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길을 걸으며 젤라또를 먹어도 괜찮은 날씨가 되었다. 에밀리아는 피스타치오 맛 젤라또를 나무 수저로 길게 늘였다가 비비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나보다 키가 삼십 센티미터는 작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게 그렇게 맛있냐고 물었다.
“맛있어.”
그녀가 젤라또를 다 삼키지도 않고 웅얼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붙은 크림을 떼어주었다. 그녀는 내 손에 남은 크림을 비비듯 바르고 나를 쳐다 보았다. 그녀는 마치 이곳과 같았다. 아드리아해의 여왕. 우리가 사는 곳의 별명이기도 했지만, 그녀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작년 카니발 때, ‘아드리아해의 여왕’에 선발된 것이 바로 에밀리아였기 때문이다.
나는 가급적이면 그녀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그녀의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우리 집은 무척이나 허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이곳의 발전은 40년도 더 전에 멈추었다. 2060년 이후로는 관광객들도 찾지 않았다. 찾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화석 연료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했고 이동 수단의 한계로 한때 사라졌던 곤돌라가 다시 생겼다. 육지인 신시가지로 다들 이사를 해서, 구시가지인 이곳을 고집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더 이상 사람도 남지 않았다. 해수면이 높아져 집을 잃은 탓도 있고.
옛날에는 2층이었던 현관으로 들어가, 바닷물에 다 썩어버린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거실이 나왔다. 에밀리아의 할머니는 늘 거기에 앉아 구형 텔레비전을 하루 종일 시청하고 있었다. 따분할 법도 한데 그녀에게는 계단 밖을 나갈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를 간호하는 데 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곳에 보내졌다. 소위 말하는 호스피스였다.
“한때는, 수로에 돌고래들이 찾곤 했어.”
내가 할머니의 담요를 고쳐주며 그녀의 옆에 앉자, 그녀가 나를 붙잡고 말했다. 할머니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나도 알아요, 할머니. 베네치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걸요. 어디를 가도 물만 보이면 어디 어디의 베네치아라고 떠들고 다녔으니까요. 요즘에는 어디를 가도 해상 도시지만요.”
나는 할머니를 달래며 말했다.
“파울로. 나는 네가 돌아올 줄 알았어.”
그녀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파울로는 그녀의 아들이자, 내 고용주의 이름이었다. 나는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잠에 들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그녀가 잠에 들면, 나는 그녀를 업고 그녀의 침대로 데려다주었다. 부엌에서 물을 꺼내 약봉지와 함께 그녀의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 두는 것으로 내 일과가 끝났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마침 에밀리아가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배꼽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짧은 흰 나시에 속옷만 겨우 가릴 정도의 바지를 입고 나온 그녀는 나에게 머리를 말려줄 것을 부탁했다.
“아직 날씨가 추우니까, 그렇게 입으면 감기 걸려.” 내가 말했다. 그녀는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갔다. 나는 그녀의 방에 뒤따라 들어가 화장대 앞에 그녀를 앉혔다. 드라이기의 코드를 콘센트에 꽂자, 일순 스파크가 튀었다.
“괜찮아?” 그녀가 물었다.
“늘 있는 일인데, 뭐.”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쥐었다 펴 보이며 그녀의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새로운 요리를 배웠어. 고추를 사용하는 요리는 너무 맵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아직 그 정도를 잘 모르겠어.” 그녀가 말했다.
“맵다는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내가 대답하자 그녀는 고개를 꺾어 위를 보며 머리를 말리는 나를 응시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기에 나는 다시 그녀의 고개를 거울로 향하게 움직였고 그녀의 붉은 머리를 마저 말렸다.
“곧 있으면 절전 기간이네.”
