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간단한 인사 후 발표에 돌입했다. 미팅 룸에는 약 10명 남짓한 인원들이 들어와 있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맡고 있는 업무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는 제각기 다른 표정의 면접관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는 것은 꽤 긴장되는 일이었다. 미리 알아본 스타트업의 규모를 생각해 보았을 때,이 방에 있는 사람들이 아마 회사의 핵심 대부분일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괜스레 어깨가 무거워졌다.
약 50분간의 발표가 이어졌고, 중간중간 자유로운 질의응답과 토론이 오갔다. 발표가 끝났을 무렵,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기술적인 질문은 물론, 일반적인 채용 프로세스에서 마주할 법한 질문들도 이어졌다. 떨리는 마음은 있었지만, 함께 일할 동료에게 대화를 건네는 듯한 그들의 태도 덕분에 불편함은 없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대화가 흐르며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점심 식사 이후였다. 회사 대표가 직접 자신의 노트북을 연결하며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내용은 회사의 비전, 조직 구성, 그리고 채용 후보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었다. 한국의 대기업에서만 일해온 나에게는 조금 낯선 광경이었다. 면접관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이곳에서는 대표가 본인의 회사를 나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이질적인 그 태도에서, 나는 묘한 감동을 받았다.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내 마음 속에서, 작은 안도감이 들었다.
짐작컨데 대표는 아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이 주는 불안함, 불확실함.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 담긴 가능성과 잠재력. 그는 내가 그런 것들을 직접 판단해보길 원했던 듯하다. 회사가 사람을 평가하듯, 사람 또한 회사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확신을 갖고 일할 동료가 필요했을테니까.
이후에는 실제로 함께 일하게 될 동료들과 토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들은 현재 직면한 문제에 대한 데이터를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했고, 함께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내겐 회사의 현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고, 회사 입장에서는 나라는 사람이 실제 업무에 어떻게 반응하고 기여할 수 있는지를 짧게나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평가하는 데 이보다 현실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대규모 공채가 일반적인 한국과는 달리, 이처럼 면접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미국의 채용 방식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모든 일정을 마친 뒤,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말이 식사지, 사실상 면접의 마지막 순서이었다. 다만 주제가 조금 더 개인적이고 편안해졌을 뿐. 그 자리는 기본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성향을 알아보는 자리였다. 함께 일할 사람의 성향은, 능력만큼이나 중요하다. 특히나 작은 회사에서는, 작은 오해 하나가 전체 분위기를 흔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식탁은 의외로 진솔한 진단의 자리가 될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여전히 긴장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안했다. 이미 긴 하루 동안 받은 배려와 존중 덕분이었을까.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그들과 마주앉아 웃고 이야기하며 식사를 나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창밖으로 밤이 내려앉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돌아보았다. 단 한 사람의 채용을 위해 이렇게 많은 시간을, 공을, 정성을 들인다는 사실이 문득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내게 보여준 진심 어린 태도와 반짝이던 눈빛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합격일지 아닐지에 대한 걱정을 떠나,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