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의도했던 가장 가까운 건 너
계단 오르기가 일상 운동이라 어느새 가족과 함께 한다. 아이들과 계단을 함께 오르다 보면 어느 날은 씩씩하게 계단을 오르고 어느 날은 투정을 부리며 한 발 오르기도 힘들때가 있다. 그날의 감정이 발끝에 묻어나는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도 똑같지 싶다. 기분이 좋을 때는 가뿐히 계단을 오르지만 마음이 무겁거나 지칠 때는 한 계단 한 계단이 힘겹다.
유난히 투정이 많은 날.
“엄마, 너무 힘들어. 나 안 올라갈래.”
“그럼 어쩌지? 여기서 그냥 살까?”
“나 20층까지만 할래.”
(좀만 더 오르면 끝이기 때문에 끝까지 했을 때의 성취감을 느껴봐야 한다.)
“그럼 남은 9층은 엄마가 업어줄까 봐. 엄마는 20층에서 내려가지 않을 건데 혼자 내려갈 수 있겠어?”
“엄마가 나를 업고 어떻게 가.”
“그렇지? 엄마도 자신 없는데, 다른 방법이 생각이 안 나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알았어. 가볼게.”
아이는 마지못해 계단을 오른다.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낮게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린다.
“힘들어… 아, 진짜 힘들어…”
아이에게 힘을 줘야 한다.
아주 사소한 계단 오르기지만 아이 마음에 작은 꽃이 핀다면 그 향기 하나로 평생을 살아갈 아이다.
“네 입과 가장 가까운 귀는 누구 귀일까?”
아이는 투덜대던 걸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음… 내 귀?”
“맞아. 네 입에서 나온 말은 제일 먼저 네 귀가 듣고 네 마음이 먼저 알아차리는 법이야.”
“그래서?”
“네가 힘들다고 말하면 네 귀가 그 말을 듣고 더 힘들다고 느낄걸? 반대로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면 네 마음이 그 말을 믿어줄 수도 있고.”
아이는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럼… 나한테 좋은 말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
“그럴 수도 있어. 직접 해볼래?”
아이는 계단을 하나 오르고 말한다.
“할 수 있어!”
“다 왔다!”
또 한 계단, “엄마 28층이야!”
그리고는 내 얼굴을 빤히 본다. 어떤 말을 하진 않지만 20층에 머물던 아이 얼굴이 아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뀔까?
아이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난 할 수 있어!“ 를 외치더니 점차 더 진지해졌다.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천천히 해도 돼.” “오늘은 조금 힘들었지만 내일은 나을 거야.”
물론, 언제나 긍정적인 말만 하는 건 아니다. 화가 날 때는 여전히 툴툴대고 속상할 때는 “엄마, 짜증 나!“라고 외치기도 한다. 소리 지르기 대회가 있다면 장원이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문득, 자신이 내뱉은 말을 곱씹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사람들은 말이 가진 힘을 종종 잊고 산다. “나 진짜 못하겠어.” “왜 이렇게 안 되지?” “오늘 너무 힘들어.” 이런 말들은 생각보다 더 깊이 스며든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거울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아이와 나눈 이 작은 대화가 한 톨의 씨앗이 되어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라기를 바란다. 언젠가 아이가 커서도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소중히 여기길. 어려운 순간마다 자신을 다독일 수 있길.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작은 씨앗을 뿌리는 것뿐. 싹이 날지, 꽃이 필지는 아이의 몫이다. 다만, 나는 오늘도 아이의 곁에서 부드러운 바람처럼 따뜻한 햇살처럼 머물고 싶다.
오운완입니다(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