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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Nov 04. 2022

칠레에서 뭐하고 살아야 될까?

그냥, 오늘을 살자!

며칠 동안 속이 불편했다. 음식을 적게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았다. 나는 명상을 배우면서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속에 무엇이 해결되지 못해 답답한 건지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 아침도 평소와 같았다. 바쁘게 아이들의 점심 도시락을 싸고 아침을 챙겼다. 식사 준비로 나온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세탁기로 빨래를 한 후 널었다. 쉬면서 유튜브를 보았다. 충분히 쉬었다. 


노트북을 켜고 '스페인어 강의'를 들었다. 여행으로 강의를 들은 지 오래되었고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언어 습득이다. 아침에 미리 남편과 먹을 점심을 준비해놓았기 때문에 오전이 여유로웠다. 청소도 오후에 남편의 머리를 자른 후에 할 예정이라 미뤄두었다. 


남편에게 갑자기 점심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오전 시간이 더 여유로워졌다. 스페인어 강의를 오래 들을 수 있었다. 매일 해야 된다고 다짐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명상도 했다. 점심 약속 후 돌아온 남편의 머리를 잘라주었고 남편이 내 머리도 잘라주었다. 자른 머리만큼 마음도 가벼워졌다. 청소를 마무리했다. 


문득 생각났다. 내 위가 편안해지고 있다는 것을. 저녁을 충분히 먹어도 될 만큼.


칠레에 와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계속 고민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엔 뭔가 좋은 결과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이 불편했다. 돈을 벌고 있지 않아서 내가 쓸모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가끔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러 여기에 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편에게 마음 한 구석이 늘 미안하다. 이유를 모르겠다. 남편이 집안일을 돕는(?) 것도, 나랑 시장에 같이 가는 것도, 시장에서 무거운 짐을 들게 하는 것까지 속으로 미안해한다. 칠레 입국 준비부터 적응까지 혼자서 애쓴 남편을 안쓰러워해야 될지 미안해하는 것이 맞는 건지 잘 몰라서 혼란스러웠다. 교사인 친구들의 카톡 사진에서 보이는 학교 생활을 확인할 때면 나만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오늘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명상을 하고 머리도 자르며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미래를 걱정하지 말자. 그냥, 오늘 하루를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면 그 하루들이 모여 미래에는 뭐든 되어 있겠지. 뭐가 안 되어 있으면 또 어때. 애쓰면서 살지 않으려고 병가까지 내면서 학교를 쉬었는데. 


지금 꼭 필요한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하루에 한 번씩 명상을 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오늘 나에게 필요한 일을 하자고 다짐했다.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현재 내가 해야 되는 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은 아이들과 남편을 위한 일이 아니라 부모로서 아내로서 내가 감당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자. 내가 뒤쳐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자.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다고.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일이라고. 나답게 살기 위한 과정이라고. 


처음 도전한 깍두기 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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