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필자는 현재 고3 수험생이다.
다른 수험생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나의 꿈을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웠고, 시험 하나에 웃고 우는 날들을 보내며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수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대학교를 가고자 하는 사람은, 또는 가고자 했던 사람은 모두 아는 교육체계인 수시와 정시.
나는 이 중 나의 수시 생활과 관련된 기상천외하고도 꿈만 같은 얘기를 하나 풀고자 하여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누군가는 내가 겼었던 일을 정말 바보 같은 일처럼 볼 수도 있겠지만, 누가 어떻게 보든 인생에서의 전무후무한 경험을 나 혼자 가지고 있기는 너무나도 아까워 나의 진솔한 감정을 이곳에 담고자 한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나와 같이 수시에 노력을 쏟아붓거나, 수능을 위해 달려가는 모든 수험생들에게 부족한 글이지만 작은 소망을 담아 이 글을 바친다. 우리는 모두 한 꿈을 위해 달려왔으며, 그런 꿈을 지닌 우리는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다. 희망대학에서 합격 문자가 오는 그날까지 달려 나가는 과정을 겪는 나 자신과, 겪었던 모두와, 겪을 모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때는 9월 10일, 대학에 수시 원서 접수를 하는 첫째 날이었다.
그날 아침으로 먹었던 잼이 얹어진 토스트는 어느 때보다 달콤했고, 학교로 향하는 길의 햇살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그날따라 자전거의 페달이 조금 무겁긴 했지만, 어쨌거나 더 이상 그런 건 나에게 상관이 없었다.
아침의 향긋한 기분에 한껏 젖어 학교로 가는 길은 이미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는 이 순간만을 위해 1학년 때부터 나의 진로를 탐색했고, 친구들과 어떤 대학을 갈지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는 했다.
이제 학교에 도착하여, 내가 지새운 3년간의 밤들을 '대학 원서 접수' 버튼 하나를 누름으로써 증명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제 주사위는 굴려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날 교실은 북적북적했다. 우리는 모두 수시 접수를 처음 해보는 것이었기에, 담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대표로 몇몇 아이들만 교실에서 수시 원서 접수를 진행하기로 했다.
첫 번째 차례가 나였다. 원서 접수 창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전의 날들에는 겪을 수 없었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게 정해져. 나는 이 순간만을 위해서 여태껏 달려온 거야."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이 감정에 행복함과 기대감이 담겨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모든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원서비만 결제를 하면 수시 접수가 끝난다. 그리고 후에 나는 수능 최저점수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될 것이었고, 아무런 걱정 없이 계획대로 나의 대입 일정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제 버튼을 눌렀을 때 내 앞에 선명하게, 아니 점점 희미해지는 붉은색 문구를 나는 보았다.
"자기소개서를 입력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후 결제를 완료해 주십시오."
나는 눈앞이 흐려졌다. 자기소개서라니!
수시 지원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단순히 내 순수 학교 성적만을 가지고 대학에 지원할 수도 있고, 학교 성적과 더불어 생활기록부를 포함한 여러 서류들을 동시에 제출하여 (그 서류들을 여기서 나열하지는 않겠다)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전형들 중에서 나는 내가 가려고 하는 대학의 전형에는 자기소개서가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던 것이고, 수시 접수 마감을 나흘 앞에 두고 이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나는 나에 대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비록 진로를 급하게 바꾸어 가려는 대학이 자주 바뀌기는 했지만, 어떻게 선생님과 같이 입시 상담을 하면서도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인가!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두 손은 이미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으며, 나의 두 눈은 갈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도무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한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기소개서는 보통 2학년 겨울방학, 즉 수시 접수일 1년 전부터 차근차근 쓰는 것이 맞다고. 그리고 지금 교실에 앉아있는 나는 그것을 나흘 만에 작성을 해야만 한다.
아니, 내용은 이틀 만에 작성해야 한다. 그래야 나머지 기간 동안 조그마한 오류들을 수정할 수 있으니까.
교실은 조용했다. 물론 정말 조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소란스러웠겠지.
다만 적어도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이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지?
그리고 적막 속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J군 (필자의 성명을 밝히고 싶지 않아 이니셜로 대신 표현한다), 멘탈 잡아."
그 순간 모든 것이 돌아왔다.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친구들의 표정과 담임 선생님의 말을 하지 않아도 미안하다는 눈빛, 그리고 교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던 시원한 가을바람까지.
이제 더 이상 선택권이 없었다.
