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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Sep 27. 2022

존중받는 느낌

칠레는 친절해요

무알코올 맥주로 나에게 친절하기


타국에서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다. 그래도 살아진다. 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칠레에 도착 후 몇 주 동안은 멘붕의 연속이었다.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모든 게 불편하니 칠레에 마음에 드는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불평만 하고 있는 남편과 나를 보았다. 

"행정 처리는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시간 약속은 왜 안 지켜!"

"택배는 도대체 언제 와?"

"어딜 가도 개 밖에 안 보여!"


행정 처리가 느려 신분증이 없어 불편을 겪을 때, 세탁기를 설치하기로 한 기사가 약속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을 때, 주문한 택배가 한 달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을 때, 쇼핑몰이나 공원 어디든 개가 있거나 길거리에서 개가 싼 배설물을 볼 때마다 우리는 한 마디씩 했다. 


계속 이렇게 투덜거리며 살 수는 없었다. 나는 하루에 하나씩 좋은 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것을 찾은 날도 있고 끝내 못 찾은 날도 있다. 내가 가장 먼저 찾은 칠레의 좋은 점은 친절함이다.


마트에 가서 직원에게 내가 찾는 물건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때로는 그 물건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준다. 마트에 그 물건이 없어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물어보면 스마트폰으로 찾아준 적도 있다. 내가 스페인어가 서툴다는 알게 된 어떤 직원은 직접 번역기로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마트 가는 일이 즐겁다. 


칠레에서 내가 만난 한국인들은 모두 따뜻했다. 연락처를 먼저 알려주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했다. 특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내가 학교 준비물을 구입하면서 어려움을 겪자 구매처까지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지금도 계속 물어보면서 생활하고 있다. 칠레 사람은 아니지만 칠레에서 만났으니 칠레의 좋은 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칠레가 친절하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느꼈을 때는 길을 건널 때이다. 칠레 사람들은 보행자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 운전자는 멀리서부터 사람이 보이면 차를 멈춘다. 운전자는 내가 길을 다 건널 때까지 기다린다.(하지만 신호를 지키지 않는 보행자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내가 혼자 길을 건널 때는 주로 마트에 갈 때이다. 무거운 짐을 끌거나 들고 있을 때가 많은데 그런 배려를 받을 때마다 나는 감동을 받는다.


오늘 마트에 다녀오다가 내가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차를 멈추며 먼저 가라고 웃는 얼굴로 손짓하는 운전자를 보았다. 길을 건너면서 내가 왜 이 친절함이 좋은 지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친절하다는 것은 그 사람을 존중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타인이 나에게 친절을 베풀면 내가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존중받는 느낌은 따뜻함으로 나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내가 매일 마트에 가는지도 모르겠다. 


배려 받고 싶어서. 존중받고 싶어서. 추운 내 마음이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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