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하나뿐인 편의점. 우리 동네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모두가 사랑하는 장소다. 아이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한 끼 식사를 때우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심심하고 갈 곳 없으면 마냥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그곳에서 파는 치킨 꼬치는 모든 아이들이 애정하고 즐겨 사 먹는 간식이다. 그 흔한 마라탕 가게도 분식집도, 베이커리도 없는 이곳에서 아이들이 하굣길에 사 먹을 수 있는 가장 인기 있는 간식이다. 조금만 늦어도 사 먹을 수 없는 간식, 치킨꼬치. 우리집 아이들도 참 좋아하는 간식인데 아이들에게 사주더라도 나는 편의점에 잘 들어가지 않는 편이다. 마치 편의점에 들렀다 왔다는 확인 도장이 찍힌 듯 머리에 금방 기름 냄새가 배어버리기 때문이다. 급하게 물건을 사야 할 때에도 얼른 물건만 집어서 나오는데도 튀김 냄새는 어느새 찰싹 붙어 같이 나온다. 멋진 옷을 입고 내가 좋아하는 향수도 찹찹 뿌리고 나왔건만, 편의점에 들어갔다 나오면 나의 향수냄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내 비싼 향수가 이런 기름 냄새 따위에 지고 말다니. 모자를 쓰고 들어가도, 옷을 뒤집어쓰고 얼--른 들어갔다 나와도 그 튀김냄새는 좀처럼 쫓아낼 수가 없다.
나는 백화점 1층을 참 좋아한다. 백화점 1층에서 진하게 풍겨 나오는 각종 화장품이 섞인 그 냄새가 나는 참 좋다. 누군가는 인위적이라 싫다고 하기도 하고 너무 진해서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백화점 1층에서 나는 그 냄새가 참 좋다. 지난겨울, 일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더현대’에 다녀왔다. 영암 촌년, 들어가기 전부터 두근두근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백화점으로 향하는데, 서울백화점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더현대’라 그런 건지 백화점 출입구 100미터 전부터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 향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스르륵 홀린 듯 들어간 백화점 1층. 좀 전까지 차에서 아이들과 난리 부르스 한 판 거하게 치르고 들어왔는데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게 다 잊힌다. 마음에 위안이 된다. 내가 마치 고상하고 멋진 여성이 된 듯한 기분까지 든다.
참 이상하다. 편의점의 기름 냄새는 아주 잠깐 발만 들여도 냄새가 붙어 나와 잘 떨어지지도 않는데 왜 백화점 1층 냄새는 안 따라오는 걸까. 난 언제든지 환영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말이다. 제발 따라오지 말라는 냄새는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잘 떨어지지도 않는데 쌍수 들고 환영해 줄 수 있는 백화점 1층 냄새는 날 본 척도 안 한다. 백화점 한 번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그 향기로운 냄새로 내 몸이 도배가 되면 참 좋으련만. 참 아쉽다.
곰곰 생각해 본다. 이게 과연 냄새뿐일까.
건강을 생각해 자기 전엔 간식을 먹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 이미 내 손엔 과자 봉다리가 들려있고, 오늘은 좀 일찍 자야지 하는 순간 내 손에는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어야지 하는 순간 미간엔 깊은 주름 세 개가 깊이 박혀있고 아이들 등교시키고 나면 부지런히 움직여 하루를 시작해야지 하는 순간 내 몸뚱이는 어느새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다.
좀 떨어져 나갔으면 하는 나쁜 습관들은 내 몸에서 방 뺄 생각이 없는 듯,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더 빠져들어가는 갯벌에 빠진 다리처럼 나쁜 습관들은 그렇게 나와 한 몸이 되려고 한다.
필라테스를 정말 재미있게 배우고 있다. 근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엉덩이 근육은 붙을 생각을 안 한다. 하체 운동을 하고 나올 때마다 거울에 비치는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보면 ‘숭그리당당 숭당당’을 외치던 개그맨 김정렬 아저씨가 생각난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2년 정도면 나도 근사하고 멋진 작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으나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글쓰기 근력을 키우는 건 엉덩이 근력을 키우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함을 알았다. 아이들 공부할 때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숨 쉴 때마다 한다. 그 순간들이 부끄러워지는 모습을 매일매일 경험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막내 영어책 읽는 모습을 지켜보다 또 한 번 버럭 해서 눈물 쏙 빠지게 했으니까.
내 몸에 붙었으면 하는 좋은 습관들, 모습들은 그렇게 붙으라고 붙으라고, 제발 병아리 눈곱만큼이라도 좀 붙어달라고 사정사정을 해도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백화점 1층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향기를 내는 사람, 그 향기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들어만 가도 기분 좋아지는 백화점같이, 함께 있기만 해도 편안함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나은 나를 위해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을지라도 즐겁게 운동해 내 몸을 지키고 싶고, 느릴지라도 내 이야기를 펼쳐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들에게 매일 두 눈을 부라리는 엄마일지언정 마지막엔 따뜻하게 안아주는 엄마, 부족한 걸 부족하다고 아이들에게 고백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하,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방금은 또 딸내미와 거하게 한 판 했다. 큰아들과는 아직 평화로우니 다행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