"선생님, 오늘은 조퇴해보겠습니다.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거든요."
선생님은 수긍했다. 막 가방을 싸려고 하는 참에 아까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친구가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너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무덤덤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긴, 써야지."
계단은 내려와 나는 나의 자전거를 챙겨 굳게 닫힌 오전의 학교 철문을 열었다.
나 빼고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병원 밖에서 오전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던 환자들과 세상 걱정 없어 보이던 천진난만한 아이들, 그리고 갈 길을 보채는 그 아이의 엄마들, 횡단보도의 반 쪽 등이 나오지 않던 초록불, 커피를 사러 카페에 들린 회사원들, 그리고 학교에 설렘 가득 안고 가는 나를 비추던 따스한 햇살까지. 그러나 그 사람들 속에서 나는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무덤덤하게 자기소개서를 쓴다고는 말했지만, 여전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도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지쳐서 생각할 수도 없는 나의 뇌리에 누군가가 했던 말이 무의식적으로 스쳐갔다.
내가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종이에 무언가를 써보지 않아서라고. 문제를 풀려면 감이 안 잡혀도 일단 써보라는 그 말, 나는 바로 아는 수학공식을 끄집어내듯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감은 잘 오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 무엇인가를 쓰지 않으면 이틀 동안 아무 내용도 만들지 못할 것 같았다.
타자를 친지 얼마나 지났을까,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J군, 선생님이야. 마음은 좀 진정됐니?"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막 작성 중이었습니다."
"좋아. 혹시 괜찮다면 내일모레, 그러니까 일요일에 학교에 나올 수 있을까? 학교에서 직접 첨삭을 해주고 싶어서 그런데."
"저야 좋습니다. 분명 한 명보다는 둘이 머리를 맞대는 게 낫죠."
"그러면 일단 1번 문항이 완성되는 대로 나에게 보내주렴. 일요일에 학교에서 직접 보기 전까지 내가 계속 첨삭하고 피드백해주고 싶구나. 괜찮겠니?"
"저는 감사하죠, 저의 필력을 믿어보십시오 선생님."
그 말과 선생님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안타깝고도 씁쓸한 웃음을 마지막으로 나는 조금은 마음을 놓고 타자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이렇게 말해놓고서도 마음이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 자신부터가 나의 필력을 믿지 못하는데 남에게 나의 능력을 믿어보라 했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여기서 웃거나 당당하게 말하지 않으면 나에게 오는 어떠한 영감도 살려내지를 못할 것 같았고, 노력하시던 선생님의 미안함을 가증시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사실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나는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렇게 나는 태양이 내게 산 너머에서 인사를 하는 것도 모르고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적막한 방 안에는 기계식 키보드의 타자 소리만 가득 퍼졌고, 컴퓨터의 웅웅 거리는 소리만 내게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밖에 짙은 땅거미가 내려앉았을 때, 나는 희미하게 내 컴퓨터에 3번 문항 중 1번 문항이 완성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황홀함! 이것이 황홀함이 아닐까. 내용 면에서는 다소 부족할 수 있어도 나는 첫 번째 문항을 하루 만에 완성시켰다. 나는 가능성을 보았다.
나는 여태까지 사막을 걸어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메마른 사막을…. 나는 갈증과 더위의 땅 안의 작은 오아시스를 찾고 싶었다.
오아시스를 둘러싼 작은 마을에서 배를 채우고, 흙으로 만든 지붕에 앉아 하늘을 수놓은 수억 개의 별들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디까지 펼쳐져있는지 모르는 사막을 걸어간 나에게 보인 것은 오아시스가 아니라 오아시스로 행하는 이정표였다. 아직 물을 한 방울도 보진 못했지만, 이미 오아시스가 어딨는지 안 것만으로도 나는 깊은 황홀감에 차있었다. 나는 그저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내가 1번 문항을 써왔던 대로 나머지 문항도 작성을 하면 될 것이었다. 그러면 비로소 그땐 마른 목을 채우고 떨어지는 별들을 볼 수 있겠지.
나는 1번 문항을 완성시키고는 내가 찾고 싶던 오아시스를 찾아 그다음 날도 2번 문항을 완성시켰다.
이제 내일까지 3번 문항을 완성시키면, 모든 내용 작성은 끝이 나고, 학교에서 선생님의 조언과 함께 수정만 하면 될 것이었다.
