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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Nov 07. 2022

점점 안정되어 가는 칠레 생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칠레에 온 지 거의 세 달이 되어가네!"

일요일 아침, 자고 일어난 남편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시간이 빨리 가서 아쉽다는 뜻인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 같다. 8월 19일, 칠레에 왔을 때 추웠다. 칠레는 겨울이었다. 칠레에 살고 있는 지인이 칠레의 겨울은 한국만큼 춥지 않고 8월에는 따뜻해졌다고 했다. 내가 칠레의 겨울을 얕봤다. 얇은 점퍼만 입고 칠레로 왔다. 몹시 추웠다. 몸이 추운 건지 마음이 추운 건지 알 수 없었다.


오늘 저녁, 테라스에서 빨래를 널면서 발바닥이 차갑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처음 살게 되었을 때 테라스 바닥이 차가워서 양말을 신고 빨래를 널었다. 화장실이 붙어 있는 아이들의 방은 화장실 문이 열려 있을 때는 찬기운이 들어와 추웠다. 요즘은 화장실 문을 열어두어도 덥다. 시간이 흘러 계절은 여름으로 가고 있다.


남편 : "한국에 갈 때 준비할 것들이 많겠지?"

나: "여기 올 때랑 같겠지. 자기가 고생이 많겠다. 벌써 돌아갈 생각을 하는 것 보니 우리 많이 적응했나 봐. 처음에는 그때그때 처리할 일이 많아서 그런 생각조차 못했잖아."


남편과 산책하다가 나눈 이야기다. 둘이 웃었다.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칠레에서는 한국에서 내가 하던 일을 남편이 처리하고 있다. 공과금, 아이들 학비, 관리비, 월세 내는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 쇼핑까지. 남편이 혼자 애쓰는 게 미안하고 안쓰러웠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집안일, 전통시장과 마트에서 장 보기, 여행 계획 세우기 등은 내가 한다. 여기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역할도 구분되었다. 어떤 물건은 어디를 가야 살 수 있고 어디가 싼 지도 물어물어 알게 되었다. 씀씀이도 규모가 생겼다. 정해진 월급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잡힌다. 처음에는 돈이 어디로 새어나가는지 몰라서 답답했다.


한국으로 가려면 1년 7개월이 남았다. 나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 여기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반반이다. 돌아가면 복직해야 돼서 싫고 여기는 한국만큼 치안이 좋지 않아서 싫다. 무엇보다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립다. 마른오징어가 먹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칠레로 왔던 여정을 떠올린다. 짐을 싸고 풀고 다시 싸고. 비행기를 두 번 타고. 그럼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좀 줄어든다.


한국에서 안 했던 일을 여기서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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