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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Aug 06. 2021

너 이번에 떨어져! 삼수할 거야

시험 D-100일


어느덧 시험을 100일 정도 앞둔 추운 겨울이 되었다.

고시든 공시든 수험가에는 떠도는 여러 풍문이 있는데 그중 유명한 진리 하나.


공부하면서 누구를 사귀지도 말고,
누군가 있다면 헤어지지도 말라



오랜 시간 고립되어 공부만 하다 보면 자존감이 높아질 일보다는 떨어질 일이 많으니, 마인드 컨트롤 하기가 싶지 않다. 그러니 '최대한 평점심을 유지해라'라는 의미인데 공시생 겸 군대 간 남자 친구를 기다리는 곰신이었던 나는 시험을 100일 앞두고 전화로 차였다.


이등병 생활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거 전화로 다 받아줬더니 ㅂㄷㅂㄷ
나랑 결혼한다고 해놓고! (남자를 처음 만나봐서 무지했다)



차인 이유는 하나, 본인이 '불안'하단다. 


나는 원래도 사회성이 좋은 편은 아니고 학원에서 친구를 사귈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단과로 듣던 법 과목은 3명이 들었는데 그중 가까워진 남자 사람(나보다 10살 많음)과 가끔 도시락을 같이 먹거나 가는 길에 차를 얻어 타는 때가 있었다.


남자 친구와는 저녁 먹은 후 잠깐 통화를 했는데, 군인인 남자와 공시생인 여자가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_-


'공부 잘돼? 밥은 먹었어?' 순서로 얘기하다 가끔씩 그 오빠분 얘기가 몇 번 나왔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그게 불안해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헤어지자는 말이었다.



???

시험 100일 앞두고 심신 미약(?)인 상태에서 차이니 정신이 나가버렸다.


하루 종일 울면서 헤어진 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못하고, 3일을 꼬박 울며 자다 깨다 반복했다.

(매달리고 싶었는데 군대에 있으니 매달릴 수도 없었다)



이런 나를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엄마가 4일째 되는 날 방에 들어와 조용히 말씀하셨다.


"걔는 힘들어도 어떻게든 시간만 버티면 되지만, 너는 시간을 버티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해. 제삼자의 눈으로 너를 객관적으로 한번 봐. 네 모습이 어떤지. 나중에 후회 안 할 자신 있는지"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고, 나를 책망하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엄마의 말이 맴돌아서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방 책상에라도 앉았다. 그런데 그 애 생각에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


'제삼자의 눈으로 나를 보면 바보 같아.. 근데 내 마음이 맘대로 안 되는 걸 어떡하지?' 얼마간 고민하다 저녁 준비하는 엄마한테 슬그머니 다가갔다.



"엄마. 나 공부하고 싶은데 공부가 안돼. 저번에 엄마가 다녀왔다던 신내림 받은 용한 점집 알려줘." 


???

엄마는 얘가 제정신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 말했다.


"... 거기 골목골목에 있어서 찾아가기 힘들어"

"괜찮아. 가봐야 될 것 같아. 그래야 내 마음이 잡힐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시험 100일 앞두고 남자 친구에게 차이고, 다시 마음을 잡는데 왜 갑자기 점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간절했다. 꼭 물어봐야 할 말이 있었다.


엄마는 종이에 버스정류장 이름과 대략적인 골목 위치를 그려주고, 못 찾겠으면 점집에 전화하라고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주셨다.





추운 겨울에 골목 여기저기 헤맬 것이 뻔하여 목도리, 장갑, 어그부츠까지 온몸을 칭칭 감고 나가려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고등학생밖에 안 된 동생이 "언니! 내가 같이 가줄게!"하고 따라나섰다.

그렇게 동생 손을 꼭 잡고 버스를 타고 점집이 모여있는 동네로 갔다.


