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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Nov 02. 2022

칠레 발파라이소 여행 중 지질한 나를 만나다.

나에게 너무 인색한 나

찍기만 하면 다 멋있는 곳

칠레는 10월 29일 ~ 11월 1일 총 4일간 연휴였다. 평소에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은 이 날만을 기다리며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계획을 세웠다.(나는 아이들과의 여행을 돌봄 노동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산티아고를 벗어나 발파라이소로 1박 2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산티아고에 살고 있는 지인이 연휴라 교통이 혼잡할 것이라고 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여행 당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발파라이소에 오전 9시에 도착했다.


발파라이소의 아침은 무서웠다. 사람도 차도 별로 없었다. 여기 와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한국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다는 거다. 칠레 사람들은 주말에는 주로 오후에 활동하는 것 같다. 마트, 관광지, 공원도 주말 오전에는 한가하다. 


발파라이소는 유명한 관광지라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사람이 없으니 위험해 보였다. 나랑 남편은 관광객들이 보일 때까지 잠깐 카페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 마침 1시간 동안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던 아이들의 배고프고 다리가 아프다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었다. 


카페에서 나랑 남편은 각각 커피 한 잔씩, 아이들은 같이 먹을 케이크 하나만 주문하려고 했다. 케이크 가격이 거의 음료 두 잔 가격과 맞먹어 손이 후들후들했다. 그때 눈치 없는 둘째가 말했다.


"초코라떼도 하나 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초콜릿 케이크를 먹는데 굳이 초코라떼까지. 나는 점심으로 비싼 식당을 예약했던 터라 카페에서는 돈을 아끼고 싶었다.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남편이 잽싸게 나의 표정을 파악하고 말했다.


"내 커피는 취소하고 그럼 초코라떼를 큰 사이즈로 주문해서 같이 먹자!"


주문이 끝나고 음료를 기다리는데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초코라떼' 한 잔이 뭐라고.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걸 아끼려고 아이에게 인색하게 굴었던 내가 몹시 창피했다. 


요즘 나는 생활비를 아끼려고 노력한다. 칠레에 온 배낭여행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칠레는 물가가 비싸다.'는 말이다. 여기서 살아보니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월세, 학비, 식료품비만 한국의 생활비와 비교가 안되게 비싸다. 남편은 칠레에 살면서 여행을 많이 다니자고 했다. 나는 최대한 생활비를 줄여서 여행에 쓸 비용을 마련하려고 한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도 자꾸 마음속에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엄마가 아이가 먹고 싶다는 초코라떼도 안 사주는 게 말이 되나!' 이런 말이 들렸다. 부끄러웠다.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 안다. 자신을 대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대한다고 하지 않나. 나는 나에게도 이렇게 인색하다. 나는 좋아하는 음료를 앞에 두고도 제일 싼 음료를 고르기도 하고 입고 싶은 옷이 있어도 안 사고 잘 참는다. 내가 원하는 게 있어도 그 마음을 알아주기보다는 나중으로 미루거나 무시한다. 


평소에는 입맛이 까다로운 둘째가 먹고 싶다는 게 있으면 그날 바로 준비해주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원래 여행을 가면 자신에 대해 또는 같이 간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고 하지 않나. 나도 나의 지질한 모습을 만나버렸다. 

박물관 앞에 있는 모아이 석상


나는 아직도 돈을 어디까지 아껴야 될지 어디까지 써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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