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 수 없는 인연의 힘
안 돼! 이건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을 지켜주는 물건이야!"
뮤뮤는 용기를 내어 흑영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흑영은 코웃음을 치듯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하찮은 요정 주제에... 내 힘은 사람들의 슬픔과 이별, 그리고 지독한 후회에서 나온다. 너 따위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야."
흑영이 손을 휘두르자, 검은 그림자가 채찍처럼 날아와 뮤뮤와 몽몽이를 휘감으려 했다. 몽몽이가 재빨리 날아올라 빛을 쏘았지만, 흑영은 그 빛마저 삼켜버리고 더욱 거대해졌다.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다정하게 사진을 찍던 연인들은 갑자기 표정이 매섭게 변하며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걸어두었던 자물쇠들은 녹이 슬어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이 삐걱거리는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 소리에 뮤뮤와 몽몽이도 괴로웠다.
"몽몽아 귀가 너무 아프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거 같아..."
"뮤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아니며 흑영의 수에 우리가 놀아날 거야!"
뮤뮤는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몽몽이에게 얘기했다.
"알았어 몽몽아!"
이때, 몽몽이가 다급하게 외쳤다.
"뮤뮤! 이 녀석은 도깨비들이랑 차원이 달라! 사람들의 마음을 억지로 끊어놓고 있어!"
뮤뮤는 품에 안고 있던 박 씨와 은비녀를 꺼내 붓끝에 댔다. 생명력과 선한 마음의 빛이 흑영을 향해 쏘아졌지만, 흑영은 비웃으며 그저 그림자처럼 흩어졌다 다시 뭉칠 뿐이었다.
"흐흐흐... 소용없다. 나는 너의 힘으로 베어낼 수도, 태울 수도 없는 그림 자니까. 끊어진 인연의 절망만이 나를 살찌우지."
흑영은 다시 한번 검은손을 뻗어 난간에 매달린 매듭 부적을 움켜쥐려 했다.
그 순간, 매듭 부적에서 애처로운 오색 빛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냥 행복한 빛이 아니었다. 다시는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나무꾼이 매일 하늘을 쳐다보며 흘렸던 눈물, 그리고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영원히 닿기를 바랐던 그 간절하고도 슬픈 염원이 담긴 빛이었다.
뮤뮤는 직감했다. 흑영을 물리칠 힘은 바로 저 부적 안에 있었다.
'단순히 묶는 게 아니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진정한 끈이야!'
뮤뮤는 도깨비들과 싸울 때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이어주는 것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뮤뮤는 흑영의 검은손이 닿기 직전, 붓을 뻗어 매듭 부적을 가볍게 터치했다.
순간 허공에는 두 개의 반짝이는 별이 떠올랐다. 하나는 땅에, 하나는 하늘에 있는 별이었다. 뮤뮤는 붓으로 그 두 개의 별을 잇는 선을 힘차게 그렸다.
"이어져라, 마음과 마음!"
붓끝에서 오색 실타래 같은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매듭 부적과 연결되었다. 그러자 매듭 부적에 묶여 있던 오색실이 살아 움직이듯 풀려나더니, 눈부신 빛의 그물이 되어 흑영을 향해 날아갔다. 그물은 흑영을 꽁꽁 묶기 시작했다. 흑영이 사람들의 인연을 끊어내려 할수록, 그리움으로 엮인 빛의 그물은 더욱 단단하게 그를 조였다.
"크아악! 이, 이건... 서로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힘인가! 절망이 아니야!"
흑영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가 뿜어내던 차가운 기운이 오색 빛의 따뜻함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남산타워 난간에 걸린 수만 개의 자물쇠들도 일제히 공명하듯 아름답게 짤랑거리며 빛을 더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약속이 뮤뮤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 같았다.
"크으... 두고 보자... 어둠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
결국 흑영은 빛의 그물을 견디지 못하고 검은 연기가 되어 바닥의 틈새로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흑영이 사라지자, 차가웠던 바람은 멈추고 다시 따스한 밤공기가 남산을 채웠다. 화를 내며 싸우던 사람들의 표정도 다시 밝아졌고, 서로를 미안한 듯 바라보며 손을 맞잡았다.
뮤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난간에 걸린 매듭 부적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낡은 고리에 묶여 있던 오색 매듭은 이제 뮤뮤의 손 안에서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해냈어, 몽몽아! 네 번째 단서야!"
"우와! 뮤뮤, 방금 정말 멋졌어! 끊어지려는 마음을 다시 이어준 거야!"
뮤뮤는 매듭 부적을 복주머니에 소중히 넣었다. 박 씨, 은비녀, 자개거울, 그리고 매듭 부적까지. 이제 남은 건 세 개였다. 하지만 흑영이 남긴 마지막 말, '어둠은 다시 찾아온다"는 경고가 마음에 걸렸다.
"몽몽아, 흑영은 도깨비들보다 훨씬 강했어. 사람들의 마음 틈새를 파고드는 것 같아.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응, 하지만 우리에겐 서로를 믿는 마음이 있잖아! 그리고 이 매듭 부적도 우리를 도와줄 거야!"
뮤뮤는 몽몽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의 야경이 발아래서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뮤뮤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다음 단서를 찾기 위해 낡은 가이드북을 펼쳤다.
[다음 화 예고] 사랑스러운 분홍빛, 다섯 번째 단서 '백도복숭아'를 찾아라! 하지만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깊은 슬픔이 뮤뮤를 기다리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