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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Jan 19. 2024

나도 삐뚤어질테다

 “아, 사실대로 말하라고!”

 “사실대로 말했잖아, 그런데 네가 안 믿는 거잖아.”

또 시작이다. 말해 달라고 해서 말했더니, 믿지도 않을 거면서 왜 말하라는 거야 대체. 알 수가 없네.     




아이들 방학이라 좋은 점 딱 한 가지는 학기 중엔 아이들의 일상을 챙기느라 늘 분주한데, 방학을 하니 저녁에는 약간의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조금 더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날도 나에게 주어진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맑음이가 다가오더니 또 손이 간지럽다고 말한다. 며칠 전부터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때문인 건지, 수영만 다녀오면 손에 두드러기처럼 올라오는 큰 아들의 손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데 형아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눈치챈 막둥이가 나의 품을 파고 들어온다. 


“야, 너 엄마 무릎에서 내려와. 초2 되는 녀석이 언제까지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할 건데.”


형아의 말 한마디에 막둥이는 더욱 내 품을 파고든다. 막둥이의 그런 행동이 일상이라 신경 쓰지 않고 큰 아들의 손만 살피고 있는데 이제는 둘째 기쁨이까지 거든다.


“야, 내려오라고. 너 때문에 엄마 다리 아프잖아!”     


얘들이 진짜 나를 걱정해서 그러는 건지, 동생이 하는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 그러는 건지 진실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점점 막둥이에 대한 말이 거칠어지고 인신공격적인 말들도 오간다. 

역시 중재해야 하는 건 나. 아, 피곤이 또다시 밀려온다.

“너희 모두 그만해, 맑음이는 알레르기 약 하나 먹고.”

“엄마, 형아 손 왜 그런 거야?”

“글쎄, 엄마는... 왜 그런지 알 것 같은데?”

“아, 말하지 마. 뭐라고 얘기할지 알 거 같으니까 말하지 말라고.”

“엄마 그럼 나한테만 말해줘.”

속닥속닥, 막둥이 귀에 대고 속삭인다. 형아 누나의 공격에도 엄마의 사랑은 내 것이라는 듯한,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본 맑음이가 갑자기 발끈하더니

“나 마음이 바뀌었어, 그냥 나한테도 말해줘, 내 손이 왜 이런 건데? 행복이한테 뭐라고 말한 거야?”

“엄마가 의사도 아니고 알긴 뭘 알겠니, 그냥 얼른 가서 양치하고 오라고 말한 거야.”

“거짓말하지 마, 엄마 거짓말 하는 거 다 알아.”

“거짓말 아니야~말해달라고 해서 말했더니, 믿지도 않을 거면서 왜 말해달라고 하냐.”

얼른 사실을 말하라고 막무가내로 물고 늘어지는 맑음이다. 아니라고, 아까 말한 그대로 행복이한테 말한 거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너! 네가 아무리 사실을 말하는데도 상대방이 아니라고 우기면, 너 그때 기분이 어때?”

“뭐... 기분 나쁘겠지.”

“엄마도 지금 그래. 말해달라고 해서 말해줬더니 왜 믿지도 않을 거면서 자꾸 엄마를 의심해? 엄마가 네 말을 듣고 의심만 하면 넌 기분 좋아? 엄마도 지금 굉장히 기분이 나빠.”


사춘기 아이들은 무논리가 논리라더니, 말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놓으며 자꾸 사실을 제대로 말하라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무의미한 대화,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 더 이상 말하면 또다시 아들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서로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아 살며시 자리를 피해 본다.     

 


방에 들어가 고민하는 척 앉아 있는데 맑음이가 들어온다.     

“엄마, 죄송해요. 엄마 말이 맞다는 거 다 알겠는데, 그냥 삐뚤어지고 싶었어요.”

“네가 쓸데없는 고집을 계속 부렸다는 거 인정한다는 거야?”

“네, 그냥 엄마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요.”

“그랬구나,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 모습을 본 행복이가 또다시 쪼르르 달려와 나에게 안긴다. 맑음이가 보지 못하게 행복이에게 다시 속닥거린다.

“행복아, 아까 엄마가 너한테 한 말은 비밀이야. 알았지?”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듯한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행복이.     

맑음아, 미안. 사실은 네가 맞았어. 행복이에게 다른 말을 했거든. 요 며칠 네가 자꾸 엄마 속을 박박 긁어대서 엄마만의 사소한 복수 한번 해봤어. 끝까지 아니라고 우겨서 엄마도 미안해. 행복이가 이 비밀을 잘 지켜줘야 할 텐데, 행복이 입이 좀 가벼워 걱정이 되긴 한다.

엄마도 이렇게나마 좀 시끄러운 속을 달래야 다시 너와의 전투를 치를 수 있지 않겠니?

거짓말이 제일 나쁜 거라고, 너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는데, 엄마가 거짓말을 했네. 정말 미안.  

   



아이들이 모두 잠든 고요한 밤. 이렇게 또 유치하고 성숙하지 못 한 엄마의 모습을 보인 나 자신을 보며 오늘도 사춘기 아들에게 졌음을 인정한다. 아, 언제 성숙한 엄마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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