머리를 다 말리고 나자, 그녀가 말했다. 날이 따뜻해졌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여름이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6개월간의 긴 여름을 사람들은 절전 기간이라고 불렀다. 전기와 관련된 제품은 아무것도 사용할 수 없는 기간이었다. 그렇게 긴 절전 기간이 끝나면, 그동안 모은 전기로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일부 중동 국가들은 시행하지 않는 제도라고는 하지만 범지구적 차원에서 실행하고 있는 제도였기에 이곳, 베네치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걱정하는 에밀리아에게 별일 없을 것이라 안심시키고 그녀의 방의 불을 꺼 주었다.
“잘 자.”
문을 닫고 나가려는 나에게 그녀가 인사했다. 나는 거실에서 혼자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을 끄고 다시 집 밖으로 나왔다. 아직 여덟 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곳은 무척 조용했다. 인구 삼천 명의 작은 도시라 할 법했다. 나는 마을의 모두가 편히 자는 이 밤, 긴 산책을 했다.
이 평화로운 날들에 작은 문제가 생긴 것은 5월 말이었다. 에밀리아는 일주일에 나흘을 이탈리아 요리점에서 일하며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을 했다. 나는 할머니의 건강이 많이 악화하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육지에 연락해 약의 종류를 늘렸다. 지금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밖에 없었다. 약이 오늘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곤돌라꾼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육지로 나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비가 올 것 같은데, 기야 할머니 문제라면 나가야지.”
그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고맙다며 뱃삯을 물었고 그는 300유로라고 대답했다. 약값에도 이미 2,000유로를 썼지만 받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그는 절전 기간 전이라 그나마 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수긍했다.
“오랜만이야.”
세 시간쯤 뒤에, 그를 만났다. 그는 하얀 셔츠 안에 검은색으로 줄이 간 옷을 입고 있었다. 흔한 곤돌라 꾼의 복장이었다.
“왜? 이건 중요한 거야. 아무리 손님이 ‘너’여도 해야 할 것은 해야지.”
그가 밀집으로 된 모자를 쓰며 말했다. 그는 이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고, 가장 돈이 많았다. 그만큼 곤돌라 꾼이 되기가 어렵다고 했다.
“어찌 보면 의사인 너보다도 자긍심이 높다고 할 수 있지. 이런 말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뱃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말했다. 나는 그가 깔아준 쿠션에 편하게 앉아 그의 말에 경청했다.
“그래도 너를 쓰는데, 돈이 꽤 많이 들지 않았나? 에밀리아의 아버지는 뭐 하시는 분이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효자인지, 불효자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네. 근데, 에밀리아는 잘 지내?”
“곧 있으면 절전 기간이라고 많이 우울한 것 같더라.”
“그 녀석은 절전 기간이 되면 우울해하곤 했지. 너와도 잠시 떨어져 지내야 하고.” 그가 노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뭐라고.”
나는 그의 말을 부정했다. 곤돌라 꾼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육지에 도착했다. 약이 오기로 한 우체국에 가 보았으나, 아직 약은 도착하지 않았다.
“의사 양반.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은데 내일 다시 데리러 와도 될까. 오늘 기념일이라서 말이야.”
며칠 정도는 아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알겠다고 했다. 그는 행운을 빈다고 말하곤 나루터를 떠났다. 그가 떠나고 두 시간이나 지나서야 약이 도착했다.
“미안하게 됐수, 네비게이션이 이쪽으로 오면 늘 먹통이야.” 배달부가 자신의 고물 트럭을 큼지막한 손으로 한 대 툭 치며 말했다. 나는 괜찮다며 오히려 무사히 와 줘서 고맙다는 말과, 망고로 만든 빵을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는 감사하다며 모자를 벗어 예의를 표했고 나는 악수로 응답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 에밀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응, 그렇구나. 알았어. 내일 비가 그치면 와야 해. 잘 할 수 있어.”
