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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Aug 08. 2021

개같이 공부해서 정승같이 놀자

너무 간절했고 너무 불안했다


D-100일이 지나고 시험까지 두 자릿수가 남았다.

나는 서점에 가는 횟수가 아졌다.


힘든 시기를 이겨낸 당당한 위인(?)들의 자기 계발서를 격일로 읽어재끼며,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공부 초반과 다르게 책의 약발이 빨리 떨어지는 만큼, 책상 위의 포스트잇의 내용도 매일 같이 바뀌었다.



나태함, 그 순간은 달콤하고 결과는 비참하다
불광 불급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죽어라 열심히 공부해도 죽지는 않는다
개같이 공부해서 정승같이 놀자




이런 오글거리는 포스트잇을 적어 책상 앞, 양옆에 붙여놓으니 같이 공부하던 언니는 내 자리 올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인터넷 카페에서 읽는 합격수기와 명언 포스트잇이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이 되었다. 너무 간절하고, 너무 불안했다.


마음은 급한데 '이 시기에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인강 들어야 할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거나 책방에서 만화책을 빌려 보기도 했다.

공부가 안 되는 날에도 집에는 갈 수 없었다. 부모님은 안 계셔도 엄마의 스파이 노릇을 하는 동생이 있어서, 조금만 티브이를 보고 있어도 전화로 일러바쳤다.


(공부에 1도 관심 없어 대학도 안 가겠다던 동생이 왜 그렇게 언니의 공부에는 관심이 많았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100일도 안 남은 하루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공부가 잘 된 날 / 공부가 안된 날






수험생에게 기분 좋은 날은,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정신없고 잠이 쏟아져도 집중이 잘 된 날이다. 엉덩이만 붙이고 시간만 흘려보낸 날은 스스로부터 자기혐오 끝판왕에 기분도 최악이다.



시험을 한 달 정도 앞두고, 불안해진 나는 공부가 되든 안되든 퇴실시간이 더 늦어졌다.


독서실 퇴실시간이 새벽 2시였는데, 사장님은 새벽 1시 30분부터 빈 방부터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하셨다. 나는 귀마개를 끼고 '안 들리는 척' 2시에 딱 맞춰 퇴실하는 싫은 유형의 학생이었는데, 그게 나름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공부가 힘든 것보다 불안한 마음에 점점 더 예민해졌다.

늦게까지 공부하니 당연히 다음 날 아침 공부를 시작하는 시간도 늦어졌다. 어느 주말 아침, 전날도 새벽까지 공부하고 늦잠을 자고 있는 방에 아빠가 들어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수험생이 이 시간까지 뭐 하는 거야?! 잠이 오냐?"


비몽사몽 일어나면서도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빠의 말 때문만은 아니고 어쨌든 수험생 신분에 늦잠을 자면 언제나 죄책감을 안고 일어나게 된다.


세수만 하고 공부할 책들을 챙기려 책상 에 있는데, 잔소리가 남았는지 아빠가 따라 들어오셨다.


"너는 이래 가지고 합격하겠냐? XX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독서실 간다고 하더라."


시험 한 달 앞두고 전 날 늦게 자서 비몽사몽 책가방을 싸던 나는 한숨이 나왔다.

당연히 표정도 안 좋았을 것이다.



탁!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빠가 내 머리를 손으로 휘갈겼다.


"아빠가 얘기하는데 한숨을 쉬어?"

 

놀란 눈으로 맞은 곳을 만지며 아빠를 쳐다보는데, 부모를 그런 눈으로 쳐다본다고 2,3대를 더 맞고야 독서실로 피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봐온 아빠의 폭력적인 성향이 낯설진 않았다.


그래도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처음인 것처럼 항상 심장이 벌떡벌떡 뛰고 왠지 마음이 찡했다.




이런 일은 수험생활 초반에도 있었다.


수험생활 초반 3개월은 학원 종합반을 다니며,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저녁 늦게 집에 오는 패턴이었다.


점심은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빈 강의실에서 혼자 먹었고, 저녁은 편의점이나 분식집 김밥으로 때웠는데 그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집으로 온 날이었다. 터덜터덜 집에 오니 엄마와 언니는 티브이를 보고 있었고, 나는 부엌에서 밥통을 열어 밥을 푸고 있었다.


밥을 푸는 나에게 아빠가 다가왔다.

[아빠] "이때까지 밥도 안 먹고 뭐했냐?"
[나] "공부하느라 못 먹었지"



찰싹!

밥통에 몸을 부딪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빠가 내 뺨을 때린 것이다.


"부모가 걱정돼서 물어보면 대답을 좋게 해야지, 공부하는 유세 떤다고 짜증 내면서 얘기해?!"


짜증 낼 힘은 없었고, 당연히 표정은 안 좋고 내 말투도 공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게 하루 종일 공부하고 온 자식 뺨을 내릴 일인가? 역시 아빠는 나랑 안 맞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상처는 뺨이 아니라 마음에 남았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엄마와 언니는 아빠를 말리지도, 나를 위로하지도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행동했다. 분명히 봤을 텐데, 들었을 텐데. 푸던 밥을 다시 밥통에 붓고 샤워하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폭력적인 아빠가 무서웠고,
방관하는 엄마가 미웠다.



말리면 내 편든다고 더 흥분할 아빠라서 해 준 배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일은 아직까지 마음에 남아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시큰해진다.






수험생활 동안 나에게 가장 마음 편한 곳은 독서실이었다.


대부분의 날을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챙겨 들고 독서실로 향했다.

오전에는 내내 엎드려서 잤다. 그리고는 12시쯤 일어나 점심을 먹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잠을 깨고 공부를 시작했다. 저녁은 가끔 집에 가서 먹거나 독서실에서 도시락을 먹었고 집에는 늦은 새벽에 들어갔다.


같은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언니는 오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잘 거면 뭐하러 일찍 나오냐고 했지만,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가장 편안한 생활 루틴이었다.


집 앞 상가에 있는 독서실이라 집까지 5분 거리지만 가끔 누워서 자고 싶을 때에도 의자를 여러 개 붙여놓고 독서실에 누워서 자는 게 잠이 잘 왔다.


독서실과 책방은 10개월의
수험생활 거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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