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거울, 다음 포털의 힌트
"간다!"
뮤뮤는 눈을 크게 뜨고 붓을 앞으로 힘껏 내밀었다. 방어막이 터지듯 해체되면서, 흰빛과 은빛이 합쳐진 맑고 깨끗한 나비 형상의 빛줄기가 대장 도깨비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끄아아아악!"
빛이 대장 도깨비의 몸을 완전히 감싸자, 그의 거대한 몸집도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뿔은 작아지고, 눈빛의 사나움이 사라졌다. 이내 대장 도깨비 역시 작고 허당스러운 도깨비의 모습으로 변해 힘없이 방망이를 떨어뜨렸다. 그는 방망이를 다시 주워 들더니, 이전 부하들처럼 영문도 모른다는 듯 코를 긁적이며 히죽거렸다.
숨 막히는 싸움이 끝났다. 뮤뮤는 계곡물가에 주저앉았다. 자개거울, 박꽃, 은비녀의 빛이 뮤뮤의 손 안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몽몽이는 뮤뮤의 볼을 비비며 말했다.
"뮤뮤, 완벽했어! 세 가지 힘을 하나로 합쳤어! 도깨비들이... 이제 전부 다 순해졌네!"
도깨비들은 이제 뮤뮤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뮤뮤와 비슷한 키에 온몸에서 희미하게 빛이 나고 귀여운 옷을 입은, 도움을 줄 것만 같은 작은 존재들로 보였다. 그들은 작아진 방망이를 쥐고 데구루루 계곡 바닥을 굴러다니거나, 맑은 계곡물에 비친 자신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해했다.
뮤뮤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대장 도깨비에게 다가갔다. 그는 작은 방망이를 이마에 대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너희들, 괜찮아?" 뮤뮤가 물었다.
대장 도깨비는 뮤뮤를 올려다보았다. 사나웠던 눈빛은 사라지고 호기심 가득한 동그란 눈이 되어 있었다.
"응? 내... 내가 왜 여기 있지?" 대장 도깨비가 작고 어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방망이로 반짝이는 것을 모으러 다녔던 것 같은데... 왜 내 방망이가 이렇게... 장난감 같지?"
다른 도깨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뮤뮤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너희는 원래 나쁜 도깨비가 아니었어. 아마 누군가에게 속거나, 나쁜 힘에 영향을 받아서 욕심 많은 도깨비가 된 것 같아." 뮤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희가 가진 건 원래 '욕심'이 아니라 '장난기'와 '즐거움', 그리고 '나눔'이었잖아."
대장 도깨비는 뮤뮤의 말을 듣더니, 눈을 감고 희미하게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으음... 그래. 아주 오래전,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속삭임이 있었어. 그 목소리가 자꾸... 더 많은 것을 가지라고, 더 강해지라고 했지. 그 후에 우리 눈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어."
뮤뮤는 그제야 월영 여신이 경고했던 '포털의 힘을 노리는 그림자들'이 도깨비들을 이용했음을 직감했다. 뮤뮤의 얼굴에 긴장감이 스쳤다.
"맞아! 그 나쁜 목소리는 이제 사라졌어! 너희는 이제 다시 착한 도깨비야. 이제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욕심내지 말고... 좋은 반짝임을 모으러 가야지! 나는 이제 '숲 도깨비 대장'이야. 뮤뮤, 고마워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숲으로 연결되는 엽전을 줄 테니 언제든 와!"
뮤뮤가 엽전을 받으며 말했다.
"고마워. 도움뿐만 아니라 놀러도 올 거니 딱 기다려!"
인사를 주고받고 도깨비들은 숲 속으로 사라졌다.
뮤뮤는 안도했다. 이들은 이제 위협이 아니라, 어쩌면 숲을 지키는 작은 수호자가 될지도 몰랐다. 뮤뮤는 지구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요정일 뿐만 아니라, 7가지 물건의 힘을 하나로 모아 세상을 지키는 특별한 존재로 성장하고 있었다.
[네 번째 단서 찾기]
"자, 몽몽아. 이제 네 번째 단서를 찾아볼까?"
뮤뮤는 자개거울을 복주머니에 소중히 넣고, 낡은 가이드북을 다시 펼쳤다. 몽몽이는 뮤뮤의 어깨 위로 날아올라 가이드북의 다음 페이지를 유심히 살폈다. 낡은 종이 위로 물감이 번지듯 신비롭게 새로운 그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몽몽이가 재빨리 훈민정음 글자를 읽었다.
"뮤뮤! 다음 물건은... 매듭 부적이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매듭 부적이라고 쓰여 있어! '인연과 기억의 끈'이 깃들어 있대!"
매듭 부적이라니! 뮤뮤는 그림을 유심히 살폈다. 가이드북 속 그림은 구름이 자욱한 깊은 숲을 배경으로, 오색실로 엮인 듯한 작은 매듭 부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연과 기억의 끈... 왠지 설화 아주머니가 생각나는데? 아주머니가 우리가 화연과 연결된 '끈'이라고 하셨잖아."
뮤뮤는 문득 자개거울을 꺼내 들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의 힘이 깃든 거울이었다. 뮤뮤는 붓을 자개거울의 '해와 달' 문양에 갖다 대고, 이번에는 거울의 힘을 이용하여 다음 단서의 위치를 파악해 보기로 했다.
붓이 거울 표면을 스치자, 거울은 푸른빛이 강하게 뿜어냈다. 거울 속에는 낯선 자신의 모습 대신,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타워의 난간이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수많은 자물쇠가 난간에 촘촘히 걸려 있었고, 그중 오색실로 엮인 듯한 매듭 부적이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다.
"몽몽아, 봤어? 저기... 저긴 어디지? 높은 탑인데, 자물쇠가 엄청 많아! 설화 아주머니가 서울의 높은 탑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남산타워도 말씀하셨지! 사람들이 인연의 끈을 매달아 놓는 곳이라고!"
뮤뮤는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 앱을 켰다. 이제 뮤뮤는 직접 한글을 읽을 수 있었기에, 몽몽이의 도움 없이도 검색창에 '서울 남산타워'라고 입력했다. 화면에 나타난 타워 사진과 자물쇠 난간이 거울 속 풍경과 똑같았다.
"몽몽아, 왠지 여기가 제일 비슷해 보여! 남산타워의 '사랑의 자물쇠' 난간! 선녀가 잃어버린 인연의 끈이, 이 세상의 모든 인연의 끈이 모이는 곳에 숨겨져 있었나 봐!"
두 사람은 다음 목적지가 '남산타워'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7가지 물건의 힘을 노리는 도깨비들을 조종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뮤뮤는 더욱 긴장했다. 뮤뮤는 계곡 주변의 귀엽게 변한 도깨비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이용한 진짜 적의 존재가 궁금했다. 뮤뮤는 그들을 조용히 뒤로하고, 다음 여정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자, 몽몽아. 용기 내서 다음 끈을 찾으러 가자!"
뮤뮤는 희망찬 목소리로 외쳤다. 네 번째 단서인 매듭 부적을 찾아 떠나는 뮤뮤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