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남편에게

남편의 생일을 축하하며

당신의 생일에 편지를 쓸 여유를 줘서 고마워. 휴직이 벌써 몇 번째야. 매년 수능 시험 감독비 받아서 생일 선물로 퉁쳤는데. 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당신 생일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어. 의무를 이행하기 바빴어.


당신을 키워낸 어머니가 부러워. 나도 엄마잖아. 자기 같은 아들이 있으면 좋겠어. 우리 아들들은 자기보다 훨씬 이쁘고 멋지지만 앞으로 어떻게 클지 알 수 없으니까. 당신 같은 확실한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가 존경스럽고 괜히 샘이 나. 무슨 복인가.


당신은 현재까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 내가 삐쳐 있으면 먼저 다가와주고 내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주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고마워. 당신한테 많은 것을 의지할 수 있어서 기쁘고 든든해.


당신은 나를 열심히 살게 했어. 당신에게 좋은 아내, 아이들의 좋은 엄마로 인정받고 싶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당신에게 인정받아서 정말 좋았어.


우울증으로 내가 힘들어할 때 당신은 나를 편하게 쉬게 해 줬어. 그동안의 나의 수고를 알아줘서 고마웠어. 가끔 공감 못하는 말을 해서 서운할 때도 있지만 결혼 초보다 좋아진 건 확실해.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신이 우리 아이의 좋은 아빠라는 거야. 내가 자주 하는 말 있잖아. 나 같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고. 내 아이는 당신처럼 사랑받고 자란 티 확 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어. 당신이 아이들과 같이 있어주고 놀아주고 나와 아이들 문제를 같이 고민해줘서 좋아. 가끔은 당신이 내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럼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아. 당신 옆에 있는 내가 더 멋진 사람이면 좋겠어.


어머님은 당신을 낳고 무척 좋았다고 하셨어. 딸 셋을 연달아 낳고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얻었으니 얼마나 기쁘셨겠어. 귀하게 얻은 자식이라 귀하게만 키우셨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상해서 나를 놀라게 한 당신. 자상해서 세심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눈치 없음을 뽐내는 당신. 멋지고 근사한 줄만 알았는데 가끔은 형편없을 때도 있는 당신. 그래서 이제야 내 눈에 있는 콩깍지를 벗겨 낸 당신.


13년의 결혼생활 동안 당신 덕분에 나는 나를 제대로 보고 나를 사랑할 수 있었어. 부모에게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을 당신에게 받고 아무도 믿지 못했던 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어. 당신은 나에게 사람을 믿어도 된다는 확신을 주었어.


내가 언젠가 당신에게 말했지. 당신은 '신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무기력하게 슬퍼하고만 있었을 거야. 지금도 가끔은 무기력하고 슬플 때가 있지만 당신과 함께 있는 동안은 마음이 불행하지 않아. 당신의 밝음을 오래 쬐다 보니 내 안의 어둠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2022.11.15.(화).JPG 작지만 확실히 비싼 남편 생일 케이크(칠레 물가는 너무 비싸요)


나는 이제 '행복'이라는 단어를 내 인생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되었어. 행복은 한 번도 내 인생에 편입된 적이 없는 단어였어.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 당신이 옆에 있으면 좋겠어.


지금 내 앞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척하면서 바나나를 열심히 먹고 있는 당신이 사랑스러워. 당신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이 눈부시지 않았지만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나를 사랑하고 당신과 아이들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되었어.


우리 같이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살아보자. 가끔 서로의 추악한 모습을 만나더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괜찮은 엄마, 아빠가 되어 두 아들을 온전하게 키워보자. 그렇게 같이 곱게 늙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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