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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솔트 Oct 14. 2023

열정과 성과

하지만 회사생활에서 열정은 욕을 먹나니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장애인세계에서는 크리스마스와 같은 날이 있다.

바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다.


1972년부터 민간단체에서 개최해 오던 4월 20일 ‘재활의 날’을 이어, 1981년부터 나라에서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해 왔다.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전 재활의 날)로 정한 것은, 4월이 1년 중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어서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부각할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둔 것이며, 20일은 다수의 기념일과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1981년 UN총회는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주제로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하고 세계 모든 국가에서 기념사업을 추진하도록 권장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장애인의 해’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81년 4월 20일 ‘제1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기념식은 장애인 인권선언문 낭독, 장애인 복지유공자 포상, 장애인 극복상 시상, 장애인 수기 발표, 축하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또한 이 날을 전후한 약 일주일간을 ‘장애인 주간’으로 정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벌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애인의 날 [障碍人─]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우리 시에서도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였다.

우리 센터에서는 장애인의 날 행사 중 마라톤과 장기자랑 대회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마라톤을 뛸 기장이 길지 않았고 마라톤을 뛸 때 1인 1조로 자원봉사자들이 붙어 도움을 주기로 하여 많은 장애인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하였다.


그리고 센터에서 약 1년 전부터 열심히 배워오고 연습해 온 난타공연을 장기자랑대회에 나가기로 하였다.

우리 반을 필두로 난타공연에 나가는 친구들을 따로 연습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대열을 맞추는 법, 떨지 않고 앞을 바라보고 연습한 대로 공연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량이 필요했다.

센터를 대표하여 좁은 공간에서도 열심히 연습하는 공연팀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습을 계속해 나갔다.



 열정만수르, 첫 성과 난타 1등!!



4월 19일 마지막 연습을 하며 센터 친구들도 나도 기대감과 걱정이 함께 밀려왔다.

내일 늦지 않도록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하고 아이들이 잘 해내길 기도하였다.

코로나가 끝나고 첫 장애인의 날 행사라 모두 기대와 분주함이 뒤섞인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좀 더 멋있게 보이도록 의상도 대여하였다.

의상을 입은 아이들을 보니 더욱 마음이 뭉클하였다.


시에서 가장 큰 체육센터에서 공연을 해야 하니 아이들이 긴장한 만큼 나도 긴장이 되었다.

지도 선생님과 많은 시간 합을 맞춘 터라 아이들은 무대에 올라가 전 리허설에서도 실수 없이 잘해주었다.

물론 우리 반 친구 중 한 명은 너무 불안하다면서 갑자기 화장실에서 울기도 하였지만 다시 잘 달래여서 무대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기나긴 대기시간을 거쳐 드디어 우리 센터친구들이 무대에 섰다.

인솔을 하는 나는 학부모 마인드로 열심히 사진과 동영상을 남겼다.

사실 공연 내내 거의 유치원재롱잔치 보는 부모의 심정이었다.

모두 한마음이 되어 어떠한 실수도 없이 정말 어떤 팀보다도 멋있게 공연을 마쳤다.

공연을 잘 마친 친구들 얼굴에는 꽃처럼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나 또한 만개한 꽃을 보듯 흐뭇하였다.


지도선생님과 아이들이 너무 잘해줘었기에 우린 내심 계속 1등을 기대하였다.

"지도선생님 우리 아이들이 제일 잘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1등 할 것 같은데?"

"이러다 진짜 1등 하는 거 아니야?"

심사가 다 끝났다는 방송이 나왔고 호명하는 팀은 대기실로 오라는 방송이 나왔다.

방송에서 우리 센터의 이름이 나왔을 때는 거의 일등이 된 것처럼 환호성을 쳤다.

대기실에서는 아직 등수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드디어 대상 발표!!!

우리 센터의 이름이 발표되었고 아이들과 나는 얼싸안고 기뻐하였다.

