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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갑부훈 Sep 23. 2021

평범한 것은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착각

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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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꿈은 위인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때문에 나는 무리에서 구별되는 것을 즐겼고, 늘 특별한 상태로 존재하려 노력했다. 독특하게 옷을 입고, 친구들이 밤늦게까지 책상 앞에서 공부할 시간에 나는 클럽에서 춤추고, 테킬라를 입 안에 털어 넣어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첫사랑과 결혼하기 위해 스무 살에 공무원 시험을 봤고, 사랑에 실패하면서 목적 없는 대학 생활도 일찍 그만뒀다.

나의 허영, 화이트칼라 명함이 갖고 싶어 잡지사에서 근무했고, 밤에는 클럽 바텐더로 일했다. 이른 나이 영어 교육 사업을 하여 큰돈을 만졌고, 유흥에 쉽게 돈을 썼다. 하지만, 벌거벗은 임금 같은 내 도시에서 삶은 공허했고, 친구들이 모두 서울로 향할 때 나는 섬으로 들어왔다.


무리와 다른 나의 삶. 나는 나를 특별한 사람이라 여겼기에 남들이 쉬이 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을 나만이 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매우 불편해졌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내의 잔소리에 굳은살을 키우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반려동물의 똥을 치우고, 출퇴근이 있는 직장생활을 하고, 평일과 주말을 명확히 구분해 주말을 즐기고, 늙은 부모를 부양하고,

내 주변 모두가 다 해내는, 또 잘 해내려 노력하는 이런 평범한 일을 나는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해낼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은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쉬이 해내는 평범한 것을 외려 못 해내기 때문이란 걸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나는 부득불 특별하고, 화려해 보이는 것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것은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


이것은 아주 큰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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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이라는 절망과 싸우고, 가난과 친구 하며, 집착을 몰입으로 전환시킨 사진작가 김영갑. 그의 특별한 삶이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 앞에서 나는 특별함으로 끝없이 기우는 예술가의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남긴 긴 유서 같은 책에서 평범한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 자가 결국 최후에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았다.

 

내가 좇고 있는 위대함은 그와 같이 결계 쳐진 비장함이었던가.

 

나는 특별함을 향해 달려가던 외골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 저기 아득히 보이는 평범함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가 갖고자 했던 특별함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진작가 김영갑_ 김영갑은 제주의 평안한 수평 구도에 매혹되어 섬에 들어왔다. 이후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제주도의 들과 구름, 산과 바다, 나무와 억새 들의 자연 풍경을 소재로 한 수많은 사진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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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 패션 블로그 사토리얼리스트의 운영자 스캇 슈먼.

그는 수십 년 동안 패션계에서 일했지만, <진짜 패션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을 패션계 안팎으로 줄기차게 던지며, 자신이 속한 세상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근본을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와의 짧은 인터뷰에서 나는 <위대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화려한 런웨이에 고정되어 있던 그의 사진기 렌즈의 방향이 거리의 평범한 인물들에게로 향했을 때, 그의 사진은 마침내 위대함을 입었다. 그는 세계 곳곳의 거리 위에서 다양한 직업군의 일반인들을 사진 찍고, 인터뷰하고, 관찰하며 깨달았다.


진짜 패션은 런웨이에만 있지 않고,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꽃무늬 풍성한 손녀의 카디건에 앉아 있고, 타인의 시선 아랑곳없이 저만의 아이덴티티로 아방가르드 함을 유지하는 직장인의 눈빛에 묻어 있으며, 햇볕 아래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의 빛바랜 의복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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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남자를 만났다. 한눈에 그가 바로 내가 찾던 위인임을 알아봤다. 그에게서도 한 아름이 넘는 100년 된 비자나무 향기가 났기 때문이다.

 

그는 내 씨앗이 왜 하필 이런 황량한 돌무더기 사이에 떨어졌는지, 운명에 원망하지 않고, 무엇을 좇지도, 도망치지도 않는 위태로운 것을 알면서도 여유를 부리며, 오직 안으로 우주 가장 깊숙이 뿌리내리는 일만이 숙명이고, 밖으로 때마다 나의 이웃들을 과일로 배 불리고, 널찍한 잎으로 그늘을 드리워 쉴 만한 곳이 되어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인류가 반복해온 평범한 진리에 터를 잡고, 내 고유한 무늬 그대로 길러낸 특별함을 꽃피우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인간, 위인이 아닌가.


평범함과 특별함의 균형을 유지한 채 땀 흘려 일하는 그의 눈빛에 위인의 비범함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바로 저것이다. 저것이 내가 그동안 갖고자 욕망했던 위대한 삶을 살아내는 위인의 실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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