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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창호 Sep 13. 2021

우리 인간 관계와 유사한 뉴런과 성상세포의 질긴 인연

그들의 얽힌 삶을 보면서 느끼는 것들

우리의 뇌에는 천 억개가 넘는 신경세포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 중 대표적인 것이 뉴런이라 불리는 세포입니다. 그들은 각각 수 나노미터 크기의 갭을 가지는 연결 부위(시냅스)를 만들어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데, 보통 1억개의 뉴런 당 수천억개의 이러한 세포 간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뉴런들은 시냅스를 통해 서로 신호를 전달하여 분화 및 성장하고, 항상성도 유지하고 외부 자극에 반응하며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뇌 속에는 뉴런들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뉴런들의 성장과 기능을 도와주는 여러 가지의 glial cell (신경아교세포) 들이 존재합니다. 이름에서와 같이 풀칠 (아교) 하듯 뉴런에 붙어있는 세포라는 의미를 가진 세포들입니다. 이런 신경아교세포 중에서도 우리 뇌속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astrocyte (성상 세포) 이라 불리는 별 모양의 세포입니다. 대략 뉴런과 1:1 의 비율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상 세포들은 뉴런의 발달과 네트워크 형성, 면역 반응 조절 등 사실 상 뉴런의 생존 및 기능에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수행하는 최고의 친구입니다. 배아 발달 단계에서 초기 뉴런의 생성이 이루어진 후에야 성상 세포가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뉴런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시점과 성상 세포가 증식하는 시점이 정확히 일치하며,  그들 없이 배양된 뉴런은 생존이 위협받고, 신호 전달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많은 연구들을 통해 오래전에 증명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뉴런에 착 달라붙어있는 존재가 아니라, 뉴런을 신경 전달 세포로서 존재하게 해주는 소울 메이트들입니다. 


그런데 최근 성상 세포들이 언제나 뉴런의 편에 서 있는 친구들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뉴런이 생존하고 일하는데 필수적인 파트너였던 세포들이 질병 환경에서는 뉴런을 파괴하는 두 얼굴의 존재라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제가 연구하는 ALS (루 게릭 병. 과거 스티븐 호킹 박사가 앓던 질병으로 유명) 라는 질병이 발달하는 과정에서는 질병 유발 인자 (유전자 돌연변이, 환경 호르몬, 사고 후 겪는 트라우마, 과도한 흡연 등)의 영향이 쌓여가다가 어느 순간 (뉴런 보다는) 성상 세포를 미친 활성 상태로 만들어 뉴런을 공격하고, 그 여파로 뉴런의 신경 신호 전달 기능이 고장나며 말기에는 뉴런들이 결국 사멸한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말단 신경 세포들이 죽어가면서 이들로부터 신호를 받아 움직여야하는 근육 섬유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근위축증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흥미롭게도 면역계에서 분비되는 몇몇 염증 유발 인자들은 뉴런만 배양한 상태에서는 그들에게 아무런 악영향을 주지 않았고 성상 세포가 함께 있어야만 이들을 통해 뉴런의 기능을 망가뜨렸습니다. 또한 미쳐버린 성상 세포는 평소 정상적인 상태였을 때 보다 증식도 활발히 하고 뉴런과 더 많은 소통을 하며 주변 뉴런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것도 최근에 알려졌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일어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진 않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의 행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수 많은 신경 질환을 정복할 계기가 생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사회적인 동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유난히 소중한 관계들을 만들게 됩니다. 때로는 그들이 없으면 나라는 존재의 의미가 퇴색될만큼 소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를 태어나게 해주신 분, 나를 성공으로 이끌어 주신 분, 내가 힘들고 지쳐있을 때 마다 나타나 주는 사람, 가끔 용건없이도 전화해서 내 안부를 걱정해 주는 사람 등. 우리가 삶을 시작하고, 충만한 삶을 유지해나가며 사회인으로써 역할을 수행하는데 큰 역할을 해주셨고 앞으로도 내 옆에 있어주실 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그렇게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합니다. 너무나 믿었던 친구의 배신, 날 설레게 했던 연인과의 갈등,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인 부부 사이에서 생기는 마찰, 어느 날 부모님께 한 모진 말, 또는 가족으로부터 받은 어릴 적 상처 등. 그것들은 덜 가까운 관계에서 오는 생채기보다 훨씬 더 큰 상처를 주고 아물지 않는 흉터도 남깁니다. 특히 외부 환경이 어려울때 내가 살고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아지면서 그런 일들이 더욱 빈번히 일어나곤 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들 간에 일어나는 관계의 양면성이 인간 관계에서도 그대로 일어나는 걸 보면, 세포들은 단순히 우리 몸이라는 건축물을 구성하는 생물학적인 벽돌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삶 까지도 축소해서 보여주는 소셜 미니미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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