센터장님도 아이들에게 모두 고생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거의 한 달간 지도선생님이 없을 때에도 친구들을 연습시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선생님 진짜 고생했어요. 선생님이 이렇게 열심히 아이들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거야"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의욕적이지 않는 아이들을 끌어올리느라 마음으로 굉장히 애쓴 부분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였다.

아이들도 이번기회에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굉장히 행복하고 감동적인 하루가 내일은 모른 채 지나가고 있었다.



 사회생활 쪼렙은 마냥 열심히 하면 좋은 줄 알았지!!


"선생님 우리 친구들 진짜 어제 잘했죠!!"

어제의 감동이 지워지지 않은 나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친구들 칭찬을 했다.

당연히 나는 센터에서 상도 받고 좋은 일이고 하니 서로 덕담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말을 걸었다.

"아 친구들이 잘했죠, 선생님이 상 받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신나셨어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일처럼 좋으니까 신났죠! 그게 이상한가요?"

"아... 네..."

이게 무슨 말일까? 

아 너의 행복은 나의 불행인가?


누군가 아이들을 이끌어서 좋은 성과를 냈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면 기쁜 일 아닌가?

정말 사람들이 못됐다고 생각이 들었다.


너무 속상했던 나는 사회생활 오래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였다.


"아니 이렇게 빈정댈 일이야!!"

나는 속이 상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러게 너의 마음은 100% 이해가 된다!!"

친구는 한 템포 쉬어가듯 말을 했다.


"근데 그 사람들은 그저 하루 하루 해야 할 일을 하는 회사원 마인드로 일을 하는데 네가 자꾸 부모마인드로 열정을 뿌리고 다니니까 아마 부담스럽고 비교되니 싫어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되네"


친구의 다음 말은 내가 정말 사회생활 쪼렙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적당히 동료들만큼만 일하고 동료들과 잘 지낼 것인지, 열정만수르로 일하고 사장님과 친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볼 땐 넌 후자 쪽인 것 같지만 말이야"

 

이 일로 나는 이 몇 안 되는 조그마한 회사에서 센터장님 라인을 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라인을 탄 거 제대로 타기로 말이다.



사회생활 만렙 신랑님 존경합니다.



"오늘 별일 없었어?"

그저 인사처럼 그 말의 뜻을 요즘 이렇게 느낀다.

"별일 없도록 많이 참고 견디고 오늘을 보내고 왔어? 참 고생했네"

깊은 통찰력이라고 스스로 깨닫고 말하는 나를 보는 신랑님은 요즘 나와 말이 잘 통한다고 좋아한다.

예전에는 그저 "육아만이 삶의 고뇌의 최고정점이니 너의 고생은 나와 비교도 안돼"가 전제가 되는 대화였다. 물론 고생 난이도는 육아가 정점인 것은 아직도 틀림이 없다.

하지만 육아의 과정을 갓 졸업한 시점에서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하니 그동안 말없이 우리 가정을 위해 달려와준 신랑이 대단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였다.

나는 매일매일 징징거리며 "오늘은 그만두네", "내일을 다닐만하네" 하며 일희일비하는데 말이다.

신랑님은 진정한 존경스러운 사회생활 만렙자이다.





이때부터였다. 

직장 내 따돌림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에 내가 있으면 다른 선생님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를 뺀 단독방을 만들어 키득키득 웃어댔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한 명을 따돌림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없었다.

장애인을 교육하고 돌본다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 꼭 유치한 중학생들 하는 학폭짓거리와 다름이 없음에 놀랍고 기가 찼다. 


사실 20대에 이런 일을 겪었다면 그만두거나 울거나 속상해서 밤에 잠을 설쳤으리라.

하지만 나는 40대가 되어가면서 마음이 많이 컸고 단단해졌나 보다.

슬프지도 속상하지도 않았다.

옳지 않은 행동을 하면서 그것이 나쁜지도 모르는 인간을 상대도 하기 싫었다.

어차피 생계형이 아니기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적당히 일하는 건 내가 아니기에 모든 일에 열정을 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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