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버 Aug 15. 2021

0.5점이 나를 살렸다

실패자로 돌아가는 게 너무 무섭다


드디어 시험 D-1일이 되었다.

'며칠만 미뤄졌으면...' 하는 마음과 '빨리 보고 해치워버리고 싶다'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전 날까지도 '완벽한' 준비가 되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시험 당일 차로 바래다주던 엄마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에 도착했다. 공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시험날 책 바리바리 싸가기' 신공을 보이며 배치받은 교실 자리에 앉았다.


시험감독관이 들어와 모든 책을 교실 앞으로 갖다 놓으라는 말이 있을 때까지 책을 봤다. 원래 그런 때가 가장 집중이 잘 되는 때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준비가 덜 되었다는 불안감에 책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시험 시작




무슨 정신으로 문제를 풀었는지 모르겠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듯 내내 흥분상태에서 시험을 보고 온몸에 진이 빠진 채로 시험장을 나왔다.


'국어, 영어랑 법 과목은 괜찮았던 것 같은데, 한국사는 망했다... 과락 나오면 어떡하지?' 남들은 효자 과목이라는 한국사가 끝까지 나의 발목을 잡았다. (이과생이라는 핑계를 대기엔 수학을 그리 잘하지도 못했다...-_-)





시험이 끝나고 집에 와서 가채점을 해보니 애매한 점수가 나왔다. 소위 말하는 1타 강사들이 예상하는 커트라인에서 왔다 갔다 하는 불안한 점수


공시생 커뮤니티에는 커트라인을 예상하는 글, 포기하고 다시 독서실을 끊었다는 등 매일같이 온갖 글이 올라왔다. 수험생활 초반 학원에 등록할 때, 받을 수 있는 가산점 중 최대 점수의 자격증을 무. 조. 건. 따놔야 한다던 원장님의 말씀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대학을 1년밖에 안 다녀서 0.5점 가산점이 최대였던 나는 공부하는 와중에, 정보기기 운용기능사 자격증을 따러 컴퓨터학원을 다녔었는데, 당시에는 '바빠 죽겠는데 0.5점이 뭐라고' 라며 투덜댔었다. 그런데 시험을 한 번 치르고 나니 0.5점이면, 수많은 수험생의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점수였다. 갈림길에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아빠와의 갈등은 다시 시작되었다. 


사실 가족 중 누구도 내가 합격할 거라 기대를 안 했으니, 처음부터 반대했던 아빠 입장에서는 애매한 점수를 보고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빠] "더 이상의 지원은 없어, 학교 복학해!"
[나] "결과 나올 때까지만 생각해볼게.. 그리고 지금 전공 나랑 너무 안 맞아"
[아빠] "맞는 것만 하는 사람이 어딨어?! 당장 복학 준비해!"




나는 복학은 정말 하기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년 늦어지는 게 뭐가 대수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왠지 실패자가 되어 돌아가는 느낌에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생각이 있다.

나는 수험기간 동안 내가 떨어질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스스로 만족할 만큼 매일같이 열심히 공부했던 것도 아니었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고, 뭐든지 ' 아니면 도'인 나는 공부가 안되면 풀로 쉬었다.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고, 적은분량이라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쉬는 건 안된다는 수험가의 말들은 내 체질(?)에 안 맞았다.


남자 친구가 휴가 때마다 놀았고 심지어 그의 부모님과 몇 시간 동안 차 타고 군부대 면회도 다녀왔다.

시험 100일 앞두고 남자 친구에게 차이고 멘탈이 나갔고, 가장 중요한 시험 D-30 중 2주는 거의 공부를 안 했다. 그런데 명언을 주문처럼 외워대서 스스로 세뇌가 된 건지 현실 도피한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때의 나는 내가 불합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운이 좋게도,
0.5점이 나를 살려 합격할 수 있었다.


이전 05화 개같이 공부해서 정승같이 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