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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첫 작가모임, 에르메스를 들까 말까.

내가 든 건 진심.

by 다정한 태쁘 Dec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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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이름으로 지역 첫 모임이다. 모임이 다가오자 괜스레 신경이 쓰인다. 옷차림은 어때야 할까? 가방은 뭘 들어야 할까? ‘평소에는 안 드는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갈까?’ 이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첫 만남이라는 특수성이 나를 묘하게 긴장하게 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풀릴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그 자리에서 나를 지키는 건 가방도 옷도 아닌 진심이었다.


눈치로 채워진 배려의 시간


모임은 조용한 긴장감으로 시작됐다. 각자 한 마디씩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누구도 자신을 과시하거나 말의 중심에 서려하지 않았다. 서로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 순간 불편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대화가 조금씩 오가면서 알게 되었다. 이건 불편함이 아니라 배려였다.


사실 작가라면 누구나 할 말이 많지 않겠는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 읽었던 책에 대한 감상,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 잔뜩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한 발 물러서서 상대방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은 마치 서로를 이해하려는 조용한 대화처럼 느껴졌다.


모임의 끝자락 즈음 내 안에 있던 두려움과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모두가 평범한 옷차림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온 모습 그대로 가방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바로 ‘진심’이었다. 꾸미지 않은 이야기가 오가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껍질을 벗고 진심이 통하다


집에 와 남편에게 오늘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웃음이 났다.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가지 않은 건 신의 한 수였다. 가기 전엔 그 가방이 나를 더 멋지게 보이게 할 거라 생각했지만 진짜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가장 나답게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진심이 통할 수 있다는 걸.


그날 모임에서 나는 껍질을 하나 벗어던졌다. 화려한 포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낸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조용한 대화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속에서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진심의 간격, 3개월


우리는 모두 바쁘다. 그래서 모임은 3개월에 한 번씩 열기로 했다. 그 간격이 처음엔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 간격이 오히려 관계를 더 진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다. 너무 자주 만나면 잔잔한 물결이 쉽게 사라지듯 간격을 두고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기에 다음 만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글쓰기와 독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어도 이 두 가지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었다. 이 공통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집보다 더 큰 쉼터


이번 작가 모임은 단순한 만남 그 이상이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통해 영감을 얻고 마음을 나누며 내가 왜 글을 쓰는지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앞으로 3개월에 한 번씩 만난다 해도 이 모임은 내게 큰 의미가 될 것임이 확실하다.


대화는 짧았지만 깊었다. 서로의 진심이 오가는 시간이었고 그 안에서 나 또한 조금 더 성장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이 모임에서 피어났다.




다음 만남이 벌써 기다려진다. 그날 나는 어떤 책을 읽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입을지 어떤 가방을 들지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진심을 들고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준비라는 걸 알았으니까.


다음 모임이 다가오면 나는 다시금 나를 꺼내어 그곳에 가져갈 것이다. 에르메스가 아닌 내 글의 감정을.


“타인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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