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4년간의 대기업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버지니아 주립대 공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 (Post doctor) 과정의 기회가 생겼다. 미국행은 박사 과정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되었던 고민이자 지리한 갈증이었다. 그러나 막상 기회를 눈앞에서 마주하고, 마음의 결정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되니 또다시 바보처럼 망설여졌다.
대한민국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에서 차장급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회사 생활에 딱히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빠른 시기에 프로젝트 리더를 맡았을 정도로 객관적인 고과 평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오히려 꽤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이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렴풋이 나의 인생에는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았다. 제자리에서 안도하고 있는 기분은 이따금 내게 죄책감이 들게 했고, 그럴 때마다 가보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길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생각해 보면 참 막연했다. 최고의 경우와 최악의 상황을 스스로 상상하며 불확실함의 경우의 수만큼 여러 번을 반복하여 망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떠나기를 결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엉뚱하게도 홀로 떠난 태국여행에서 느낀 내 신체에 대한 감각이었다. 길가의 먼지를 마셔가며 스쿠터를 타고 왕복 100km가 넘는 산길을 넘어 다녔으며, 구토를 유발할 정도로 힘들던 무에타이 수업도 견뎌냈다.
나는 아직도 너무나 건강했다!
그래, 일단 가면 뭐라도 되겠지 싶었다.
애틀랜타를 경유하여 버지니아의 작은 소도시 Charlottesville의 공항에 착륙했다. 지평선이 보일 듯 탁 트인 하늘의 구름들이 이국적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두통이 시작되었다. 평소 여행을 다닐 적에는 잘 겪어보지 못해 인지하지 못했으나, 시차 적응으로 인한 신체 반응이었다. 약 일주일 동안 두통에 시달린 후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느끼며, 이내 깨달았다. 일단 간다고 해서 뭐라도 다 되진 않는구나…
그렇게 미국 생활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