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따뜻하게 봐주면 좋겠어.

나는 위로가 필요해

감기를 독하게 앓았다. 심리적 독립한다고 어쩌고 할 때부터 이상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약을 먹어도 감기가 낫질 않았다. 8일이나 끙끙 앓으면서 누워만 있었다. 미련하다. 병원이 코 앞인데. 내 의지로 감기를 이겨보겠다는 몹쓸 자의식이 일을 이렇게 만들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서야 나는 일어났다.


지금쯤 나는 페루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를 보고 있어야 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바로 페루로 떠나기로 했다. 비행기, 숙소, 투어 등 모든 것을 예약해놓았다. 여행 가기 하루 전까지 몸이 좋아지지 않자 나는 항복했다. 비행기표는 날아갔고 숙소와 투어는 위약금을 냈다. 써보지도 못한 아까운 돈. 남편에게 미안했다. 남편은 애써 아무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미워졌다. 내 몸이, 내 존재가 원망스러웠다.


아프고 나니 몸에 기운이 없다. 왕성했던 식욕도 사그라들었다. 위경련으로 응급실 사태를 초래한 후 좋아하던 커피도 끊었다. 다시 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또 나 때문에 못 가면 어쩌나 불안하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사라졌다. 오늘은 하루 내내 한국으로 돌아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꽤 구체적으로 했다.


소파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던 남편이 내게 말했다.

"여기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공부만 좀 하면서 편하게 보내면 되는데. 왜 나는 자꾸 한국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한국에 가면 일도 하고 바쁘게 살 건데. 이 시간을 감사하게 행복하게 보내려고"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남편은 긍정의 아저씨다. 가끔 근거 없이 무턱대고 긍정할 때도 있지만 오늘 한 말에는 나도 동의했다. 근데 나는 뭐가 불편한 걸까. 남편의 생각에 동의는 하지만 이 시간이 막 감사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이 정도 불편함도 못 견디느냐며 나를 나무라고 있다. 나는 나를 따뜻하게 봐줄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지금 위로받고 싶다. 낯선 곳에서 힘들지 않냐고, 한국 음식 못 먹어서 그립지 않냐고, 한국에서처럼 낮이든 밤이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지 않냐고, 친정 부모의 도움도 없이 외롭지 않냐고, 빠듯한 돈으로 살림하기 어렵지 않냐고, 방학이라 아이들과 집에서 하루 내내 지내는 게 정신없지 않냐고......


무조건 긍정하기 싫다. 아무 근거도 없이 나는 이 상황을 긍정하고 싶지 않다. 이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나에게 지금 위로와 따뜻함이 필요하다.


2022.12.12.JPG 페루에 가면 먹으려고 했는데...ㅠㅠ


keyword
이전 20화나는 심리적 독립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