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처음으로 다같이 일출을 봤다. 시작부터 기분 좋은 하루! 아침 일정이 여유 있어서 듄까지 조깅을 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고비고양이가 뚱땅뚱땅 따라왔다. “사막에서 고양이랑 산책해본 사람?” 질문을 했을때 과연 몇 명이 그렇다 할 수 있을까. 오래오즈와 진귀한 경험을 함께 했다.
고양이가 어느 순간 따라오지 않자, 약속했던 조깅을 하러 HJ이랑 숨차게 달렸다. 까마득 할 줄 알았는데 함께 달리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모래언덕 앞에 도착해있었다. 역시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은 내가 마음먹었던 것 이상의 경험을 선물한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사막, 모래 위에는 우리보다 먼저 왔다간 손님이 있는 듯 귀여운 동물 발자국이 있었다. 모래는 발이 약간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고비는 지구상에서 기온 차가 가장 큰 사막이라더니, 두 발로 실감했다.
이른 아침의 모래는 차갑지만 단단했다. 발이 푹푹 꺼지지 않는 덕분에 어제보다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고, 금새 어제 썰매를 탔던 곳까지 도착했다. 우리는 저 멀리 내려다보기도 하고, 윗옷으로 모래썰매를 타보기도 하고 우리의 방식으로 사막을 즐겼다. 모래 위에 글쓰기도 빼먹지 않았다.
2024.09 오래오즈 고비넘다!
고비사막을 모래 놀이터 삼아 놀고 내려가는데 저 멀리 언덕 너머로 등산복을 입은 커플이 등장했다.
기나긴 등반을 마치고 돌아가는 듯 했다.
“저 사람들 백퍼 유러피안임”
유럽인 감별사 HJ이의 레이더가 작동했다.
“유럽인들은 남들 안하는 여행, 고생스럽지만 자연 그대로 즐기는 여행을 좋아하더라고.”
확실히 한국인이랑은 다른 여행을 하고 있었다.
(국적별 여행스타일의 차이가 궁금하다)
유러피안 커플은 금새 듄에서 내려와 사막 앞에 홀로 있는 텐트로 향했다.
“저 사람들 저기서 잤나봐”
저들에 비하면 우리의 게르생활은 호화로운 거였다.
익스트림한 자연을 즐기는 유러피안의 여행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루미큐브와 토달볶 웨이팅
고비에서 실컷 놀고 늦게 출발했더니 2시에 식당에 도착했다. 주문이 밀려서 1시간 반을 기다려야된다는 말에 놀랐지만 다른 식당을 가도 똑같으니 뭐라도 하면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전 식당에서는 두키가 숫자 21을 만드는 카드게임을 들고 왔었는데 생각보다 시시해서 실패했었다. 다른 게임을 찾던 중 언니가 캐리어에서 루미큐브를 가져온다고 했고, 두 명씩 팀으로 플레이하기로 했다.
이때 했던 루미큐브가 생각보다 재밌어서 의도치 않은 힐링이됐다. 특히 SY이와 에기(몽골 기사님)가 한 팀 됐을 때 제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둘이 어떻게 작전을 짠 건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게임을 네다섯판 정도 했을 때, 정말 1시간 반이 지나자 음식이 나왔고 3시반에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또 했다. 기대 없이 슬로우푸드(?) 맛을 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용서가 됐다. 몽골음식은 아니지만 아직도 이 맛이 그립다.
1923년 미국의 자연사박물관 소속 고생물학 박사들이 이곳 바양작에 와서 세계 최초의 공룡알 화석을 발굴하는 역사적인 영상을 봤다.
영상을 보며 인상 깊었던 두 가지가 있는데, 첫 째는 공룡알 화석 발견에 있어 낙타가 일등공신이라는 것이다. 탐험대는 드넓은 고비 사막을 낙타를 타고 다니며 연구했고, 찢어질 듯한 추위를 낙타 털로 버텼으며, 무거운 물건들도 낙타로 옮겼다. 역사적인 발견에 낙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탐험대가 몽골의 불교 문화를 존중하며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몽골의 중요한 기념일, 부처님 오신날을 탐사기간 중 맞이하게 됐는데 이방인인 그들도 직접 불상을 만들고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존중하고 즐길 줄 아는 태도가 배울 점이었다.