그렇게 아침 해가 뜨는 것을 컴퓨터 앞에서 지켜보며 이틀이 지나갔고, 드디어 기다리던 일요일이 되었다.
나는 그저께 학교에 타고 가던 검은색 자전거의 페달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일요일에 가는 학교는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4시에 학교를 향하는 그 기분은 더더욱 이상했다.
이상했다기보다는 기묘했달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이 꿈인지 의심하기도 했다.
차라리 꿈이면 나을까? 나는 알람 소리에 맞춰서 침대에서 눈을 뜨는 거다. 잼이 올려진 토스트를 하나 먹고서 금요일 아침에 학교에 같이 가던 친구랑 같이 신나게 페달을 밟는 거지. 그리고 설렌 마음으로 학교에 가서 미리 써놓았던 자기소개서를 쓰고 대학 원서를 제출할 것이다. 그리고 평소처럼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며 석식을 먹으러 나갈 거야. 아,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만족감을 느낄까? 어제는 떡볶이를 먹었으니 오늘은 다른 걸 먹는 게 낫겠지. 그리고 친구들과 먹는 것에 대해 의견이 맞지 않아 예정된 야간 자율학습 시작 시간보다 조금 늦게 들어가서 헐레벌떡 공부를 시작하겠지.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나는 굳게 닫힌 일요일의 학교 철문을 다시 한번 열었다.
느낌이 전과는 달랐다. 오후의 선선한 바람을 맞아서 철로 된 철문이 조금은 차갑게 느껴졌다.
교무실에는 혼자 남아있던 선생님이 나를 반겨주었다.
"왔구나 J군, 한번 내용을 본 다음에 수정을 시작해볼까?"
"네, 그렇게 하죠 선생님. 내용은 어떻게 보셨을까요?"
"전반적인 틀은 아주 좋아. 다만 이런 것들은……."
그리고 선생님은 나의 자기소개서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여럿 지적하셨다.
분명 내가 볼 때는 문제가 없던 부분이었는데, 조언을 듣고 나니 이상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약 한 시간 하고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첨삭을 받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려는데, 선생님이 먼저 적막을 깼다.
"주말 동안 생각보다 빨리 내용을 작성했더라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나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나의 부끄러움과 선생님한테서 느껴지는 미안함의 감정을 없애버릴 수는 없었다.
"아닙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자가 진보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또한 나중에 돌이켜보면 추억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힘들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은 다시 호탕하게 웃으면서 나머지 날들도 힘내 보자고 말을 했다.
아,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내가 가고자 하는 대학의 전형을 몰랐으니 당연히 이것은 나의 잘못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자전거를 챙겨 학교를 나올 때 허망한 기분보다 뭐라 표현하지 못할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도 않았고, 나는 마치 오아시스를 이미 발견한 것 마냥 기쁨에 가득 차있었다.
학교의 철문을 다시 닫고 자전거에 올라타기 전 나는 이어폰을 귀에 조심스레 꼽고 재생목록을 보았다.
재생목록을 보다가 이글스의 'Take It To The Limit' 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재생 버튼을 누른 뒤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향하는 길은 기쁨에 나를 가득 차게 했으며, 곧 오아시스를 만나 별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나를 가득 차게 했다.
조심스레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향하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깐 올려다본 수평선 너머의 저녁노을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내 위에는 구름 한 점 없이 산등성이에만 옅은 구름이 깔려있었고, 집으로 향하던 길에 서있던 양갈래로 뻗은 나무들은 아침의 기이한 모습과는 다르게 저녁의 노란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어느덧 이글스의 노래는 코러스에 다다랐다.
"You know I've always been a dreamer
(spent my life running 'round)
And it's so hard to change
(Can't seem to settle down)
내가 항상 몽상가였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잖아요
(내 삶을 방황하는데 써버렸죠)
그리고 변화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어요
(정착할 수 없을 것만 같아요)
But the dreams I've seen lately
Keep on turning out and burning out
And turning out the same...
하지만 최근에 내가 보았던 꿈들은
실현되고 있고 강렬해지고
똑같이 나타나고 있어요...
So put me on a highway
And show me a sign
And 'Take it to the limit' one more time.
그러니 날 한길에 놔두고
그리고 나에게 사인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다시 한번 '극한까지' 끌어올려 보세요.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 집을 향해 힘껏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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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서... (수험일기 - 당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요? (2))
※ 상기 글은 필자가 보고 느낀 것을 진솔하게 써 내려간 글이며, 특정 인물에 대한 비방 혹은 비난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