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나를 키운다.

꿈보다 해몽

KakaoTalk_20221017_075844385_03.jpg 새로운 것에 겁 없이 도전하는 첫째


아이들이 아프다. 둘째는 지난 금요일에 학교에서 집에 왔을 때부터 기운이 없었다. 고열이 이틀 동안 계속되더니 괜찮아졌다. 이어서 첫째가 열이 났다. 늘 이런 식이다. 한 아이가 아프면 연달아서. 남편까지 같이 아픈 경우도 많았다.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일이 많아지고 신경이 쓰인다. 안 그래도 불안이 높은데 걱정까지 추가되니 더 예민해진다. 아이들이 아프면 남편과 다투기도 한다. 남편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서운하고 화가 난다.


밤에 고열로 고생하는 둘째와 같이 잠을 잤다. 남편은 면역력이 약해서 아픈 아이를 가까이서 돌보는 일은 내가 하는 게 낫다. 열이 나니 춥다고 하는 둘째를 달래느라 두 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아프면 엄살떤다고 속으로 둘째를 원망했다.


밤에 잠을 못 자서 피곤했다. 아이들에게 낮잠을 자게 하고 나도 잤다. 꿈을 꿨다.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던 나는 버스가 방향을 바꿀 때 휘청거렸다. 넘어지려는 나를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잡아주었다.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더 편하게 기댔다. 든든했다. 나는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서둘러서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원래 내리려고 했던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거기에는 익숙한 두 개의 가방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던 때 가지고 다녔던 가방이었다. 두 아들이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버스에 두고 혼자 내렸던 거다. 첫째는 울고 있었다. 똑똑하고 책임감이 강한 첫째는 나를 찾느라 애쓴 것 같았다.


꿈이 생생했다. 꿈에서 아이들을 만나서 다행이었다. 칠레에서 나는 운전을 시작하지 못했다. 금요일에만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온다. 그 상황인 것 같다.


버스에서 나를 넘어지지 않게 잡아준 사람이 아이들 같다. 아이들이 나를 든든하게 잡아주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자 괜히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아이들 때문에 내가 힘들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다. 도시락을 싸고 끼니를 챙기고 아프면 간호하고.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몸과 마음이 힘들 때마다 아이들 때문이라고 속으로 탓했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까. 혼자 살았으면 죽을 결심을 몇 번이나 하고 실행에 옮겼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아이들이 항상 걸렸다. '내가 없으면 저 이쁜 아이들은 누가 기르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다.


아이들 때문에 밥을 해서 나도 먹고 아이들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칠레에까지 왔다. 아이들을 잘 기르고 싶어 상담도 공부하고 책도 더 읽었다. 나 같은 사람으로 살게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면서 나도 좋은 사람은 못 되어도 괜찮은 사람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아이로 인해 내가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아이를 보는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내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할 때는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같이 크고 있다는 그리고 아이가 나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아이의 존재만으로 감사하게 된다.


(오늘 밤 첫째가 아프다고 징징대도 화내지 않고 잘 돌봐줘야겠다.)


20221114.jpg 마냥 귀엽기만 한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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