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봐서..와 되고.. 사이에는

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와 박완서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에서

by 필승작가

작년에 "놀아주는 여자"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선재 업고 튀어"처럼 사람들 모두에게 '핫'한 드라마도 물론 멋지지만,

이상하게 주변 사람들은 많이 보는 것 같지 않아도 나는 꼭 챙겨보게 되는 그런 드라마가 있다.

남자주인공 엄태구의 매력에 폭 빠졌었는데,

헛! 몇 달 사이에 그 배우 이름도 가물가물한 현실이라니. 비록 배우들 이름도 인터넷 검색으로 겨우 기억해 낸 형편이지만,

그래도 그 드라마에서 조연들의 대사 중에 기억에 남겨둔 것이 있어서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다음은 주인공의 가장 큰 조력자인 일영과 미호의 호감이 시작될 즈음에 나왔던 대화이다.


"변호사예요?"

"자격증은 있어요."

"미호 씨는 어떤 운동했어요?"

(미호가 축구공을 가리킨다.)

"축구?!"

"일하다 보면 막 몸이 근질근질해요."

"그럼 미용사는 어떻게 된 거예요?"

"저도 자격증 시험 봐서 됐죠."

"간단하네요"

"공무원은 공무원 시험 봐서 되고, 변호사는 변호사 시험 봐서 되고, 국가대표는 선발전 봐서 되고...
말은 간단한데.. '봐서'와 '되고'사이에 어떤 시간이 있었는지는 본인만 알죠.
아무리 머리가 좋고, 학교를 좋은 데를 나와도 변호사 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맞아요. 쉽지는 않았어요."




봐서와 되고 사이에... 어떤 시간이 있었는지는 본인만 안다. 아무리 내가 잘 설명하려고 해도 나만 아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그만이 아는 자신의 시간이 있고 세계가 있을 것이다.

같은 집에서 한 솥밥을 먹고, 내내 붙어 있던 사람들에게도 서로에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걸 다 이해시키려는 것도, 이해할 것이라 자신하는 것도 어쩌면 오만이지 않을까?

나는 몇 개월 전, 이런 생각을 하며,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스스로 만족해했다.

그리고 다시 몇 개월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나를 열심히 이해시키려고 했으며,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답답해하거나, 섭섭해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만큼이면 알만큼 다 안다고 생각했다.


책이 나오고 나서 거의 매일 독자로부터의 편지라는 걸 받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리고 외국에서 오는 것도 꽤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해하고, 활자의 위력이 바로 이런 거로구나 하고 감탄도 했다.
별의별 편지가 다 있었다.
나를 무슨 위대한 작가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시골 소녀의
동경이 가득 담긴 간지러운 편지가 있는가 하면,
가정부인의 고마운 격려의 편지도 있었고,
상금을 나눠 먹자는 협박 섞인 편지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내 작품을 읽고 내가 그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듣고 보내오는 편지는 거의 없었다.
나는 많은 편지 속에서 허망감을 짓씹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고독한 작업인가를 알 것 같았다.

-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지음



글을 쓴다는 것도, 나를 표현하는 것도,

내가 그리고 있는 나의 삶이라는 그림도

어느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을 것 같다.

알아듣고 이해할 것이라는 기대와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더 고독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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