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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솔트 Oct 22. 2023

80%의 보람과 기쁨

발달장애인 영상공모전 출품과정

시키는 일만 하지 않겠다


80%의 발달장애인들은 앞서 글에서 말한 도전적 행위가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 반 같은 경우 21,20,23살 나이도 매우 어렸다.

같은 발달장애인이라도 인지의 정도가 다른데 우리 반의 경우 경계성 지능장애정도의 인지와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 이용인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단체로 하는 획일적 수업에 지루함을 많이 느끼고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수업을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센터장님이 먼저 유튜브영상을 찍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하셨다.

코로나기간에 영상편집을 연습을 해보기도 하고 젊었을 때 시나리오도 써본 적이 있어서 제안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을 했다. 그리고 어떤 콘텐츠를 찍으면 좋을지 같이 구상하던 중 센터장님은  시를 홍보하는 홍보영상을 찍어보길 권유하였다.


그리던 중 나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본 도 영상공모전 광고를 보고 공모전에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장애인이지만 일반부에 출품해 보는 것 자체가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그렇게 해서 센터장님이 시키는 시 홍보영상과 시키지도 않은 도청 영상공모전을 같이 진행하게 되었다.

물론 시키지도 않은 일은 센터장님의 허락 후에 진행하였다.



 시나리오부터 다르다



우리 반 이용인들은 딱 요즘 20대 MZ녀이다.

발달장애인 특성상 호흡이 긴 장면이나 긴 대사를 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요즘 뜨고 있는 숏츠영상공모전이 딱이었다.

MZ로서 톡톡 튀는 매력과 짧고 굵게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였다.


시나리오를 이용인들과 같이 읽어가며 어려운 어휘나 발음이 어려운 단어는 과감히 쉬운 단어로 대체하였다.

오랜만에 기획의도를 갖고 시나리오를 쓰니 신나게 써내려 갔다.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 평소 맘고생하며 깊게 생각했던 이야기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글로 가공하는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였다.


6년간 맘고생 했던 시간들이 발달장애인의 대한 가치관이 되었다.

그 가치관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시 좋은 곳으로 흘러간다는 것도 뜻깊었다.

이용인들이 나의 시나리오를 읽으며 서로의 발음을 들어보며 교정해 보는 시간도 큰 교육이 되었다.


첫 시나리오 작업 후 영상을 찍을 땐 더욱 짧게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짧게 쓰고 쉽게 썼지만 현장에서는 그것 또한 이용인에게는 힘든 점이 있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쑥 써내려 간 뒤 한 문장을 세 명이 나누어 대사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그리고 문맥에 맞게 상황에 맞게 직관적으로 바꾸었다.

이때  바뀐 대사를 시나리오에 써두어 영상편집 시 참고하였다.



인솔과 연기지도



발달장애인 이용인을 인솔하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발달장애인에게 시나리오의 대사를 센터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가서 맞게 그 상황에 맞는 톤으로 연기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솔하며 갈 때도 2시간이 지나면 꼭 1시간씩 쉬어주어야 했다.

집중력은 처음 2시간이 제일 좋은데 쉬는 시간을 주어도 점점 이용인들은 흥미를 잃고 힘들어하는데 그 감정을 잘 다독여서 마지막 대사까지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럴 땐 맛있는 것도 사주면서 들숨에 칭찬을 날숨에 단호함을 보이며 그럼에도 '네가 최고야' 하며 우쭈쭈권법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이 우쭈쭈권법은 삼 형제를 키우면서 고난과 역경으로 빚져낸 기술이다.

삼 형제를 키우며 호되게 배운 양육권법이 여기서 빛을 보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남자아이 3명을 키우다 보니 외부활동이 많았다.

이제는 중학생이 되어 잘 따라나서지도 않는 아이들이지만 어릴 땐 눈뜨고 밥 먹으면 무조건 나가서 저녁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방학 때는 제주도 한 달 살기도 해 봤으니 외부활동에서 아이들의 돌발상황이나 다툼이나 징징대는 것에 단련이 되었다.


발달장애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상촬영을 하던 우리 반 이용인들은 나이가 어려서일까?

어릴 적 우리 삼 형제의 초등학교 때를 떠올리게 하였다.

그래서 인솔하는 과정에서 아이들 너무 심하게 징징대면 단호하게 끌고 가기도 했다.

그리고 잘했을 때는 입에 거품을 물고 칭찬해 주었다.

이용인들은 처음보다 점점 자신감을 가지고 연기를 하였다.


마지막 영상은 5분 30초짜리 다큐영상을 촬영하였다.

편집본 5분 이상의 영상을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2일 동안 촬영을 해야 했다.  

이용인들은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촬영에 임했다.

심지어는 촬영하는 나도 촬영이 힘들어 지칠 때는 "선생님 힘내세요!! 우리도 열심히 할게요!!" 하며 나를 다독여 주었다. 영상촬영을 같이 하면서 서로 지칠 때 파이팅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그럴 때면 마법소환술을 쓰듯, 이용인들과 동그랗게 둘러서서 손을 모으고 하늘 향해 그렇게도 많은 파이팅을 외쳤다.






20대,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기 전까지 여의도까지 가서 작가협회에서 시나리오쓰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작가가 되기 전에 찾아왔다.


30대는, 꼬맹이 삼 형제를 키우며 고난의 광야길을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육아의 십자가길을 걸었다.

밀알이 썩어지듯 나는 썩어 없어지는듯한 아픔을 겪으며 경단녀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육아도 경력이라고 생각한다. 

14년 경력의 육아가 마무리되면서 주변 초보맘에게는 웬만한 육아서적보다 더 나은 육아멘토링을 해줄 수 있다.  아는 지인은 아이가 아플 때 심지어 삐뽀삐뽀 119 책 보다 나에게 먼저 전화해서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삼 형제를 키우며 얼마나 많은 병원과 응급실 수술실을 갔던가...


40대, 육아가 마무리되었다.

나를 위해 성장할 수 있는 시간들이 허락되었다.

그 시간들은 사회복지사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나를 인도했다.

사회복지사지만 장애인 제공인력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나는 경계성발달장애인과 함께 영상촬영반을 만들어 유튜브도 올리고 영상공모전에도 출품하고 있다.

지나간 나의 시간들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지금 여기에서 발현되고 있다.

영상촬영을 통해 조금 더 성장하는 미래를 함께 그릴 발달장애인들과 함께하고 있다.

20%의 도적적 행위를 이용인들을 감내하며 80%의 보람과 기쁨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우리 반이용인이 있기에 나는 여기에서 나의 쓰임을 다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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