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가 아팠다. 내가 아팠는데 드디어라니. 코로나19와 독감이 우리 집을 휩쓸었을 때도 끄떡없던 나였는데. 엄마인 나는 그동안 아플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피곤하고 몸에 기운이 없었다. 겨우 해야 할 일들만 처리하고 있었다. 아침에 둘째 때문에 많이 속상했다. 저녁을 먹은 직후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괜찮아져서 잤는데 갑자기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왔다. 자는 남편을 깨워 집에서 가까운 대형병원의 응급실로 갔다. 낮에 아이들만 집에 두고 병원에 가는 것보다 아이들이 자고 있을 때 병원에 다녀오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칠레는 한국과 병원 시스템이 많이 달랐다. 응급실에 갔는데 환자 진료보다 접수가 우선이었다. 접수하고 한참을 기다리니 병실로 안내해주었다. 응급실인데 1인실을 주었다. 30분을 넘게 기다리자 의사가 왔다. 내가 야간 진료를 받으러 온 것인지 응급실에 온 것인지 헷갈렸다. 성질 급한 남편은 의사는 언제 오냐며 옆에서 계속 씩씩댔다.
과잉 진료에 가까운 피검사, 초음파 검사까지 하고 4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집에 올 수 있었다. 병명도 모른다. 진료비가 70만 원 정도가 나온 것을 확인하고 놀래서 다시 응급실로 들어갈 뻔했다. 약값은 15만 원. 무슨 좋은 약이길래 이렇게 비싼지.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겠다.
한국에서 학교에 근무할 때도 12월에 자주 아팠다. 기말고사와 학교의 중요한 업무가 마무리되는 시점. 곧 방학이 시작된다는 기대감과 함께 내 몸은 긴장을 풀었다. 추워서 감기에 걸린 줄 알았는데 칠레의 12월, 이렇게 더운데도 몸이 아픈 걸 보니 내 몸은 마음과 긴밀히 협조하여 움직이는 게 확실했다.
칠레에서는 아이들의 점심 도시락을 싸야 했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아이들의 도시락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사고 관리하는 일이 꽤 신경 쓰였다. 아침 식사도 같이 준비해야 해서 아침 시간이 분주했다. 요즘 '이것도 곧 끝나겠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아픈 내 모습을 본 남편은 고맙게도 집안일을 살뜰히 챙겼다. 병원에서 진정제와 수액을 맞고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진 내가 "내 몸은 역시 돈을 들여야 되네." 하고 말하니 "쇼핑 잘 안 하는 사람이 의료 쇼핑은 좋아하네!"라고 농담했다.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 도움, 손길이 내 몸을 통과하고 있다. 내 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제는 내가 내 몸을 그렇게 대해 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