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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Oct 28. 2022

아침마다 확인하는 화장실

칠레의 아파트 공사

하루가 다르게 층수가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 공사 현장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 또 다른 아파트 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입주할 때만 해도 내가 사는 2년 안에는 완공이 안될 거라고 생각했다. 바닥 공사가 끝나니 지금은 쑥쑥 층수가 올라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다 지어지고 나면 우리 집에 들어오는 햇빛을 가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공사장이 바로 앞에 있으니 먼지가 많아 문을 열 수가 없어서 여러모로 불편하다. 원래 좋은 뷰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집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이 모두 공사장인 것은 참 아쉽다.


나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청소와 환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 창문 너머로 공사현장을 확인한다. 노동자들이 나와서 일을 시작했는지 확인하면서 청소 속도를 조절한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서부터 나는 밖에서 자신의 몸을 써서 일하는 노동자를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이삿짐을 나르는 사람, 도배를 하는 사람, 에어컨을 설치하는 사람 등 일상에서 만나는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가끔 공사가 있을 때 만나는 노동자들까지. 서로 지나치면서 인사를 나눌 때마다 뭔가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을 더 존중하는 마음으로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빠는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늘 가난했다. 어릴 때 나는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덜 가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엄마랑 덜 싸울 테니까. 부모님 싸움은 늘 돈 때문에 시작되었다. 아빠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는 아빠가 육체노동을 하며 정직하게 돈을 버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인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러웠다. 

'저들도 저렇게 열심히 일해서 자기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겠지. 나도 저런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


아빠가 예순이 넘어서야 경비일을 한다고 했을 때 기뻤다.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힘껏 축하해 드리고 격려해드렸다. 남편한테도 떳떳해진 것 같았다. 나는 아빠를 창피해했었다. 


칠레에 오기 전 한국에서 '신축 아파트 인분 사건' 기사를 접했다. 건설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공사 현장을 보았을 때 나는 가장 먼저 화장실부터 찾아보았다. 화장실이 있었다!


공사장 한가운데 있는 화장실

화장실의 위치도 좋다. 누구나 최단거리로 갈 수 있도록 공사장의 한가운데에 있다. 하루는 크레인에 화장실이 매달려있어서 눈으로 따라가 보았더니 층수가 올라갈 때마다 화장실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매일 화장실의 위치를 확인한다. 화장실이 더 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로 숫자를 세어보기도 한다.


지진이 잦은 나라라서 그런지 한국보다는 공사 속도가 느린 것 같다.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노동자들 모두 안전 장비를 다 하고 있다. 심지어 보호복까지 착용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보인다. 나는 안심한다. 


비도 오지 않고 하루 내내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서 안전 장비를 다 하고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며 나는 그들의 고된 노동에 경의를 표한다. 점심시간에 공원 벤치에 누워 잠을 청하는 유니폼 입은 청소 노동자를 지나칠 때마다 조용히 걸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노동 덕분에 많은 사람이 편하게 누리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부디 나를 포함한 한국의 노동자들이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집 앞 공사장의 화장실도 조금 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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