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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Aug 05. 2021

공시생이 되었다

쳇바퀴 도는 하루하루의 시작


약속한 어린이날이 지났다.

그 전날까지 미친 듯이 놀지도 않았다.

그저 다니던 대학에 휴학계를 제출하고, 친구 몇 명과 군대에 있는 남자 친구에게 공시생이 되었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짧으면 1년. 길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고 매일같이 공부만 해야 하는 그야말로 '수험생활'이 시작되는 건데 걱정이 된다거나 하기 싫다거나... 나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엄마가 언니에게 공무원 시험 준비를 권했을 때, 여행을 좋아하는 언니는 "나는 몇 년 동안 독서실에 박혀서는 못살아"라고 했다고)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 '검찰공무원 준비생' 카페에 가입하고, 합격수기와 공부방법들을 읽으며 나름대로 계획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띠띠띠띠 띠리링-

어느덧 아빠가 퇴근할 시간이 되었는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아빠의 화내는 소리-

내일 학원에 싸갈 내 점심 도시락 준비를 하던 엄마를 보신 듯했다.


[아빠] "내가 그거 시키지 말랬잖아! XX(사촌오빠) 5년째 공부하는 거 안 보여? 몇 년이 될지 알고 그걸 뒷바라지해주겠단 거야?!"
[엄마] "당신 신경 안 쓰이게 1년만 내가 도와줘 볼게요.. 이미 학원까지 등록하고 교재도 다 샀는데.. 한 번 시켜라도 보게요"


또 불편한 저녁시간이 되겠구나. 심장이 쿵쾅거리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다녀오셨어요' 인사 후 무슨 정신으로 밥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삐비 빅- 삐비 빅-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30분이었다.

올빼미형인 나에겐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게 고문과 같았지만 '나에게는 기회가 한 번 뿐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엄마는 대체 언제 일어나신 거지?


나보다 일찍 일어난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엄마가 손수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왠지 모르게 살금살금 집 밖으로 나왔다. 이미 여러 번 한바탕 해서 알고 있지만, 첫날 아침부터 아빠에게 짜증 섞인 잔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고요하고 세상이 푸르스름한 색의 새벽이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게 왠지 기분이 좋았다.

첫 차 타러 정류장으로 가는 길, 왠지 스스로가 기특하고 '나 좀 짱인데?' 뿌듯한 기분에 살짝 들뜨기도 했다. 버스가 도착하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올라섰다.


"안녕하세요~! 어?....." 


잠깐 멈칫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 혼자 일 줄 알았는데 새벽에도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다들 뭐하러 가는 사람들일까? 저 언니도 공시생일까?' 혼자 별의별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보는 새벽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빠르게 학원에 도착했다.



오전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하는 학원 독서실.

한 바퀴 쭉- 둘러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빈자리를 골라 앉았다.



'이제부터 여기가 내 자리야.
새벽에 1등으로 와서 가장 마지막에 나가야지!'



꽤 의욕 넘치게 열의를 다지고 새 책을 처음 펼쳐보았다.


3개월 동안 국어, 영어, 한국사, 형법, 형사소송법 총 5가지 과목을 1 회독할 수 있는 정규과정으로, 아침 8시 30분부터 시작해서 늦은 오후까지 수업이 진행되었다.


점심은 빈 강의실에서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혼자 먹고, 저녁은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사 와 학원 독서실에서 때우며 마감시간까지 공부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 밤 10시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쳇바퀴도는 듯한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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