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도 '긁히는' 이유
부끄러움이란 무엇일까?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는 게 당연한 마음 아닐까? 우리는 늘 자신의 좋은 면만 보이길 원한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부끄러움을 숨기고 약점을 감추려 한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도 그렇다. 내 안의 부끄러움을 떠올려 보면 그 감정은 흔히 “긁힌다”라는 표현으로 다가온다.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어떤 행동을 마주했을 때,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대개 그 말이나 행동이 내 안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나는 왜 긁혔을까? 왜 예민하게 굴었을까? 왜 기분이 나빴을까? 돌이켜보면 단순한 불쾌함이 아니라 내 안의 나를 마주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불편함이 더 컸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화가 났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화날 이유는 충분했다. 내 안의 내가 찔렸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부끄러움이나 약점은 무엇일까? 그 답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자주 화내는 지점을 살펴보는 것이다.
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누군가 나의 실수를 지적하면 화가 난다. “그래서 너는 완벽하냐?“라는 생각이 들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다. 결국에는 그 사람을 미워하는 지경까지 가게 된다. 하지만 그럴 일인가? 객관적으로 보면 정말 그럴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그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요동치고 화가 치밀었다. 분노의 씨앗이 자라는 걸 느끼면서도 그 감정을 어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내가 그 말을 곱씹고 있는 이유는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단 하나, 나를 제대로 보는 것이다. 상대의 말에 왜 의미를 부여했을까? 사실 나 역시 무심코 던질 수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왜 나는 그 말에 상처받았을까?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세상은 나의 표상이다.”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의미를 주어야만 의미가 생긴다. 내가 아무렇지 않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된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신경 쓰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내게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무능하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내가 그것을 마음에 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가는 말일뿐이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무능하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다면 그 말은 내 안에서 크게 울린다. 나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상대를 탓하며 화를 낸다.
결국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나는 어떤 말에, 어떤 행동에 긁혔는가? 그를 탓하기 전에 먼저 내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상대의 말이 아니라 내가 왜 그렇게까지 반응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부끄러움이란, 내가 감추고 싶은 나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다. 부끄러움은 도망칠 대상이 아니라 나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도구다.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나, 그리고 당신 자신을 용서하자. 나를 뜨겁게 사랑해 주며 그런 마음조차도 포용하자.
오늘도 덜 화나는 하루 되소서. ^^
“마음이 일어나면 우리는 그곳에 머문다. 생각은 그냥 떠올라 이리저리 떠돌아 다닌다. 헌데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 현실이 아니므로 믿을게 못된다.
생각은 생각을 먹고 자라고 시도때도 없이 뒤범벅이 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생각을 없애려 할수록 생각만 가중된다.
생각이 일어나면 저항하지 않고 따라가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한걸음 물러서서 강 건너 불 보듯이 그냥 지켜보기만 하라.
그러면 생각의 힘은 약해진다.
부정적인 생각이 일더라도 저항하지 않으면 그 생각이 그리 자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라.“
(거인의 어깨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