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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꺼내놓을 용기

미국 스타트업

by 기준파

미국 취업 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나는, 동시에 여러 군데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와중에 한 곳으로부터 오퍼까지 받는 이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솔직히 말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구글에 질문을 던졌고, 수많은 사례와 전략, 조언들이 쏟아졌다. 그러다 알게된 것은, 여러 회사와 동시에 협상을 진행하는 건 미국 취업 시장에서 매우 흔한 일이고, 이를 기회로 삼아 협상력을 높이는 것도 일반적이라는 것.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면 연봉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글도 보았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지금의 나에게 잘 맞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나는 말로만 듣던 Shy Korean이었다.


우선 나의 상황을 냉정하게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스타트업에서는 Offer를 받은 상황. 온사이트에서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음.

2) 동시에 진행 중인 다른 회사의 온사이트 인터뷰를 앞두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 가능만 하다면 가장 가고 싶은 곳

3) 대략적인 타임라인을 고려할 때, 다른 회사의 결과를 알기까지는 지금부터 약 한 달 정도 시간이 필요함,

4) 스타트업 입장에서 나의 결정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 오퍼가 철회될 가능성도 있음


정리는 했지만 ,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그렇게 계속 구글을 뒤지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 문장.

"Be Honest"


상황을 이용하기보다는 최대한 솔직해져 보기로 했다. 솔직하게 상황을 공유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Offer를 유지할 것인지의 결정은 그들이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거짓말로 시간을 질질 끌면서 그들을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Offer에 대한 답장을 보냈다.


[바쁘신 와중에 하루 종일 시간을 내어 온사이트 인터뷰에 참여해 주시고, 저의 채용을 검토해 주신 당신과 직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만장일치로 저를 선택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기쁩니다. 당사의 신규 채용 시급성을 고려할 때, 신중히 검토해 제안해 주신 Offer에 대한 저의 의견을 최대한 빨리 드리는 것이 마땅하나, 저의 현재 상황을 솔직하게 공유드리고 가능하다면 결정을 유예할 수 있는지 문의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현재 다른 회사와도 동시에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 온사이트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의 첫 경력에 대한 결정이니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판단한 후당사의 비전과 팀의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저의 첫 미국 커리어 결정인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조금 더 시간을 갖고 고민하고자 합니다.

현재 인터뷰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있으며, 결과가 확인될 때까지는 약 2주에서 최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때까지 결정을 기다려주실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버지니아 주립대 중앙 잔디 광장

떨리는 손으로 Send 버튼을 누르고, 버지니아 주립대학교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조용한 장소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고, 문득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기회들이 하나씩 열려가고 있었다.

그래 어찌 되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중요한 거겠지.


그리고 하루 뒤. 예상치 못한 답장이 도착했다.


[당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는 기존 제안보다 연봉을 10% 인상하고, 추가로 Sign-on Bunus를 포함한 새로운 Offer를 제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말씀하신 기한까지 신중히 고민하시고 알려주세요.]


혹시나 화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돌아온 건 이해와 배려, 그리고 인상된 조건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게 바로, 미국이라는 시장의 유연함과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식이구나.


그 이후 진행된 또 다른 회사의 온사이트 인터뷰에서도 다행히 좋은 결과를 받아 최종적으로 그곳으로 향하기로 했을 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타트업 CEO에게 결정을 정중히 알렸다. 그는 따뜻한 축하의 말을 전해왔다.


Best of luck 라는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짧았지만 진심이 오간 관계.

그는 내 기억 속에, 참 멋진 사람으로 남아 있다.


오퍼를 최종 거절한 후 스타트업 CEO에게서 받았던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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