바양작에서 나온 세계 최초 공룡알 화석, 오비랍토르의 알이다. 공룡이 한 번에 여러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덕분에 알았다. 공룡알은 동그랗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 둥근 느낌보다는 길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달걀이 타원형인 것처럼 공룡알도 낳기 편한 모양으로 생겼나보다.
공룡 단체샷
박물관 영상에서 본 역사적 장소 바양작에 도착했다. 영어로 Flaming cliff. 서양인들이 이곳의 석양에 반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90년전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곳에서 채집한 공룡알 화석까지 직접 보고 와서 더욱 와닿은 곳이었다. ‘옛날에는 공룡이 여기 살았구나!’ 약 6600만년이 지난 지금 공룡은 사라졌지만 이곳에 내가 있다.
바양작의 첫인상은 미국의 브라이스캐년이었다. 그랜드캐년 만큼의 웅장함은 없지만 붉은 모래에서 활발한 땅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다. 바양작의 에너지를 받은 덕에 몽골여행 4일차만에 텐션이 올라왔다.
오래오즈 바양작 단체사진 포즈를 정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의미있게 남기고 싶어서 아이디어를 냈는데, ‘여기 세계 최초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곳이니까 공룡 컨셉으로 가자. 한 명은 공룡알하고 나머지는 공룡 어때’ 이 한마디에 몽골여행 최애 영상이 나왔다. 익룡, 육식공룡, 초식공룡, 공룡알의 콜라보! 나랑 이렇게 놀아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친구들아 이렇게 평생 놀아줘~
바양작에서 공룡처럼 신나게 뛰어놀고 돌아가려는데 웬 돌들이 만리장성처럼 이어져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 명씩 돌을 쌓고 기도했다.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바양작 기운이 좋아서 다 이루어질 것 같다.
여행와서 기념품 잘 안 사는데 몽골에서 낙타인형 만큼은 데려가고 싶었다. 다양한 낙타인형 중에서 내 인생 첫 낙타랑 낙타체험에서 탄 아이와 비슷한 놈으로 골랐다. 만오천 투그릿으로 핸드메이드 낙타 한 마리 입양완료! 수공예로 만들어진 낙타들이라 가게마다 다른 디자인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저녁으로 두키표 찜닭을 먹고 게르에서 위저드 게임을 했다. 게임 닉네임은 썰매칸, 푸르공무원, 악성민원인, 잼민이. 저마다 강력한 이름을 내세우며 기선을 제압했다. 이런 게 또 기억에 남을 것 같드. 게임은 썰매칸이 칸의 자리를 차지하며 끝났다. 역시 칸은 달라.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게르 밖을 나가는데 문앞에 SY이가 있었다. 별보고 있었다고 한다. 난 별보려고 일어난 건 아닌데 럭키비키하게도 같이 밤하늘을 보게 됐다. 보름달이 가로등만큼 밝아서 은하수가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북두칠성 만큼은 선명히 보였다.
북극성을 찾아 보기로 했다. 북두칠성의 국자 부분(오른쪽 두별)을 연결해서 그 선을 다섯배 연장하면 북극성이 나타난다. 늘 북쪽 자리를 지키는 북극성은 오랜 시간동안 전세계인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몽골에서 네비게이션 없이 자연지형으로 길을 찾는 기사님을 보니까 북극성으로 방향을 찾는 옛 선조들의 지혜가 더 와닿았다. 여행에서 별볼 때마다 다른 별자리들 찾느라 북두칠성은 잘 안보게 됐었는데. 몽골에서 본 북두칠성은 그래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미라클모닝이었던 일출 보기와 고비사막 조깅부터 토달볶 기다리며 했던 루미큐브, 바양작, 낙타인형, 위자드, 마지막 북두칠성까지 … 친구들 덕분에 더 풍요로웠던 몽골에서의 넷째날이었다.
“오래오즈랑 몽골 오길 진짜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