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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버 Aug 05. 2021

우리 나이엔 뭘 해야 할까?

나는 내 길을 잘 가고 있어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이해를 했든 안 했든 어쨌든 전과목 1 회독을 했다.


3달 정도 공부를 해보니 종합반의 단점들이 보였고, 나는 자율과 타율을 결합한 학습체제(?)에 돌입했다.

학원에서는 법 2과목만 단과로 수강하고 나머지는 인터넷 강의를 듣기로 정하고 집 앞 독서실을 끊었다. 직접 서울 노량진에 가서 소위 말하는 1타 강사들의 강의를 듣진 못하더라도, 인터넷 강의로 접한 그들의 강의는 '역시는 역시'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다니던 학원 강사들과 차원이 다른 설명과 암기법



물론 1 회독을 한 상태라 대략적인 틀이 머릿속에 있고, 고등학생 때 나름 공부했던 과목들이라 기대치가 높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한 번에 합격해야 했기에 최고의 강사진 어벤저스(?)가 필요했다.





바뀐 스케줄에 따라 다시 계획을 세웠다.


공부 장소가 집에서 5분 거리 독서실이 되니, 학원을 오고 가는 시간이 단축돼서 꽤 많은 공부시간이 더 확보됐고, 올빼미형인 나에겐 새벽 늦게까지 공부할 수 있는 집 앞 독서실이 딱이었다.



최근 시험 준비하는 친구 말에 따르면, 요즘에는 '학원형 독서실'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재수학원처럼 등/하원 시간이 있고, 핸드폰을 반납하는 등 자기 통제가 힘든 성인들의 공부에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해 주는 곳- 아마 내가 공부할 때도 이런 곳이 있었다면 남들 하는 건 다 기웃거려보는 나는 또 찾아가 봤을 듯싶다^^..






어느새 더운 여름이 되었다.

그날은 오전에 법 과목 단과 수업이 있어 학원에 가는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반팔티에 검정 츄리닝을 입고 모자를 눌러쓴 차림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그때 "클로버!"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버스 앞자리에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친구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맞다!
이 버스 대학교 다닐 때도 타고 다니던 버스였지'



[나] "안녕 XX야~ 잘 지내?"
[친구] "응! 너는?... ㅇ_ㅇ?? 너 무슨.. 시험공부해???
[나] "응~나 공무원 시험 준비해^^"
[친구] "아~ 흐음.... 근데 우리 나이에 벌써 공시 준비는 아니지 않아? 나는 우리 나이에는 여러 가지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벌써 이런 옷 입고 다니면서 얼마나 해야 할지 모르는 공부를 하는 건... 좀.. 젊음이 아까운 것 같아"
[나] "그렇기도 하지 ㅎㅎ"


 


해맑은 친구였으니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을 테고, 친구 입장에서는 햇살 좋은 날 21살 여대생이 검정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책을 잔뜩 넣은 에코백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행인 건 그때의 나는 온 신경이 공부에 쏠려있어서인지, 그 친구 말에 화가 난다거나 창피하거나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지금 우리 나이엔..' 이라는 말에 그럼 '우리 나이엔 뭘 해야 할까?' 라는 생각과 검정츄리닝의 나와 대조되게 샤랄라 한 친구의 예쁜 옷이 가끔씩 떠올랐다.





사람에게 집중할 무언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정신을 건강하게 해 주는지 다시 한번 느낀다. 아마 지금의 나라면 후줄근한 상태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면 "너나 잘해!" 라고 쏘아붙이고 하루 종일 씩씩거리다가 혼자 손절했을 것이다 -_-..



그런데 그때의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창피하다거나 친구 말에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늘 할 거 많은데~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생각뿐이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공시생일 때의 저 대화가 떠오르는 건 그 당시의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마음에 박히긴 했나 보다. 뭐든지 과한(?) 나는 1년 다녔던 대학교지만 꾸미는 것도 연애도 과하게 열심이었던지라 친구는 놀란 표정을 너무 숨기지 못했다.






수능 실패로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시기에 시작한 수험생활. 


그때 내 마음을 지탱해 주던 건 책상 한가득 붙여놓은 명언들이었다. 남자 친구는 군대에 갔고 핸드폰을 정지시켰으니 엄마랑 학원 선생님 외에는 대화 상대도 없었다.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다 외로울 때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건, 근처 책방에서 1권에 700원을 내고 빌려보던 책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엄청난 독서왕 같지만, 내 인생에서 초등학생 때를 제외하고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시기가 아이러니하게도 공시생 시절이었다)


그때 읽은 책들은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 등 대단히 성공한 여자들의 자기 계발 서적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나와 연관성은 1도 없지만(^^) 멋지게 도전하고, 부딪치고 이겨내는 열정적인 모습에 같이 흥분하며, 느슨해진 마음에 다시금 열정을 불 피울 수 있었다.





그날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사를 곱씹으며 '나는 내길을 잘 가고 있어!' 라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죽은 시인의 사회>




공무원 시험이야말로 누구나 몰려가는 줄일 수도 있지만 또래 친구들 중엔 공시생이 나뿐이었고, 그마저도 검찰직을 준비했으니 그때의 나는 '나는 독특해. 나는 내 길을 잘 가고있어'라며 세뇌 수준의 자기 위로를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었다.



그렇게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더운 여름'을 '시원한 독서실'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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