그날은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고, 겨울바람이 뺨을 후려치는 듯, 얼굴이 추위와 바람으로 꽁꽁 얼어버린 듯한 날이었다.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주택가의 점집 골목들을 돌고 돌아 신기하게도 그 집을 찾아냈다.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계세요?" 부르니 방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시더니 "추운데 어여 들어와~" 하시며, 방바닥이 뜨끈한 방으로 손짓하셨다. 뜨끈한 온돌방의 온기에 얼었던 몸이 풀려서인지, 점을 보기도 전에 마음이 노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적당히 몸이 녹을 때쯤, 점쟁이 할머니는 "그래! 이리 와서 앉아봐!"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할 준비를 하셨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보고 탁자에 쌀을 차악- 뿌리고, 갑자기 부채를 들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할머니. 엄마 말로는 애기 동자신이 들렸다는데 갑자기 소름 끼치게 애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왜 왔어?"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데, 남자 친구랑 헤어져서 힘들다 주절주절 늘어놓으니, 갑자기 말을 탁 끊는 애기 동자



"너 이번에 떨어져! 3년 걸려!"
"너는 손재주가 있어서 기술직 해야 돼!"



옆에 엄마가 계셨다면 재수 없다고 소금 뿌리고 나왔을 말을 잘도 줄줄 말씀하셨다. 왠지 나는 그 말에는 큰 감흥이 없었고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 헤어진 걔가 제 마지막 남자인가요?"

"아니! 앞으로 5명의 남자가 남았어!"


그 뒤로 애기 동자신의 손을 잡고 고해성사하듯이 눈물을 펑펑 쏟고 나니, 마음속 무언가가 씻겨 내려간 기분이 들었다. 애기 동자에서 다시 할머니로 돌아온 점쟁이는 "네 성의껏 돈 두고 가!"라며 쿨하게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공시생이라 돈이 궁했던 나는 '뭐지? 그럼 안내도 되는 건가?' 하다가 신점 보고 돈 제대로 안내면 재수 없다는 말이 생각나 2만 원을 슬그머니 올려놓고 나왔다.





밖을 나와보니 눈보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서 다니던 길도 헷갈릴 마당이었다. 당연히 집으로 오는 길도 한참을 헤매다 버스를 탔다.


멍하니 버스 밖을 보다가 학원 앞에 있던, 비싸 보여서 보기만 했던 중국집이 눈에 들어와 급하게 벨을 누르고 후다닥 내렸다. "뭐야~갑자기 왜 내려~?" 하는 동생에게 "언니가 맛있는 거 사줄게" 하며 들어간 중화요릿집.


친절한 직원분이 노란 해바라기와 붉은 꽃 벽지로 화려하게 꾸며진방으로 안내해 주셨다.


3일간 거의 먹지 않았던 나는 갑자기 식욕이 돋아 수중에 있는 돈에서 먹을 수 있는 대로 다 시켰다. 시답지 않은 얘기로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고, 나온 음식을 다 먹고 집으로 가는 길. 배가 불러서인지 훨씬 덜 춥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오랜만에 울지 않고 푹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다음 날부터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험생 입장에서 삼수한다는 점쟁이의 말이 더 불안하고 공부할 의욕을 사라지게 했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직 그 아이가 나의 마지막 남자인지 아닌지 그게 중요했다 (오글)


공부는 내 노력으로 컨트롤할 수 있지만, 사랑은 처음이었던 나는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애기 동자신의 말을 들으니 이별의 아픔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21살의 나는 시험에 떨어질 거라는 말보다, 그놈이 마지막 사랑이 아니었음이 더 중요했을까? 아니면 너무 추웠던 날씨 탓에 온몸이 꽁꽁 얼었다가 풀리며 '집 나간 정신이 제자리를 찾아온 걸까?'


그날의 마법 같던 기억은 시험에 합격한 후, 제대한 그놈이 집 앞으로 찾아와 다시 사귀자는 말을 했을 때 깨닫게 되었다. 나는 '순수했던 진짜 사랑'이라 그렇게 힘들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풋내기 첫사랑에 처음 겪는 이별을 감당할 방법을 몰라 어찌할 줄 몰라했던 거였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점쟁이의 말을 믿는 방법으로 이별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공부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떳떳하게' 휴가 때 여자들과 술자리를 가지는 게 힘든 군인 시절을 이겨내는 나름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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