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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준파 Aug 08. 2024

늘 불안했다

미국 정착기

미국으로 온 후 하루도 빠짐없이 불안했다.

'미국에 온 것이 잘한 일일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괜한 일을 벌인 것은 아닐까’


안정적인 일상 대신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늘 막연했다. 막연히 있다 보면 가만히 두려웠다. 머릿속을 억지로 빼곡히 채워 두려움을 잊어보려 노력하다 알아낸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스스로에게 심어주는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착각이거나 혹은 합리화일지라도, 또한 어떤 방향으로 귀결될지 확실치 않더라도, 그러한 행위와 느낌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변화를 시도했다. 생산적인 무언가를 한다는 느낌과 행위 자체가 좋은 것이라면, 하루의 가장 이른 시간에 가능한 한 빨리 무언가를 해놓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오늘 하루 최소한 뭐 하나는 했다는 셈 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마음으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짜리 보험처럼.


근처 카페의 오픈 시간을 기준 삼았다. 새벽 6시 미세먼지가 하나도 없는 미국 시골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일찍 집을 나서는 기분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카페의 이른 아침, 해가 채 다 뜨지 않은 시간에 가장 처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양인이라니, 참 멋스럽지 않은가!’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 카페의 주인인 흑인 아주머니와는 자주 보면서 친구가 되었는데, 가끔 공짜 크루아상과 커피를 주곤 했다. 생각해 보면 그녀에겐 내가 멋스러웠다기보다는 안쓰럽고 애쓰는 동양인 유학생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시행착오를 겪었다. 생산적인 무언가를 선정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해야 할 업무들을 아침 시간을 이용해 미리 해보았고, 영어로 된 책도 읽어 보았고, 영어 공부도 해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모두 실패했다. 업무를 미리 하게 되면 무언가를 해냈다는 맺어짐이 없이 그저 계속해서 생겨나는 일들의 연속인 느낌이었고,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은 생산적이라기보다는 강박에 가까웠으며, 영어 공부는 그냥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링크드인 (Linked In) 페이지를 한번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링크드인과 같은 채용 사이트를 통해 대부분의 채용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국 유학을 고민하던 시절 만들어 놓고 방치해 두었던 페이지였다. 언젠가 한 번은 정리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기억이 난 것이다. 현재 거주 위치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꾸고, 이제 과거의 경력이 된 한국 회사 이력을 추가하고, 그동안 출간 했던 논문과 특허 그리고 현재 연구하고 있는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단순한 신상 입력과 경력의 나열이었지만, 놀랍게도 이 행위가 꽤 긍정적인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경력을 되돌아보고 간단명료하게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은 고민과 시간을 필요로 했고, 과거를 연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미래의 잠재적 선택지들이 머릿속에 이정표처럼 떠올랐다. 무언가 정말 생산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Charlottesville 의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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