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날다람쥐의 등산 철학
산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산에 오른다는 건 단순히 정상의 깃발을 꽂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정상을 찍는 성취감 때문에 산을 오른다고 하지만 내게 산은 그 이상의 무엇이다. 포기하고 싶을 때조차 내게 질문을 던지는 곳이다. “그래, 내려갈 거야? 그런데 내려가려면 결국 또 발을 떼야한다는 건 알아?” 결국 산은 나를 어딘가로 계속 나아가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산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성취감이다. 산을 오르며 드는 생각은 단순하다. “한 발 더.” 그것뿐이다.
아이들과 산에 오른다.
봄과 가을에는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게 내 소소한 행복이다. 물론 산행의 시작은 언제나 전쟁이다. “엄마, 언제 다 와?”라는 끝없는 질문에, “다 왔어!”라고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체력이 아니라 인내심 테스트가 시작된다. 그렇지만 나만의 원칙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을 안아주는 법은 없다(목적이 없는 평소엔 아주 많이 안아준다. 많이 안아줘야 똑똑해진다고 믿는다.). 힘들면 쉬고, 쉬고 싶으면 또 쉬면 된다. 그 사이 나는 아이들이 산에서 배워야 할 두 가지를 묵묵히 기다린다. 하나는 힘들지만 버티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버틴 끝에 찾아오는 쾌감을 느끼는 법이다.
사실 아이들과의 등산은 목적지보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때로는 작은 돌멩이를 줍고 지나가는 벌레를 관찰하다가 걸음이 더뎌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괜찮다. 아이들과의 산행은 나에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진리를 다시금 상기시키니까.
산이 좋은 이유는 냄새, 소리, 그리고 시선이 모두 새롭기 때문이다. 숲에서 풍겨오는 흙냄새는 지나간 계절의 흔적을 담고 있고 나뭇잎 스치는 소리는 마음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풍경이 좋다. 끝도 없는 계단 위에서 올려다보는 정상은 늘 멀고도 멀지만 그 순간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욕을 한다. “다시는 등산하지 않겠다.” 그런데 내려오고 나면 또다시 산에 오르고 싶어 진다.
사실 산은 묘한 마력을 지녔다. 올라갈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숨이 차서 다리가 아파서 등 생각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에는 마치 차곡차곡 쌓아둔 고민들이 순서 없이 쏟아져 나온다. “왜 그때 그 말을 했지?” “내가 정말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오르며 쌓아둔 기억이 그 고민들을 하나씩 정리해 준다. 산은 나에게 그 어떤 심리 상담사보다 더 명쾌한 답을 준다. “힘들 땐 그냥 올라가. 그러다 보면 고민도 올라가다 떨어질 거야.”
산은 정복이 아니라 배움이다
요즘 나는 매일 계단을 오른다. 언젠가 대한민국 백대 명산을 모두 둘러보고 싶다는 꿈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그 고생을 왜 사서 해?” 내 대답은 간단하다. 산은 내게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산을 통해 포기하지 않는 법, 기다리는 법, 그리고 스스로 걸어야만 하는 인생의 진리를 배운다.
산이란 아이러니한 곳이다. 올라갈 때는 온몸의 고통을 견디며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내려올 때는 마음속에 쌓인 고난과 고민들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그런데 그 과정은 이상하리만큼 나를 정리해 준다. 산에서 얻은 깨달음과 성취감은 내가 앞으로도 다시 산을 오르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산을 아직 모르는 이들에게
등산을 멀게만 느끼는 이들이 많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러나 산이 주는 감정은 그 어떤 단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 산은 단순히 내가 걸어가는 곳이 아니다. 산은 내가 힘들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버팀목이고 그 기억은 내게 다시 힘을 준다.
"힘들지? 그럼 한 걸음 더 내디뎌봐.”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내 삶의 모든 순간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느낌을 준다.
산이 내게 준 이 모든 깨달음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대한민국 백대 명산을 함께 오르는 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계단을 오르며 체력을 키운다.
**처세 9단의 철학 이번주 발행 글은 사실 다른 주제였습니다. 제가 서툴러서 다른 브런치북에 글을 올리는 바람에 번외 편으로 올리려던 글을 올리게 되었어요. 산이 주는 성취감도 주제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저장글을 퇴고하고 발행합니다. 목요일 나는 솔로 브런치북에 원래 쓰려던 글이 있습니다. 혹시 기다리셨던 분은 나는 솔로 브런치북을 읽어주세요.**Why not bully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