도 막히고 집에 들렀다 가려면 좀 빠듯하더라고요~ 저희 집에서 매번 저희가 제일 늦게 가서 언니랑 형부한테도 미안하더라고요
[시어머니] 멀리 시집왔으면 그건 당연한 거지! 저번에도 너희 먼저 일어나서 가버리니 어른들한테 안 좋은 얘기 나왔다. 이제 갓 시집온 애가....


방문이 벌컥 열리고 남편이 등장했다.


[남편] 어머니! 나도 장거리 운전하고 피곤해서 집에서 잠깐 쉬었다 가려면 지금 출발해야 돼요!
삼촌, 숙모들은 자식들이 다 결혼 안 했으니 뒤에 할 일이 없지만 우리는 아니라고요


어머니는 화가 나신 듯 나와 남편을 번갈아보며 어이없어하셨지만 잔다르크처럼 한창 며느리 해방운동에 빠져있던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방을 빠져나왔고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에서 무슨 정신이었는지 인사를 헤대며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길


어머니 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며 운전하는 남편의 표정도 좋지 않아 보였다.

남편에게는 멀리 떨어져 사느라 1년에 몇 번 보지도 않는 소중한 부모님일텐데.. 그것도 명절 마지막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고, 나는 왠지 화가 나기보다 이 상황이 너무 불편하고 답답했다.



우리 할머니도 매번 고모들 오는 것 보고 가라며 엄마를 붙잡아뒀다가 그렇게 엄마는 이틀을 시댁에서 있었다. 아빠는 고모부들과 낮부터 술에 취하고 음식 준비하랴, 뒷정리하랴 점심상, 저녁상에 술상까지 차리던 엄마는 언제나 새벽이 다돼서야 본인 친정이 아닌 집으로 오셨다.


보통은 결혼한 형제를 보고 가라고 은근히 눈치 주는 시어머니가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 시누는 결혼을 아직 안 했으니 집에 있다. 그런데 나는 시누도 아니고 시어머니의 시누 눈치를 봐야 하나?


우리보다 어른이니 먼저 자리를 뜨는 게 좋게 보이진 않아도 그렇게 따지면 나도 엄연히 손님 아닌가?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면서! 혼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심지어 다수의 어른들이 "너희 행동이 잘못되었다" 꾸짖는 것 같으니 진짜 내 생각이 틀려먹었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웹툰 <며느라기> 中



"며느리로서 어찌어찌해야 할 것 같은 마음"

한국사회에서 시부모가 결혼 생활에 끼치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학습한 여성들은 평탄한 결혼 생활을 위해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시부모의 지지가 자신에 대한 남편의 애정을, 가정의 안정을 담보한다는 믿음이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했던 시간"
이라고 표현한 자괴감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노력했던 여성이 그로 인해 불행해진 자신을 깨닫고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다.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해 순응할 것인가, 갈등이 생기더라도 부딪쳐 벗어날 것인가?

by. <민사린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칼럼 中



검찰청에 다닐 때 모두가 싫어하는 당직이 유독 여자선배들에게 인기가 많은 시기가 있었다, 명절!

그들은 모두 기혼의 여성들로 누군가의 며느리였다. 분명 육체적으로 힘든 건 시댁가기 보다는 당직이다.


그런데 왜 며느리만 되면 육체적으로 더 힘든 당직이 하고 싶어 질까?


옛날 조선시대처럼 며느리들이 하녀처럼 온갖 궂은일을 다 하는 것도 아닌데?



결국은 '며느리'라는 자리에 놓인 여자들이 겪게 되는 복잡 미묘한 그 감정들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나 사소해서 말하기도 유치하고 묘하게 기분이 나쁘니 표현할 말을 찾기도 힘든 그런 자연스러우면서 무의식적인 일상 같은 일들이다.








결혼 초 남편과 시댁문제로 한창 다투던 시기에 마음속에 늘 드는 생각이 있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그냥 나만 참으면 되는 건가?

내가 여우 같지 못하고 곰탱이 같아서 현명하게 대처를 못하는 걸까?

잘살려고 결혼한 건데 이런 걸로 싸워서 남는 게 뭐지?


회사일은 일의 이유와 목표가 있고 원하는 결과와 대가가 명확하다. (성과급이든 승진이든)

그리고 상하관계가 뚜렷하지만 직급과 경력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있다.




웹툰 <며느라기> 中



그런데 우리는 뭐 때문에 이렇게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는 걸까?

나와 남편의 결혼 목적을 정의하라면 단순하게 '행복하게 잘 살자' 였는데, 지금의 나는 행복하지도 않고 결혼 전보다 잘 살지도 못하는 것 같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생판 남이던 어른을 (시)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며 무뚝뚝한 나도 살가운 척 노력한다. 그런데 내가 남편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친척에게까지 눈치 보며 순응해야 하는 건가?


왜?

뭐 때문에?


두 남녀의 만남이 아니라 두 집안의 결합인 한국의 결혼제도에서 시부모님에게 있어 자식의 결혼이란, 특히 시댁 입장에서는 "며느리 잘 들였네~"라는 말을 듣는 게 목표인 걸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무언가에 저항하기보다 순응이 더 쉽고 편한 게 본능이다.


며느리가 살림 솜씨도 없거니와 본인들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의 시부모님이 나에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착하고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며느리 코스프레'만 1년에 몇 번 해주면 되는데...


내가 곰도 여우도 아닌 애매한 인간이라서일까?


어린 시절에 침묵했던 불편함을 내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왜 엄마는 맨날 혼자 고생하면서 살아?"라고 묻던 어린 시절의 내가 나에게 되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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