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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Aug 08. 2022

고졸에 백수 며느리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검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퇴직했음에도, 혼인연령이 높아져서인지 당시 내 주변인들 중에는 20대 중 후반에 결혼을 한 또래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연애 때는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남편과는 결혼 준비과정에서부터 다툼이 시작되더니, 신혼 초반은 크고 작은 일들로 부부싸움의 피크를 찍었다.


귀한 장손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커서인지 시부모님은 며느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고, 합의 후에 퇴사했음에도 결혼 전에 퇴사를 한 것, 마음에 안 드는 예단, 전라도라는 지역, 조신하지 못한 나의 웃음소리 등 거슬리는 게 많으신듯했다.





시부모님이 마음에 드셔 하는 나의 얼마 없는 조신한 모습은 결혼식장에 서였다고 한다.


결혼 전날까지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 말 그대로 식장에 들어가면서도 "이 결혼을 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님맞이용 미소를 열심히 지어보았건만..


약간의 우울함과 슬픔이 섞인 내 표정이, 밝고 환하게 웃는 발랄한 신부보다 조신해 보이고, 특히 친정부모님께 인사하는 순서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렀던 것이 그분들을 더 만족시킨듯했다.


 


어찌어찌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시작한 결혼생활.

시댁과 신혼집은 3시간 거리이니 크게 부딪칠 힐 없을 거라 생각하던 나의 예상은 초반부터 빗나갔다.





시어머니들의 단골 대사인

 "얘, 너는 왜 전화 한 통이 없니?"부터가 시작이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유한 시어머니와 달리 가부장적이고 괄괄한 성격의 시아버지까지 나를 닦달해대니, 엄마의 시집살이를 보고자란 나로서는 더 반발심이 생겨났고.

특유의 툭툭 내뱉는듯한 말투와 시아버지의 혼내는 듯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마음에 콕콕 박히는 느낌이었다.



서울로 대학을 간 남편은 결혼 전까지 10년 넘게 부모님과 통화도 자주 하지 않았고, 명절. 생신 외에 찾아뵙는 일도 거의 없었다 했는데... 옛날 친할머니가 우리 엄마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내가 그대로 듣고 있었다. 뭔가 옛날 드라마에서 보던 불쌍한 며느리가 된 느낌이라 자존심이 상하고, 전화 한 통, 살가운 말 한마디 한번 더 하라는 그 간단한 요구사항이 내 마음을 너무 불편하고 상하게 만들었다.




요즘 시대에 남녀차별이 어디 있어?
오히려 여성 우위인 시대 아냐?


라는 말은 헛소리였고 성차별 금지법 제제가 없는(?) 가정 내에서는 여전하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선을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신혼생활을 지내던 중 선을 넘는 일이 생겼다.

발단은 우연히 본 남편과 시누의 카톡 대화였다.



[시누] 새언니는 결혼했으면 전화도 쫌 자주 하고, 자주 찾아봬야 하는 거 아이가?
[남편] 네가 왜 신경 쓰는데? 네 새언니도 집안일하랴, 다시 취직 준비하랴 바쁘다!
[시누] 지금은 백수 아이가? 솔직히 고졸에 백수 며느리 누가 좋아하나? 본인이 노력을 안 하니 엄마 아빠가 서운해하는 게 당연하지!




'고졸에 백수 며느리'


시누가 그런 단어를 사용한 건 시댁 식구들 모두 나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동안 나를 얼마나 얕잡아 봤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나쁜 쪽으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고졸이 아니라 대학 재학 중에 공무원 합격해서 일찍 사회생활 시작한 건데'


'합의하에 퇴사 후 결혼식 올리고 쉰 지 겨우 2달 된 것 같은데? 지금 다시 취업 준비하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그렇게 평가된 게 처음이라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졸+백수라는 단어가 객관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라서? 핸드폰을 들던 손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났다.




무슨 일이냐고 놀라서 묻는 남편에게 시누와 나눈 카톡 메시지 창을 보여주며, 나는 유치 찬란한 대사들을 내뱉으며 따져 물었다. 아니 악다구니를 질렀다.


"너희 집은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내가 시누보다 좋은 대학 나왔어!"


(정확이 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분명히 남편이 상처받을 만한 말을 쏘아대며, 이미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나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유치하지만 이런 식의 말 밖에 나오지 않았던 듯하다)


남편은 "미안해"라는 말을 반복하며 시누에게 말조심하라고 주의시켰고, 우리 부모님은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라고 달랬지만 이혼하고 싶지 않으면 나는 연 끊고 살겠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내뱉었다.





남편은 전화로 시누에게 화를 냈고, 시부모님이 옆에서 듣고 계셨는지 '시누가 말실수한 거니 본인들이 주의시키겠다, 마음 풀고 주말에 식사라도 하자며 오시겠다'라고 했다.


조신한 성격이 아닌 나는 "지금은 뵙고 싶지 않다,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고, 시부모님은 어른이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들어야지 왜 고집 피우냐며 점점 언성을 높이셨다.


그리고 결국에는 "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냐?!"라는 말씀까지 하시며 먼저 연을 끊자고 하셨다.




기분이 상한 건 나고,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도 나지만 어른이 말하면 바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내 마음은? 나도 어른인데??



이혼하자는 얘기에 무릎 꿇고 사과하는 남편은 네가 원하면 나도 부모님과 연 끊고 살겠다는 말을 했고 그렇게 나는 천하의 불효자식을 만들어버린 며느리가 되었다.




시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남편은 사춘기도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고, 한 번도 부모님 말씀에 거역하거나 말대답을 하지 않는 착한 아들이었다고 한다. 내가 겪은 남편도 충분히 그랬으리라 예상되는 사람이었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나와 달리 무던하고 안정적인 성격의 남편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까지 편해지는 느낌이었고, 기본적으로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선함이 베이스로 깔려있는 남편의 착함은 나까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할 정도였으니.


그런 아들이 며느리한테 말 한마디 서운하게 했다고 부모님께 언성을 높이고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자는 말에 화를 내며 동의(?) 하니 시부모님은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그리고 속된 말로 며느리 치마폭에 둘러싸여 부모고 뭐고 안 보이게 만든 내가 밉고 여우 같았을 듯.





그 뒤로 결혼 후 처음으로 시부모님과 일절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동안 서로 말로 상처를 입히며 자주 싸웠던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여행도 다녀오고, 서로에게 더 조심하려고 노력했지만 나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고 무엇보다 남편이 신경 쓰였다.


효자인 남편은 특히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는데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은 "용서해주면 안 될까?" 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자주 슬픈 눈(?)을 보였다.


친정에도 혼자 다니고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고 불편한 상태로 일상을 보내던 중 시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너희와 그렇게 되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아버님은 식사도 제대로 안 하신다'며 거의 흐느끼며 말씀하셨다고 남편에게 전해 듣는데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한 달 넘게 시간이 지나서일까?

가족이니 그런 것일까?


우리는 그렇게 다시 단란한 가족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즈음 나는 공무원 때보다 더 좋은 조건의 직장으로 취업에 성공했고 백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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