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떠도는 유목민의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푸르공에서의 시간이 꽤나 길었으니 기념으로 내가 매일 보던 관점으로 사진을 남겼다. 이 사진을 보면 푸르공에서의 추억이 생각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지날 때마다 디스코팡팡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들썩거리는 서로를 보며 꺄르르했던 우리, 길게 말은 휴지로 조수석에서 잘도 자는 두키의 콧구멍과 귓구멍을 찌르던 에기, 몽골어 힙한 것 같다고 따라해보던 우리… 여행의 추억은 사람이 절반 이상이구나.
점심으로는 몽골리안 양고기스프, 물만두, 볶음면을 먹었다. 스프는 경상도식 탕국 맛과 비슷해서 잠깐 고향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물만두는 속이 고기로 꽉 차 있어서 한 입먹으면 육즙이 쫩 나왔다. 그 육즙이 계속 생각나서 한국에 있는 몽골음식점이라도 찾아 가고 싶다.
바가가즐링 촐로에 도착했다. 불교가 탄압받던 시기에 스님이 숨었던 돌산이라고 한다. 몽골에서 보기 힘들었던 나무들이 있었고, 가을을 맞이한 걸 아는 듯 단풍이 져있었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햇살도 따스하고 바람이 싱그럽게 불어서 좋았다.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멍때리다가 잠깐 누워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관광지치고 심심했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오늘 묵을 숙소는 유목민이 사는 게르. 샤워실도 없을 만큼 열악하다 들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도착했다. 유목민은 오토바이를 타고 소와 말을 길들이고 있었다.
조금 쌀쌀한 바람이 불어서 짐을 챙기고 얼른 우리 게르를 찾아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본 것은 바닥에 말려 놓은 고기. 그걸 두키가 치우다가 떨어트리는 바람에 미쳐 다 마르지 않은 고기들이 방바닥을 나뒹굴었다.
‘여긴 찐이구나’
저녁에 게르 주인장의 공연이 있을 거라고 들은 우리는 전통의상을 입은 유목민의 전통음악 공연을 기대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으로 사용될 게르로 들어 갔는데, 반전이 펼쳐졌다. 우리가 상상한 전통 의상과 전통 악기는 온데간데 없고 유목민 할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며 드럼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락스피릿을 뽐내는 가죽자켓과 썬글라스가 양쪽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
우리는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고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물도 전기도 없는 이곳에 음향장비는 또 풀옵션이었다.
‘드럼이랑 앰프는 또 왜 이렇게 큰데..?’
놀라움을 감추고 우리는 빈 침대에 앉았다. 유목민 할아버지의 침대가 곧 관객용 의자였던 것이다. 손님들은 우리 빼고 다 유러피안들이었는데 한국인보다는 유럽인들이 좋아할 곳이긴 하다는 생각이었다.
유러피안들 사이에 유일한 동양인인 우리가 한국인인 걸 알고 계셨는지. 다음 곡으로 강남스타일을 연주해주셨다. 몽골 사막 한 가운데 사는 유목민에게 강남스타일 드럼연주를 듣는 건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유목민 할아버지는 반응 좋은 우리를 보시고 신이 나셔서 수차례의 앵콜곡을 연주해 주셨다. '괜찮으신 걸까?' 생각이 들 때 쯤 손에서 드럼스틱을 떨어트리셨다. 마음은 청춘인데 체력이슈가 있으신 지 땀을 뻘뻘 흘리며 끝까지 연주하셨다. 팬서비스가 확실한 유목민 할아버지의 열정에 보답하기 위해 좁은 게르 안에서 관객들은 국적불문으로 다같이 춤을 췄다. ���
술도 한 방울 안마시고 일어난, 몽골 사막 한가운데서 춤을 추고 있는 일반적이지 않은 이 상황이 재밌고 신났다. 나는 옆 자리에 앉은 프랑스 여자와 손을 잡고 춤을 췄다.
예상하고 기대했던 몽골 전통음악 체험은 아니었지만 깜짝 서프라이즈를 받는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다. 결혼을 앞둔 나에게 친구가 이게 바로 브라이덜 샤워 아니냐고 했다. 샤워시설도 없는 이곳에서 잊지 못할 브라이덜 샤워를 하게 됐다. ‘역시 몽골은 힐링되면서도 짜릿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