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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Oct 27. 2022

다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설레게 하는 칠레 산티아고 베가 시장

장을 보고 난 후 남편과 라떼 한 잔^^


일주일 중 가장 설레는 날이 있다. 시장 가는 날이다. 처음에는 시장 구경이 하고 싶었다. 칠레에서 유명하다니까 한 번 가봤다. 여기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했다. 칠레에서의 본격적인 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의무적이고 필사적으로 시장에 간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칠레(CLP) 1페소는 한국의 1.5원. 환율이 매일 달라지지만 대충 1.5배로 계산한다. 칠레의 물가는 계속 상승 중이다. 칠레의 물건 가격이 비싸서 아직도 놀라고 있다. 칠레는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공산품은 더 비싸다. 한국의 다이소가 무척 그립다. 어제도 마트에 가서 물티슈 80매 1통을 사고 3,000 페소(4,500원)를 썼다. 돈이 아까웠다. 물티슈도 빨아서 쓰고 싶다.


생활비 중 식료품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나는 베가 시장에 간다. 어떤 과일은 마트 가격보다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여기에 와서 그 맛을 알게 된 아보카도가 그렇다. 베가 시장은 한인마트가 있는 곳(빠뜨로나또)과 가까워 라면도 살 겸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간다. 


시장에 가기 전 날은 잠을 설친다. 새벽에도 한 번씩 잠에서 깨어난다. 일찍 일어나서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집안 청소를 한 후 편한 마음으로 시장에 가고 싶어서 그렇다. 오전 9시가 되면 시장으로 출발한다. 차가 생기기 전에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마음은 편했지만 짐이 무거워서 힘들었다. 지금은 차가 있어서 무거운 식재료를 많이 사도 된다. 특히 한인마트에서 한국에서 먹던 쌀과 비슷한 쌀을 차에 실어 가져올 수 있어서 좋다. 여기 쌀은 찰기가 없어서 먹기 힘들다. 차에서 남편이 한국 가요라도 틀어주면 기분이 한층 좋아진다. 


처음에는 과일 가게든 채소 가게든 자주 가는 단골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는 한 번 갔던 가게에서 샀던 물건을 다음 주에 가서 또 사면 이상하게 질이 떨어진다. 그때그때 물건 상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좋은 물건을 찾아서 사게 되었다. 그래서 장을 보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다.(주차비가 늘어났다.ㅠㅠ)


시장에 가는 또 다른 즐거움은 라떼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그나마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곳이 시장이다. 커피 원산지가 가까운 나라지만 커피 가격은 비싸다. 


갈 때마다 달라지는 라떼 아트(2,600페소 = 4,900원)


시장을 다 본 후 남편과 마시는 커피는 정말 최고다. 집 근처 카페에서는 팁까지 포함하면 절대로 그 가격에 마실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일주일을 참고 또 참았다가 시장에서 커피를 마신다. 남미의 커피는 산미가 풍부해서 신맛이 많이 난다. 커피의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우유를 듬뿍 넣은 라떼만 마실 수 있다. 라떼까지 다 마시고 나면 잠시 행복해진다.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내가 왜 이 시장을 좋아하는지 이제 알겠어! 여기 오면 몸에 생기가 돌아."


남편은 활기가 넘치는 곳을 찾고 싶으면 전통시장에 가면 된다고 했다. 여기서 나는 거의 집에서만 지낸다.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무엇을 배우러 다니기도 힘들다. 내내 집에만 있다가 짧은 대화라도 나눌 수 있는 곳이 시장이었다. 사람들과 흥정하면서 이야기하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몸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나도 다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만 있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나에게 자꾸 이러고 있지 말고 뭐든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채근한다. 그게 괴로웠다. 내 행동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일인지, 도움이 되는 일인지 점검하는 것이 힘들었다. 


시장에서는 나답게 있을 수 있었다. 언어가 서툴러도 상인들은 기다려준다. 나는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 정신 없이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걱정이나 후회가 들어올 틈이 없다. 지금, 현재에 집중하다 보니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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