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리적 독립 중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이 어려운 나

응급실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아프다.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온몸은 두들겨 맞은 것 같다. 내 병은 늘 마음에서 시작된다. 다행히 남편이 옆에서 잘 챙겨주어 서러울 틈은 없다. 남편에게 고맙다.


나는 유독 둘째를 예뻐했다. 첫째 육아와 다르게 둘째 육아는 덜 불안한 마음으로 했다. 둘째의 외모는 내가 보기엔(?) 너무 이쁘다. 4.1kg 우량아로 태어나 백일이 되어서는 비만이라는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꿋꿋하게 3살까지 둘째를 안고 업고 다녔다. 그랬던 둘째에게 서운한 말을 들었다. 마음이 무너졌다.


언니에게 엄마의 소식을 들었다. 안 물어봤어야 했는데. 부모님은 오빠에게 의지하며 잘 지내고 있었다. '잘 지내면 다행이지' 하면서도 오빠한테 의지하며 지낼 수 있었으면서 그동안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 부모님에게 화가 났다.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이 어렵다. 어디까지 해줘야 될지, 어떤 것을 하면 안 되는지. 서로가 서로에서 선을 넘지 않고 잘 지내는 방법을 모르겠다. 잘 지냈던 사람이 이내 싫어지고. 관계가 늘 이런 식이다.


'남들처럼 둥글게 둥글게 살 수는 없을까!'


직장에서 또는 다른 경로로 만났던 사람에게 실망할 때마다 마음이 몹시 힘들어진다. 상대방은 신경도 쓰지 않을 일을 나는 곱씹으면서 '이게 어떤 의미일까?'를 고민한다. 고민 끝에 사람들을 되도록 만나지 않기로 했다. 가끔 외롭다.


내가 아니면 부모님은 잘 살지 못할 줄 알았다. 둘째는 내가 많이 사랑을 주었으니 나를 제일 많이 사랑해 줄 거라고 믿었다. 둘 다 아니었다. 부모님은 내가 없어도 잘 살고 있고 둘째는 자기와 잘 놀아주는 아빠를 잔소리 많은 나보다 더 좋아한다. 내가 주는 사랑과 나에게 오는 사랑은 비례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 쓰라린 아픔을 겪는 게 힘들다. 부모 자식 간에도 이런데 남들과의 관계도 역시 주고받는 것이 비례하지 않겠지. 비례할 것이라고 아니 비례해야 한다고 믿었던 내 잘못이다.


엄마와 아빠를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야겠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다. 둘째에게 더 기대하지 않아야겠다.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내가 부모를 미워했던 것을 절대로 대물림시키지 않아야겠다. 끝까지 둘째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 사랑에 굶주려서 힘든 나로 만들지 않아야겠다.


20221206_0.jpg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에게 손 놓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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