그녀는 내 상황을 듣곤, 어쩔 수 없다는 듯 상황을 이해해주었다. 곤돌라 꾼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벌써 그의 부인과 기념일을 보내는 듯했다. 비가 아드리아해에 쏟아졌다. 한동안 비가 온다는 소식을 알아차린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나루터 앞 처마 밑에 앉아 멀리서 반짝이는 마을을 보았다. 역시나 아름다웠다. 나에게 미적 감각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아드리아해에 일렁이는 마을이 아름답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에밀리아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초 사흘 정도 내릴 것이라 예상했던 비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수위가 불어 나루터까지 잠겼다. 나는 근처 호텔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육지의 다른 곤돌라 꾼도 이런 비에 마을로 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며 손사래 쳤다. 마을에 남겨진 할머니와 에밀리아가 걱정되었다. 그녀와는 하루에 삼십 분씩 전화했으나 이마저도 어제 이후로 전화가 계속 불통이었다. 앞으로 나흘 뒤면, 절전 기간에 들어갔기에 그전에는 꼭 마을로 가야 했다. 어젯 밤, 마지막 전화에서 에밀리아가 물었다.
“이대로 절전 기간에 들어가면 어떡하지?” 그녀의 목소리에 불안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너와 할머니 걱정을 해야지.”
“그렇지만…”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른 주제의 말을 꺼냈다.
“지중해의 여름은 어때?”
“지중해라면 시원하겠지만, 여기는 더워. 살인적인 날씨의 베네치아-! 온도가 막 높은 건 아닌데…”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 밤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악기도 연주하고 나름 재밌어! 늘 모자를 쓰고 다니는 마르코 아저씨 있잖아. 밤이 되면 모자를 벗는데, 글쎄, 땀이 소금기가 배여서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거 있지.”
그녀가 신이 나서 말했다.
“대머리라서 더욱 빛나겠네.” 내가 그녀를 웃기기 위해 말했다. 그녀가 슬퍼할 때면 그녀를 웃게 해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그녀가 수화기 너머로 킥킥거리며 웃었다.
“너와도 같이 여름을 보내고 싶어.” 한참을 웃던 그녀가 말했다.
“그럴 순 없는 거 알잖아. 내일까지 비가 멈추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게.”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며 말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절전 기간은 나흘 앞으로 다가왔고 그 전에 나는 그들에게 약을 전달해야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하는 수 없이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내 다리 사이로 물이 들어갔다가 빠지는 것을 느꼈다. 비가 어느 정도 사그라드는 것을 기다린 후 그대로 물에 몸을 던졌다.
베네치아는 옛날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인공 섬이었다. 옛날부터 이곳의 아름다움은 워낙 유명해서, 전 세계에서 한 번은 찾는 곳이기도 했다. 해수면은 점점 높아지고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자연을 어느 정도 되찾자 더 이상 관광객을 받지 않겠다는 어느 시장의 선언 이후로, 마을은 쇠퇴하고 시민은 전부 육지에 있는 신시가지로 떠났다. 에밀리아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물속을 헤엄치며 옛 베네치아의 잔해들을 지났다. 비록 시야에 보이지는 않아도 과거부터 이어진 공간 위로 나는 헤엄쳤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에밀리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어?”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니까. 나는.”
간신히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에게 손에 쥔 것은 전달했다. 할머니의 약 봉투였다. 그녀는 울며 내가 건넨 약을 자신의 옆에 놓았다.
“절전 기간에는 수리도 못 받는단 말이야!”
그녀가 소리쳤다. 아, 곧 절전 기간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몸에 기능들이 하나씩 멈추는 것을 느꼈다. 가장 중요한 엔진부만 아슬아슬하게 뛰고 있었다.
“침수품이네, 나는.” 내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녀가 슬퍼하면 웃기는 말로 그녀를 웃을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며 물었다. 나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카메라 센서가 망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한 번만 더 아드리아해의 여왕을 보고 싶었는데.
“이틀만 빨리 절전 기간을 맞이할게. 끝나면 보자, 에밀리아.”
나는 스스로 나의 엔진 기능을 껐다. 더 이상 그녀가 우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